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물결이 일렁이는 돌담 너머로 푸르른 바다가 펼쳐지는 제주의 봄!
철 따라 돌담 안에 피고 지는 꽃들과 황금빛 귤 밭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검은 화산석 돌담과 잘 어우러져서이다. 눈을 두는 곳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지는 곳.
산과 들과 바다가 이렇게 조화로운 그림 속에 서면 누구라도 유순한 마음이 될 것만 같다.
품어 안은 것이 많으면 넉넉해지지 않던가! 보이는 대로 받아 적으면 한 편의 시(詩)가 되고 가슴에 담아오면 잊지 못할 명화(名畵)가 된다.
제주는 돌의 나라이다. 산과 들과 바닷속까지도 온통 돌 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 올레를 걷다가 울담을 먼저 쌓아놓고 집을 짓는 걸 본 적이 있다.
담을 쌓아 놓으니 벌써 보금자리인 듯 아늑해 보였다. 사나운 바람도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玄武巖)의 특성과, 서로 맞물린 돌 틈 사이를 지나며 기세가 한풀 꺽이고 유순해진다 하니 집을 짓기 전 울담을 먼저 쌓아 바람을 다스리는 지혜가 돋보였다.
들판에는 밭담을 쌓아 경계를 표시하고 바람에 날리는 토양을 보호한다. 밭담의 종류만도 다양해서 외담, 겹담, 잣담, 잡굽담 등이 있다. 넓게 쌓아놓은 잣담은 길이 없는 주변 농지의 출입 통로로 사용된다 하니 이웃에 대한 배려와 훈훈한 정이 느껴진다.
제주 밭담이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 세계식량농업기구(FAO)로 부터 과학성과 창의성, 역사성이 인정되어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제주 밭담의 길이가 대략 22,108km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지구 둘레가 대략 40.000km라고 한다. 제주 밭담의 길이가 지구를 반 바퀴 돌고도 남는 길이인 것이다.
밭담은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제주의 검은 현무암 밭담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구불구불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흑룡을 닮았다하여 ‘흑룡만리'(黑龍萬里)라 부르기도 한다. 제주 밭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해마다 ‘제주 밭담 축제’도 열리고 있다.
밭담 외에도 쌓는 위치에 따라 축담, 올레담, 산담, 환해장성이 있다.
중 산간에서는 목장 경계용 잣성을 쌓아 말과 소를 키웠으며 위치에 따라 하잣성, 중잣성, 상잣성이라 한다. 바닷가에는 자연 지형을 이용해서 원담을 쌓았고, 원담 안에 숭어가 들면 ‘숭어원’, 멜(멸치)이 들면 ‘멜원’이라 했다. 내가 사는 금능 바닷가에는 원담이 잘 보존돼 있어 해마다 여름이면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원담 축제’도 열리고 있다.
제주를 두 차례나 방문한 적이 있는 세계적인 작가 ‘25시’의 저자인 ‘게오르규’도 제주 돌담을 ‘세계적인 명물’로 평가하고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삶의 ‘구원을 얻었다’고 극찬했다. 독특하고 희귀한 제주의 문화유산을 우리는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돌담은 쌓는 이의 정성과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굽이굽이 이어져 흐른다.
맑은 날도 비바람 몰아치는 날도 묵묵히 눌러 앉아 제주를 품어 안고 한 시대를 건너 왔고 또 건너갈 것이다. 돌담에도 마음이 있으리니 섬을 노래하는 푸른 물결과 파도 소리가 때로는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반도의 남쪽, 마침표를 찍듯 솟아오른 돌과 바람의 섬!
해마다 장마와 태풍이 지나는 길목이어서 바람 앞에 옷깃을 여미고 돌담을 쌓아 바람을 달래며 한라산을 향해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들처럼, 그렇게 한라산을 믿고 의지하며 제주를 지켜온 사람들 덕에 나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나지막한 돌담도 360여 개의 둥근 오름도 거부하지 않는 듯 넉넉히 그 품을 내어준다. 제주는 한라산을 품고, 돌담은 제주를 품고, 우리는 그 품에 안겨 돌담처럼 어깨를 맞대며 어우러져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이웃이라는, 돌담으로 이어져 흐르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제주의 검은 돌 들을 보노라면 그 옛날 화산이 주는 모양대로 바람에 식어갔을 돌 하나하나의 사연을 보는 것 같아 감히 돌들의 언어를 짐작해 보고 싶어진다.
모나면 감싸 안고 오만하면 다독이는 품을 줄 알고 참을 줄 아는 제주 돌담엔, 아우르는 철학이 있다.
제주의 돌담을 알게된 만큼 제주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제주에 사랑고백을 하게 되는 날까지~주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