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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영 칼럼](27)앙숙
[양대영 칼럼](27)앙숙
  • 양대영 기자
  • ydy0889@naver.com
  • 승인 2013.10.31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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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

-안 상 학-

어느 신부님은
마당가에 꽃 키우는 것 못마땅해 했다.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있으면 콩이나 채소를 심었다

어느 작가는
마당에 풀이 우북해도 절대 뽑지 않았다
쇠무릎 이질풀 삼백초 질경이까지 다 약으로 썼다

한 사람은 어려서 배가 고팠고
한 사람은 어려서 몸이 아팠다
둘은 평생 친구였다

그들과 친했던 어느 농민운동가는
집을 자주 비우다 가끔 집에 돌아가면
아내가 마당가에 가꾼 꽃밭을 갈아엎어 텃밭을 만들곤 했다
아내는 남편이 집을 비우면
기다렸다는 듯이 텃밭 갈아엎어 꽃밭 가꾸곤 했다

텃밭과 꽃밭의 숨바꼭질
아내가 남편을 잃고서야 끝이 났다
아내는 꽃밭에서 아주 살았다

한 사람은 농사를 사랑해 채소를 길렀던 것이었고
한 사람은 남편이 그리워서 꽃을 가꾸었던 것이었다

 
앙숙-. 서로 미워하는 사이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앙숙은 한쪽이 있으므로 오히려 상대도 있게 되는, 이른바 서로 다른 가치가 상호 공존하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 양과 음도 따져보면 앙숙의 확장 개념일 것이다. 어느 한쪽이 있으므로 하여 다른 한쪽을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시에서 신부님은 마당가에 손바닥만 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콩이나 채소를 가꾼다. 작가는 마당에 풀이 무성해도 약으로 쓰기 위해 그냥 놔둔다. 한 사람은 어려서 배고프게 살아서 먹을 것을 가꿨고, 한 사람은 어렸을 때 몸이 아파서 그랬다 한다. 상반된 둘은 평생 친구였다고 한다.
이들과 친한 농민 운동가는 집을 자주 비우다 가끔 돌아가면 아내가 마당가에 가꾼 꽃밭을 갈아엎어 텃밭을 만든다. 역시 아내는 남편이 집을 비우면 기다렸다는 듯이 텃밭을 갈아엎어 꽃밭을 가꾸곤 한다. 텃밭-꽃밭의 앙숙은 남편을 잃고 나서야 끝이 난다. 이때부터 아내는 꽃밭에서 아주 살았다. 한 사람은 농사를 사랑해서 채소를 길렀고, 한 사람은 남편이 그리워서 꽃을 가꾸었다. 신부님과 작가가 평생 친구였듯, 남편과 아내도 평생 같이 살았다. 세상이 모두 하나같다면 무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서로 다름으로 인해, 상반된 가치가 공존함으로 인해, 세상은 더욱 살만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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