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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41)금융회사 직원으로
[현태식 칼럼](41)금융회사 직원으로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7.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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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1960년대 제주시에 무진이라는 금융회사가 많이 생겨났다. 시쳇말로 사채놀이회사다. 돈을 영세민에게 꾸어주고 매일 매일 얼마씩 받는 일수금융이었다. 금융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70년대가 가까워지면서 부실화되어 모두 사라졌다. 제은금고의 모체가 된 ‘민생무진’도 상당한 명성과 더불어 제주시에서는 규모가 제일 컸었는데 넘어지고 말았다.

내가 다니는 한국일보 제주지사에도 제일금융주식회사가 설립되어 나는 금융회사 사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사장은 서류에 신원보증인을 두 사람 세우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재산이 있으니 나머지 한 사람은 사정해서 해결하자 생각하고 아버지께 “금융회사에 정식 취직하게 되었는데 신원보증이 필요하니 아버님 도장을 찍어주십시오”하고 요청하였다. 아버지가 머뭇거리다가 “도장 못찍어준다” 하시는 것이었다. 정말 하늘이 안보였다. 내 몸이 아파 아무리 가망이 없다손 치더라도 부모가 신원보증까지 해주지 않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좋습니다. 보증인 없어 직장 못다녀도 부탁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나왔다. 사장님께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면 직장을 그만두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더니 가타부타 말이 없으셨다. 그 후 3년을 다녔다. 내가 자랑스러운 것은 다른 금융회사는 돈 대부하고 회수 못해서 모조리 망했지만 내가 다닌 회사는 돈을 벌었다. 내가 다니는 동안 내가 책임지고 대부한 돈은 한 푼도 결손처분되지 않았다.

나는 ‘신용을 생명으로 알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철칙이다’ 하고 살아왔다. 아버지도 믿어주지 않은 내가 누구에게라도 신용이 떨어지면 남이야 인정사정 없을 것은 보나마나 아닌가. 사장님은 지체장애자였다. 그러니 돈을 어떤 곳에 대부하는지 모른다. 서류상으로 결재하고 직원의 설명만 듣고 돈을 내어준다. 이 돈을 대출하고 원리금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나도 월급 타고 회사도 유지된다. 그리고 이익이 어느 정도 발생해야 경영주가 회사를 경영할 마음이 생기지 이익이 발생치 않으면 문닫겠다 하면 내 직장도 그만인 것이다. “사주가 회사를 오랫동안 운영할 마음이 생기도록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은 월급 받는 직원의 책임이다” 라고 생각하고 나는 열심히 내 직분에 충실하였다.

아내의 피나는 노력, 안쓰러운 고생 그리고 나는 속으로 아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건강을 회복해야 하고 자립의 토대를 마련하리라 다짐하며 성실히 근무했다.

아내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돈을 꾸어오라고 여러 번 요청하였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꾸어다주지 않았다. 만일 나를 믿고 일수를 밀리거나 만약의 경우 얼마간을 물지 못한다면 나는 회사에 대하여 부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신용을 잃게 된다. 나는 이 세상 천지에 만신창이가 된 내 몸 밖에는 믿을 곳도 의지할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신원보증도 없이 맨 몸으로 다니는 직장이고 또 사장이 믿어주는데 혹시 잘못하여 의심을 받으면 끝장이고 신용잃은 사람은 발전할 수 없다고 철석같이 확고한 신념을 갖고 회사일을 보았다.

그래도 살다보니 아들, 딸 이렇게 오누이가 탄생하니 아기 보아줄 사람이 없어 양장점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재단하고 미싱하고 쉴틈이 없는데 아기는 길가로 나가지 못하면 가게에서 여러 재료를 더럽히고 오줌·똥 싸서 어떻게 엄마 혼자는 해볼 도리가 없었다.

양장점 일 하다 밭에 곡식도 파종했으니 김도 매어야지, 거둬들어야 하지, 돼지 키우지, 병든 남편 수발하지, 몸이 몇 개라도 모자라다. 너무 바빠 쉬는 시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어느 해 보리타작을 하는데 아기를 보아달라는 것이다. 보리타작도 밤에 하는 것이다. 나는 퇴근해서 몸이 아파 일어날 수가 없어 아내가 뭐라 해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큰애는 줄로 매어놓고 어린 동생은 업어서 몇 섬이나 되는 보리를 모두 날라 들였다.

아내는 나 보고 아기 안보았다고 여러 번 눈물을 흘리며 원망했다. 나는 속으로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 그러나 뒷날 출근하려면 밤에 누워 쉬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떻든 양장점 일을 할 수 없어 그만 치우고 업종을 바꾸어 잡화와 사탕, 과자를 파는 구멍가게로 바꾸었다. 구멍가게는 아무래도 오는 손님께 물건을 드리고 돈을 받는 단순한 일이니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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