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 재 무-
쉰다섯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아부지의 나이다. 엄니 돌아가신 뒤
두어 해 두꼍 그늘처럼 사시다가
인척과 이웃 청 못이기는 척
새 어머니 들이시더니
생활도 음식도 간이 안 맞아
채 한 해도 해로 못하고 물리신 뒤
흐릿한 눈에
그렁그렁 앞산 뒷산이나 담고 사시다가
예순을 한 해 앞두고 숟가락 놓으셨다.
그런 무능한 아비가 싫어
담 바깥으로만 싸돌았는데
아, 빈 독에 어둠 같았을 적막
오늘에야 왜 이리 사무치는가.
내 나이 쉰다섯, 음복이 쓰다.
크게 병들었는데 환부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추석이나 설날은 즐거운 명절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쉰다섯 되는 화자는 이 즐거운 추석에 차례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념에 젖는다. 아버지는 쉰다섯에 앓기 시작해 쉰아홉에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두어해 만에 이웃의 청을 못이기는 척하여 새 어머니를 맞는다. 그런데 새어머니의 음식에 간이 안 맞고 성격도 차이가 나서 한 해도 해로(偕老) 못하고 헤어진다. 그럭저럭 사시다가 쉰아홉에 돌아갔다. 화자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 밖으로만 싸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때 아버지가 느끼셨을 ‘빈 독에 어둠 같았을 적막’을 화자는 오늘에야 깨달아 사무친다고 말한다. 즐겁고 맛있어야 할 추석 차례 음식이 목에 걸린다. 음복이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에 병이 깊다고 말한다.
사람은 살아봐야 제대로 이해하고 옳게 말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젊은 시절, 눈앞의 현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화자도 추석차례를 지내면서 젊은 시절 아버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걸 크게 후회하고 있다.
추석, 설, 기일은 우리에게 지난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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