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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미셀러니 김정일
[칼럼]미셀러니 김정일
  • 나기자
  • news@nagiza.com
  • 승인 2011.12.22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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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북의 김정일은 그나마 이름 덕분에 우리나이로 일흔을 넘겼다고 한다. 성명역학 원로 이태호 소장은 “김정일의 본명은 김정일(金正一)이다. 아기 때부터 하도 골골해서 아버지(김일성)가 한 일(一)을 날 일(日)로 바꿔주고부터 건강하게 잘 성장했다”고 전했다. “처음 이름으로 살았다면 성명에 깃든 병살 탓에 20세도 못 돼 저승사자의 밥이 됐을 것”이라는 풀이다.

또 “김정일이라는 이름은 견룡재전격(見龍在田格)으로 만물을 자생(資生)케 하는 능력이 있다”면서도 “간토방인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으므로 하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짚었다. 풍년이 들 만하면 추수 적기에 태풍에 쓸려가는 꼴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의 선천명운, 즉 사주팔자에 대입한 운명은 “예술가”라고 봤다. 바로 이 ‘예술’은 김정일을 연산군(1476~1506)과 연결하는 고리다. 김정일은 영화에 탁월하고 연산군은 시(詩)가 걸출했다. 영화나 시나 모두 예술이다. 예술뿐 아니다. 김정일은 환생이라고 할 지경으로 연산군을 닮았다.

술과 연회를 좋아하고 여자 파트너를 자주 바꿨다. 심지어 남의 여자를 빼앗기도 했다. 김정일은 결혼해 잘 사는 성혜림에게서 장남을 얻었다. 연산군은 백모인 원산대군의 미망인 박씨를 범하고 당숙인 제안대군의 애첩 장녹수를 후궁으로 삼았다. 김정일은 기쁨조 3000명을 뒀다. 연산군도 궁녀와 기생 3000명을 거느렸다.

둘 다 유교의 영향을 받고 절대지배자의 아들로 자랐다. 유년기에 생모를 잃고 계모를 증오했다. 어릴 때 남의 집을 전전했다. 김정일은 김영주와 오극렬, 연산군은 강희맹 네서 컸다. 어려서부터 제왕학을 공부했다. 김일성대학 시절 김정일에게는 지도교수가 과목별로 따로 있었다. 연산군은 열두 살 때 서거정에게 학문을 배웠다.

동생을 미워했다. 김정일은 자기보다 크고 잘 생긴 김평일을 경계했다. 연산군은 아우의 목숨을 걸고 경마를 벌이기도 했다. 조실모친한 탓에 어머니 분위기를 품기는 여성을 좋아했다. 정도 차는 있지만 아버지를 증오했다. 김정일은 어머니가 죽은 후 동거녀와 재혼한 아버지가 미웠다. 연산군도 어머니 윤씨를 죽음으로 몬 아버지를 원망했다.

큰일도 잘 저질렀다. 김정일은 무리하게 유경호텔, 능라도경기장 등을 지었다. 연산군은 사냥을 위해 수십 리에 걸친 민가를 죄다 파괴하고 짐승을 풀었다. 김정일은 자동차 스피드와 사격을 즐겼다. 연산군이 빠진 수렵은 사격과 승마의 혼합놀이다.

태조 김일성(1912~1994)의 김씨조선 제2대 왕 김정일(69)이 17일 붕어했다. 덜 준비된 왕세자 김정은(28)을 주인공 삼은 국제정치사회과학과 군사학원론 그리고 소설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뉴시스 신동립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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