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4:17 (금)
[현태식칼럼](210)무각새설(無覺塞說)
[현태식칼럼](210)무각새설(無覺塞說)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7.06.21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우리집 이야기

아버지는 뚝심있는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부친이 너무 젊을 때 돌아가셔 유년시절부터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하직하는 바람에 형제자매가 한 분도 없이 외로히 자랐고 청상과부가 된 나의 증조모는 어린 자식 하나만 바라보며 수절하시다 80세가 훨씬 넘어 천수를 누리시고 세상을 뜨셨다. 집안은 넉넉지 못하였으니 외아들 믿고 꼿꼿하고 단정히 양반의 기품을 지니고 그리고 슬픈 기색 없이 사시다 가셨다.

할아버지(조부) 함자는 玄, 應자, 鍾자이신데 성정이 곧으시고 부지런했으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학을 하셔서 鄕校班首까지 지내셨다. 할아버지의 배필은 함자가 姜, 有자, 賢자이시다(본가가 애월읍 유수암리). 할머니는 유순하고 후덕하기로 여러 고을에 걸쳐 소문이 났다. 누구를 보고도 화내는 일 없고 욕이나 꾸지람하는 일이 없어서 유수암방 하면 모두가 호감을 가졌다. 시골에서 춘궁기가 되면 식량구하러 다니기 일쑤인데 우리 할아버님은 부지런한 탓에 그렇게 식량 구하러 다닐 정도는 아니고 오히려 팔아주었다. 할머니께 보리쌀, 좁쌀은 사가는 사람은 늘 정량보다 1/10을 더 받아갔다. 할머니께서는 곡식을 될 때 손바닥으로 됫박의 쌀을 쓸어서 됫박가장자리에 평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되의 가운데가 봉긋이 고봉이 되도록 했다. 쌀 사간 사람이 집에 가서 정량으로 되면 항상 한옥재기(한 홉)가 남는다고 하여 유수암방에게 쌀사간 사람은 좋아하며, 여러 사람이 사가지 못해 안달하지만 할머니도 곡간에 곡식이 여유가 없으니 팔라는 사람에게 다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어쨌든 유순하고 후덕하다는 것은 손자인 내가 꾸며낸 말은 아니다. 동리분들이 인구에 회자한 사실이다.

할아버지 부부는 자식으로 아들 넷, 딸 둘을 슬하에 두셨다. 아들이 성장해가니 덜컥 걱정이 생겼다. 재산은 별로인데 아들딸은 다 혼인시켜 분가시켜야되는데 필요한 살림살이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었다. 홀연히 도둣게에서 풍선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몇 년을 노력하여 돈을 벌고 돌아와 연동 배두리(星斗洞)에 큰 밭을 매입하였는데 연동 132번지이다.

이 밭을 네 등분하여 네 아들에게 집터로 물려주고 집을 짓도록 하였다. 그래서 한 밭에 네 형제가 오순도순 살았다. 큰할머니(증조모)는 백부님과 같이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6살 이후는 부모님을 못견디게 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만큼 부모님 말씀 잘듣고 부지런하였다는 뜻이다.

전편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미인이므로 아버지가 처갓집 난간에 앉아 버티면서 딸을 주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완강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허락받고 맞이하였는데 나이는 아버지보다 7살 연하인 16살에 시집와서 자식을 10남매 아들 일곱, 딸 셋을 낳으셨다. 이 자식들을 키우느라 농부의 아내로서 별의별 일을 다하며 키워서 지금도 자식들이 모두 생존하여 있다. 함자는 金, 宜자, 淑자이시고 자식 잘 키웠다 해서 관으로부터 상장과 부상을 받기도 했다. 그때가 1958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무학이지만 천자문을 다 외우고 오일장에서 물건값을 다른 사람이 주판으로 셈하는 것을 암산으로 더 빠르게 계산하신다. 압권은 동시장이 화재로 전소하였을 때 그날로 쌀을 여러 가마니 희사받아 구호하였다. 어머니는 용담동부녀회 부회장이었다.

86세를 일기로 1999년 1월 1일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딸 하나 아들 둘을 낳았을 때 홀연히 일본으로 가셔서 열심히 일해서 그 일본전쟁 말기에 다른 사람들은 돈을 못벌어 밥 빚을 지고 있을 때 아버지는 밭 세 필지를 살 돈을 벌어왔으므로 우리는 연동에 있을 때 새 부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집짓는 데도 도가 터서 대문간까지 하면 다섯채를 지었다. 4·3사건을 일으킨 사람들 덕에 모두 버리고 식솔들만 거느리고 먹돌새기 외삼촌집으로 내려와 목숨을 부지하였다.

아버님은 서당 문턱을 가본 바도 없는데 한문에 통달하여 동리유지가 되셨고 서체가 아름다워 동리에서 새 집 짓는 사람은 상량문을 아버지께 부탁하니 아버지가 다 쓰셨다. 특히 공·맹도(孔孟道)에 심취하고 신앙처럼 모셔서 공맹의 도에 토를 달면 대단히 언짢아 하셨다. 향교에 나가 한시 백일장에서 늘 상을 받으셨고 도훈장(都訓長)까지 지내셨다.

시 짓고 독서하는 것을 좋아해서 삼국지연의는 7~8회 완독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삼국지 내용은 손바닥 보듯 훤히 아셨다. 삼국지만 잘 아는가 했더니 어느날 징키츠칸에 대하여 말하는데 테무친 성길사한 징키츠칸의 본 이름들을 말하며 결혼한 내력 등 너무너무 잘 아셔서 요즈음 징키츠칸 영화가 TV에 방영되었는데 우리 아버지가 말한 것보다 영화가 매우 많이 생략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후 자식 7명을 낳으셨다. 한 가지 더 붙이면 엄하기가 추상같지만 고정하기는 비길 사람이 없다. 선거가 있어 먹고보자 고아무개 찍고 보자 고아무개 하면서 선거가 불붙을 때 아버지는 고모씨 후보 운동 먹돌새기 총책이셨다. 그 많은 고무신을 울담 넘어 배달하면서 우리 집에는 고무신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정직하고 청렴하였다. 이런 점은 우리도 아버지 영향이 컸다고 본다. 나도 거짓말하기 싫고 남의 것 공짜는 그렇게 싫으니 융통성 없다 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마음이 편하고 하늘 보고 땅 보아도 크게 부끄러움이 없다.

아버지는 1984년 9월 20일 78세를 일기로 종명하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