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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47)죽기 살기로
[현태식 칼럼](47)죽기 살기로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8.05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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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했다. 가다가 쓰러지면 그 자리가 내 무덤이다. 그 무덤이 될 때까지는 가야한다고 결심하고 또 다짐을 하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일하러 갔다. 이런 푸대접과 멸시를 받고 그냥 죽을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의 불가사의한 힘, 그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죽을 힘을 다 쏟자.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식도 나처럼 사회적 멸시와 천대를 대를 이어 받게 되고 그러면 한을 품게 된다.’

나는 자식의 학비를 못대어주고 못먹여 그 자식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학교에 다니면서 건강을 해치거나 너무나 남루한 옷을 입어 동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은 자식을 낳은 부모의 도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모의 자격이 없음이요 부모의 책임을 내팽개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도 너무 괴로운데 이 한을 대물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낮에 근무하다 점심시간에 짬뽕(チャムポン:일본요리가 아니라 여기서는 음식물찌꺼기의 의미로 사용됨)통으로 식당의 음식찌꺼기를 자전거로 실어오고 낮에 밭에서 오후 8시까지 김을 매다가 툭툭 흙먼지 털고, 다시 회사에 출근해서 보통 오후 8시나 9시까지 회사일 하고 퇴근할 때도 식당에 들러 짬뽕을 싣고 왔다. 짬뽕은 돼지 먹이로 쓰기 위해서였다.

내 아내는 구멍가게를 하면서 상점에 소금이 떨어지거나 할 때는 만삭이 된 몸으로 리어커에 소금을 몇 가마니씩 사서 싣고 앞에서 끌고 나는 뒤에서 밀고 하면서 팔 물건을 조달했다. 남산만한 배로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 때도 이런 일을 그만 두지 않았다. 부모가 있거나 약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부엌 일도 않는다고 하는데, 아내는 리어커에 짐을 싣고 진흙탕 길에 바퀴가 빠져 움직이도 않은 것을 죽어라고 끌면서 장사를 하는 애처로움은 나만 알고 속앓이를 하는 것이다. 그뿐이랴! 장날에는 쌀 몇 가마를 동네 마차에 부쳐서 장마당에 가는데 큰 아이는 손잡고 젖먹이는 업고 간다. 시장바닥에서 쌀을 파는데 아이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큰 아이는 묶어서 자기 몸에 줄을 매고 아기는 업은대로 종일 쌀장사를 하였다. 이러면서도 장차 이 놈들을 굶기지 않고 학비를 대어줄 수 있다면 우리의 고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을 했다. 이때나 그때나 우리같이 일에 미친 사람은 별로 가난에 허덕이지 않은 것 같다.

하루는 퇴근길에 짬뽕통에 음식찌꺼기를 가득 채워서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오는데 서문파출소를 지나자 순경이 자전거라이트를 켜지 않았다고 세우라고 호루라기를 불어대었다.

나는 잡히면 곤욕을 치를 것이므로 못들은체 하고 마구 달렸다. 순경이 계속 쫓아오니 집으로 빨리 달려들어와 자전거를 보리짚 더미에 밀어 놓고 높은 울타리를 넘어 큰 길로 도망갔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걸어가면서 보니 순경이 우리집을 뒤지다 그냥 돌아가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불켜지 않은 채 자전거가 왕래해도 아무렇지 않다가 그날은 더운 여름밤이라 순경도 짜증을 참지 못했는지 정말 극성스러웠다. 족히 7~8백미터를 쫓아오니 말이다. 비포장도로에 어두운 밤길을 악착같이 따라온 순경도 성미가 대단한 것 같았다. 그날 밤 높은 담장을 뛰어내리면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밤중부터 몹시 배가 아팠다.

참지 못해 병원에 갔더니 급성맹장이라며 수술을 해야한다는 진단이 났다. 관덕정 고산부인과에서 수술을 하였는데, 의술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못한 때라 척추에 마취주사를 놓았는데 주사바늘을 아무리 찔러도 잘 들어가지 않아 뺐다 다시 찌르며 애를 먹였다. 이것이 척추마디에 이상이 생겨 지금까지도 특히 주사바늘을 잘못 찔렀던 그 마디가 아프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나도 일어나지 못했다.

너무나 몸이 쇠약해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누워서 며칠 지낸 탓에 골의 무게가 뒷머리쪽으로 쏠린 것 같았다. 머리만 들면 골이 쏟아져 나오는 듯 아팠다. 옆으로 약간씩 움직여 몇 시간만에 엎어져 돌아누웠다. 엎드린채 몇 시간을 있다가 머리를 들고 겨우 일어났다. 다른 사람은 수술자리가 며칠만에 아물었다고들 하는데 왠지 나는 아물지 않아 덜 아문대로 퇴원했다. 직장은 금융회사이므로 돈을 대출하고 수금하는 일을 오래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병원비가 문제였다. 어머니는 내가 수술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린 풋감 세 개를 사고 한번 왔다간 다음 종무소식이 되었다.

아내는 가게 보랴, 아이 돌보랴, 환자 식사시중과 밤에 간호하랴, 몸을 몇 개로 쪼개어도 모자랐다. 그래도 사람은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병원비도 나와 같이 근무하는 동료사원이 워낙 친하게 지내었는데 그 분이 나의 사정을 너무나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내 딱한 사정을 동정하여 병원비의 삼분지 일을 도와주어서 겨우 퇴원할 수 있었다. 그 분과는 그 후 사업도 동업하며 매우 가깝게 지냈다. 퇴원 후 수술자국이 다 아물지 않았는데 자전거 타고 수금하러 돌아다니니 수술자리가 덜 아문 부분이 서로 마찰되면서 고름이 고이고 상처부위가 커지는 것이었다. 저녁에 집에 와서 아무리 자가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도 상처부위는 더 커져갔다. 할 수 없이 다시 병원 출입을 하였다. 수술자리는 흔적도 없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지금도 음푹 파인 수술 흔적이 크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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