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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영 칼럼](24)추석
[양대영 칼럼](24)추석
  • 양대영 기자
  • ydy0889@naver.com
  • 승인 2013.09.25 2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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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 재 무-

쉰다섯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아부지의 나이다. 엄니 돌아가신 뒤
두어 해 두꼍 그늘처럼 사시다가
인척과 이웃 청 못이기는 척
새 어머니 들이시더니
생활도 음식도 간이 안 맞아
채 한 해도 해로 못하고 물리신 뒤
흐릿한 눈에
그렁그렁 앞산 뒷산이나 담고 사시다가
예순을 한 해 앞두고 숟가락 놓으셨다.
그런 무능한 아비가 싫어
담 바깥으로만 싸돌았는데
아, 빈 독에 어둠 같았을 적막
오늘에야 왜 이리 사무치는가.
내 나이 쉰다섯, 음복이 쓰다.
크게 병들었는데 환부가 없다.

 
추석은 마냥 즐거운 날이다. 월급장이들에게 떡값이니, 보너스가 나와 주머니가 든든해지는 때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과 일가친척을 만나 가족과의 환담도 이뤄지는 시기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조상이나 고향에 대한 생각이 심어지고 향토학습에 눈이 뜨는 시기이다. 아들 딸 잘 키워 멀리 생업현장으로 떠나 보낸 부모님 입장에선 그렇게 보고 싶은 자식과 손자를 대하는 뜻 깊은 날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추석 음식 마련하랴, 추석차례 비용을 놓고 형제 또는 동서 간에 불화가 싹터 가족 간에 분쟁이 일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추석이나 설날은 즐거운 명절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쉰다섯 되는 화자는 이 즐거운 추석에 차례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념에 젖는다. 아버지는 쉰다섯에 앓기 시작해 쉰아홉에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두어해 만에 이웃의 청을 못이기는 척하여 새 어머니를 맞는다. 그런데 새어머니의 음식에 간이 안 맞고 성격도 차이가 나서 한 해도 해로(偕老) 못하고 헤어진다. 그럭저럭 사시다가 쉰아홉에 돌아갔다. 화자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 밖으로만 싸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 때 아버지가 느끼셨을 ‘빈 독에 어둠 같았을 적막’을 화자는 오늘에야 깨달아 사무친다고 말한다. 즐겁고 맛있어야 할 추석 차례 음식이 목에 걸린다. 음복이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에 병이 깊다고 말한다.
사람은 살아봐야 제대로 이해하고 옳게 말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젊은 시절, 눈앞의 현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화자도 추석차례를 지내면서 젊은 시절 아버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걸 크게 후회하고 있다.
추석, 설, 기일은 우리에게 지난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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