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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45)없다는 말을 하지 말자
[현태식 칼럼](45)없다는 말을 하지 말자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7.31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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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역성들어 주는 사람 없고 돈 없고 건강치 못하니 사람마다 업신여긴다. 장모님 살았었던 집에 살았을 때는 바깥채에 세들어 살면서 일수놀이 하는 P라는 분이 있었는데, 우리가 매우 궁하고 나도 건강이 나쁘고 아내도 사고무친하니 사람을 우습게 보았다. 어떤 때는 슬리퍼 신은 채 우리가 사는 집 마루를 건너가서 뒷뜰 장독대 있는데서 양치질도 한다.

한 번은 돈이 워낙 급해서 P씨에게 며칠 전부터 돈을 꾸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약속한 날이 저물어도 돈 가져가라는 말이 없어 참고 기다리다 못해서 부탁한 돈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수금해온 돈을 세면서도 P씨는 다른 사람에게 약속한 돈이 다 채워지지 않아 나에게 못꾸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화가 나던지 대판 언쟁을 벌였다. “안되면 미리 안된다고 하지 다 어두운 지금에야 약속 위반하면 되느냐, 당신이 그렇게 신의가 없으면 사회에서 인정 못받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 없으니 돈 떼일까 그러는 줄 다 안다”하고 악을 써도 돈을 꾸어주기는커녕 눈썹 하나 까닥 안했다.

이런 처지를 안 동리분이 급전을 돌려주어서 위기는 모면하였다. 병들고 가진 것 없이 가난하게 되면 이웃이라고 해도 곱게 보지 않는다. 아니 지나가는 강아지도 우습게 본다. 나는 힘도 없고 걸음걸이도 졸바르지 못하였다. 늘 땅만 보고 걷고 남에게 거친 말 하면 큰코 다치니 기가 팍 죽어 말소리도 개미소리처럼 하면사 자기들에게 눈꼽만큼도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남들은 나를 업신여긴다.

한번은 우연히 가까운 이웃에 술장사하며 감투에 썩 취미를 갖고 있는 후배네 집에 들렀는데 느닷없이 옆에 있던 H라는 사람이 “너는 학교 다닐 때 특대생도 했지만 (그 후배의 이름을 말하며) 그가 너보다 훨씬 낫다”면서 솔직히 말하노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백번 맞는 말’이라고 대답했다.

사람이 궁색하니 까닭없이 짓밟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우리 부부가 의논을 했다. 없다 없다 하니 동정이나 불쌍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고 멸시하기만 하니 앞으로 ‘절대 없다고는 말하지 말자’고. 그 후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꾹 참았다. 어렵다고 해도 보태줄 사람 없고 비웃기만 할 것을 잘 알기에. 그렇게 하기를 몇 년간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동네여론이 바뀌었다. 그 집은 있는 집이라고 소문이 바뀌었다. 동네에서 돈을 꾸러온다. 돈 없다면 거짓말 말란다. 번연히 있으면서 없다고 한다면서 언짢은 태도로 돌아간다. “우리를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구나”하고 부부가 마주보며 살며시 웃었다. 없는 것이 왜 죄가 되나? 알 수 없다. 아무리 없어도 남의 것 훔치거나 외상해다 갚지 않거나 돈 꾸어다 갚지 않거나 해야 죄가 될텐데. 있는 자는 없는 자를 업신여긴다. 죄가 있으면 정말 얼마나 있나. 일류재벌에 비하면 새발에 피 정도 갖고 위세를 떤다. 자기가 부자면 자기가 좋지 왜 없어서 고통받는 가난한 자의 가슴에 못을 치는가.

가진 자여, 배운 자여, 권력을 탐한 자여, 깨달으라,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얼마나 많은 부자, 명예를 탐한 자. 권력에 눈먼 자가 명멸했나. 그러나 그것이 영원하던가. 그렇게 부자라는 석숭이도 흔적없이 망하고 그렇게 권력을 가지고 국민을 억누른 차우세스크도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다. 지식이 있다, 많이 배웠다 하며 우쭐댄 사람도 국민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공익적으로 쓰지 않는다면 후세에 칭송받지 못한다.

왜 그 보잘 것 없는 것 가지고 가졌음네 하고 없는 자에게 자기를 알아주고 높이 보라고 거들먹거리는지. 돈 있는 것이 첫째는 부모 잘 만나 유산을 많이 받으면 가장 쉽게 있는 자에 속한다. 둘째 자기가 수단이 좋고 머리가 좋고 노력을 하면 부자가 된다.

그러나 둘째 것도 생각해 보라. 원래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남이 나에게 보태준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도 나는 안쓰겠다고 하여 모두 사주기를 거절하면 부자 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수단을 부려도 다른 사람이 쫓아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임진왜란 전에 율곡이 왜적의 침입을 예측하여 군인 십만명을 양성하자고 주장 했으나 아무도 듣지 않으니 성사되지 못했다. 십만군을 잘 양성하였다면 우리 국토가 그렇게 유린되고 우리 민족이 그렇게 고초를 겪었겠는가? 그러니 있는 것도 상대적이다. 내가 부자라 자화자찬하고, 나는 권력이 있다 거드름 피우고, 내가 머리가 좋다 잘난체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돈으로는 이건희 앞에서는 자랑 못하고 권력이 있다 해도 대통령 앞에서는 내세우지 못할 것이고, 머리 자랑을 하여도 에디슨 같은 사람 앞에서 내가 우수하다고 까불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자기보다 좀 못가지고 약한 사람을 측은지심과 인정으로 동정할 줄 알 때 진정한 대우를 받는다. 남에게 덕은 베풀지 않고 남이 나를 우러러보라고 해봐야 부질없는 욕심이다. 나의 경우는 가난하다, 건강이 나쁘다, 역성들어줄 사람 없다는 것으로 인하여 무시당하고 멸시당하여 가슴 아팠던 것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고 깊이 뼈에 사무쳤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가난한 자 아픈 환자에 대하여 크게 돕지는 못해도 의식적으로 거드름 피우며 상대를 업신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 멸시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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