겨울 갈대밭
-박형준-
겨울 갈대밭에 갈대들은 서로의 몸 비비다 지쳐서 운다
울음이 커질 때마다 서로를 더욱 휘감으며
엎어지는 갈대들
무릎이 깨진 아이가 시뻘건 피를 보고
우와 우와 울듯이
그러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쓱 눈밑을 닦고 씩씩하게 걷듯이
피 한 점 허공에 찍으며
일어나는 갈대 갈대 갈대 갈대
울음이 커질 때마다 서로를 휘감으며 엎어지는
겨울 갈대밭
쉬임없이 불규칙하게 흔들리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바스락 거리는 갈대밭 한가운데 서면 혼돈 그 자체를 느낄 것이다. 그 수 많은 갈대 개체가 어지러이 흔들리는 모습에서, 무리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혼돈을 느꼈기에 그리 나타낸 것 같다. 뜰안에 자그마한 대나무 밭이 있었다. 눈바람 흩날리는 겨울밤 불끄고 잠자리에 들면 바람맞은 대나무 소리가 요란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한번은 참새떼가 날으는 “후두두두-”, 한번은 좀도둑이 고팡(곡식을 보관하는 방 뒤편에 붙은 창고)에서 쌀퍼 가며 내는 “싸-.......”하는 소리를 셀 수없이 들었다. 그럴수록 무서움에 잠도 설쳤다. 물론 그때는 창호지 바른 창문에서 문풍지소리도 함께 들었다. 겨울밤 농촌의 초가집 풍경은 말 그대로 ‘겨울밤의 자연 소나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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