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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영 칼럼](16)건달의 슬픔
[양대영 칼럼](16)건달의 슬픔
  • 양대영 기자
  • ydy0889@naver.com
  • 승인 2013.06.14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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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달의 슬픔

-고영-

술꼭지가 돌아 들어온 날 아침
그녀가 식탁에 앉아 햇양파를 까며 운다
아침 해살이 맵다
그녀의 눈빛이 너무 맵다

저렇듯 눈빛이 매운 날은
시원한 냉수 한 잔도 간밤의 소주처럼 쓰고 맵다
경험에 의하면 그녀는 지금
까딱 잘못 건드리면 터지고 마는 프로판 가스통처럼
몹시 위험한 상태다

연민으로 지은 잡곡밥, 눈물로 무친 시금치 나물, 한숨을
넣은 장조림, 원망으로 끓인 북어국, 독약이 발라졌을지도
모를 꽁치구이…
그런데 꽁치 대가리는 어디로 갔나
어두육미를 읊조리며

마치 수라상을 받은 것처럼
최대한 황홀하게, 최대한 맛있게 밥공기를 비우는데
눈치 없는 젓가락이 자꾸 미끄러진다

젠장, 기어이 올 것이 왔는가
맵고 뜨거운 눈빛만 남기고 한 무리의 가방이 현관을 나선다
자기야, 가니? 정말 가는 거니?
젓가락을 놓고 잡으려는데
우드득 돌이 씹힌다

     
 
▲ 양대영 편집국장
건달,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생활하는 사람이다. 허구한 날 술이나 마시고 하다 보니 남들 이 일하는 시간엔 잠자고, 남이 잠자는 시간에는 거꾸로 술이나 마시게 된다. 이날도 머리가 핑 돌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 아침인 것 같다. 늦게 깨어나 보니 아내가 식탁에 앉아 양파를 까며 울고 있다. 벌이도 없는 남편에 기대 가정을 이끌어가는 아내의 생활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내의 울음은 그런 생활고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역시 말장난이 심하다. 아내의 울음이 생활고가 아니라 양파를 까서 울고 있다고 변명이다. 양파껍질을 벗길 때는 매운맛이 나와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난다. 더욱 햇양파는 물기가 많아 더 매울 터이다.

전편에 흐르는 분위기가 요즘 같은 ,세태에 딱 어울리는 가정 풍경이다. 20~30대의 구직난, 40~50대의 퇴임 압박 등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불안이 가중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을 때는 차라리 그것을 뛰어넘어 극복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건달의 슬픔’은 독자들에게 이런 고통의 공감대를 넓혀, 직업난이 어느 특정인만의 고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겪고 있음을 말해줌으로써 개인적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난은 정말로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찬바람이 집에 들어오면 대문을 걸어 잠그면 그만이다. 가난이 대문 안에 들어오면 남아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가정이 흩어지고 만다. 흩어진 가정에 남을 게 뭐 있을까?

이 시에서도 아내가 짐 가방을 챙기고 나가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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