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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41) 홀로선 민들레
[자청비](141) 홀로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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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4.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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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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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경미 작가 ⓒ뉴스라인제주

제주 도서관 친구들이라는 단체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 사서들을 위한 교육에 참여했다가 책 보따리를 활용한 수업을 듣게 되었다.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하라는 진행자의 청이 있어 고르고 있는데 다른 참여자들은 척척 잘도 찾았다. 선택한 이유도 요망지게 설명했다. 젊은 엄마 사서들의 말을 듣다 보니 삶의 중심이 아이들이었던 예전의 나를 보는 듯했다. 이삼십 대 아이들을 거느린 나는 잃어버린 풋풋함이었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기대가 듬뿍 묻어나는 분위기였다. 민들레 씨앗을 고르거나, 갈라진 벽 틈을 비집고 나온 꽃을 고르거나, 활짝 핀 꽃을 고르거나, 다른 그림을 고르거나, 선택한 이유는 모두 비슷했다. 희망, 끈기, 사랑 등등. 나는 땅 위에 앉아있는 작은 민들레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봄이 되면서 마당에 가득 돋아난 민들레는 꽃대가 올라오기 전에 연한 앉은뱅이 풀일 때 골갱이로 뽑아버리기 좋다라는 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이번엔 ‘나는 ( ) 민들레이다’라는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단박에 ‘홀로선’을 적어넣었다. 다섯 식구 중에 남편은 육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둘째인 딸은 영국에서 유학 생활 중이었고 막내아들도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제주에는 큰아들과 살고 있었다. 외로울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 가족들이 생각날 때마다 언젠간 다 같이 모일 날이 있겠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생활이었다. 지난겨울 초입에 큰아들이 봄이 되면 독립을 하겠다고 했다. 엄마하고 살다 보니 철이 덜 드는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유라고 해 봐야 엄마 듣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고, 혼자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반대할 명분도 딱히 없어서 그러라고 했었다. 마음속으로는 혼자 살 수 있을까, 인적 드문 언덕배기에 놓인 집이 더 쓸쓸해지겠구나, 우리 재롱둥이 고양이 이쁜이는 큰아들을 잘 따랐는데 오빠가 안 보이면 찾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잠깐씩 스쳤다. 아들의 독립 선언이 철회되기를 기대하다가도 엄마하고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경험하며 강인한 청년이 되는 모습을 기대해보기도 했다. 삼월 들어선 어느 날 큰아들은 짐을 챙겨나갔다 그렇게 나는 홀로선 민들레가 되었다.

늦은 밤. 아들 대신에 차 소리를 듣고 뛰어오는 이쁜이와 요란한 인사를 하며 지내다보니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것도 익숙해졌고 나 혼자만을 위한 생활도 편하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식사. 청소, 빨래 등이 나만을 위한 노동이 되었고 다른 식구에게 신경 쓸 일이 없다 보니 여유롭게 하루를 마감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생각지도 못한 여유였고 그 부산스러움이 영원할 것 같았는데 어느덧 내 삶의 전부였던 아이들은 하나둘 떠나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나를 살게 되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야 어제를 잊고 오늘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 없는 원칙이 없듯이 잊지 못하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던 절대적인 사랑의 감정과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아이들이 떠난 빈 둥지를 지키고, 돌아왔다 다시 떠나는 뒷모습에 익숙해지는 것도, 살아오면서 겪었던 무수한 경험과 생각을 잊지 않고 내 삶에 녹였기 때문일 것이다. 홀로선 민들레도 이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또 다른 떠남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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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련 2024-04-20 23:38:31
홀로선 민들레
때가되면 어김없이 그자리에서 꽃을 피워대는~~
민들레의 둥지를 응원합니다

실비아 2024-04-18 10:26:25
커다란 나무속에 빈둥지가
빛바라기를 합니다.
허전한 빈둥지가
이제 오롯이 내방이 되어
다른 무엇으로 채워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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