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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40)몽유병 환자처럼
[현태식 칼럼](40)몽유병 환자처럼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7.18 2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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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낮에 일을 하면 몸도 피곤하니 밤에는 깊은 잠이 들어야 다음날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눈만 붙이면 꿈이고 졸리기는 하는데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는다.

점점 아픈 증상이 악화되어 발광하기 시작하였다. 밤중에 일어나 밖으로 나와서 거리를 헤매었다. 부슬비 내리는 음산한 밤 혼자 나가니 부인이 쫓아왔다. 나는 귀찮은 생각에 도망쳤다. 부인은 나를 부르며 깊은 밤인데도 따라온다. 그때는 비포장도로여서 길은 질척거리는데 도령마루(현재의 연동 입구 해태동산)까지 잰걸음으로 도망했다. 그래도 아내는 쫓아온다. 더욱 야릇한 마음으로 숲 속으로 들어가 어느 묘지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내는 부르다 부르다 목놓아 울면서 돌아간다. 그것도 홀몸도 아닌데.... 나는 동리사람 말대로 미쳤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모지에 누워 인생의 허무함과 환경이 사람을 죽이는구나 탄식도 해보다가 늦은 밤 젖은 옷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그래도 돌아온 것을 고마워했다.

언젠가 나사로 병원에 갔었다. 그때는 큰형님과 같이 갔었다. 군대도 가기 전의 일이다. 어디가 아프냐고 의사가 묻는다. 나는 철부지였던 것 같다. 신경쇠약이라고 대답했다. 대뜸 의사가 화를 낸 어조로 신경쇠약이 뭐야 하고 소리지른다. 나는 머쓱하고 가만히 있었다. 의사가 형님과 무슨 말을 하다가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돌아왔다.

이후에 병은 골수에 미치고 군대에서 위병으로 고생했다. 제대 후도 복학을 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먹고 살기 위하여 몸을 돌볼 수 없었다. 그런 것이 점점 불면증이 심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수면제를 한두 알 먹은 것은 효과도 없어서 미제 수면제를 구해서 대여섯 알씩 먹었다. 그러나 효과가 나타나기는커녕 점점 몸은 나빠지고 결국 발광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의원을 찾아갔다. 가만히 진맥하더니 의원의 말인즉 당신은 육십난 노인보다 더 맥이 없소. 침을 놓을 수 없소. 이것이 진단이다.

아내는 아기를 업고 나를 부축하여 묵은성에서 관덕정 북쪽 탐라여관 근처에 살고있는 임의원에게로 데려갔다. 돈이 없으니 차를 탈 수 없어 걸어서 가니 시간이 한참 걸리었다. 의원이 진맥을 하더니 침은 못놓겠다는 것이다. 반듯이 눕혀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의 박동을 알아본다. 그리고 한약 처방전을 써주시며 약을 지어다 먹어보라는 것이었다. 희망이 있다 없다는 말은 없으니 거의 가망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후 하도 못견디어 신성여중(지금의 중앙성당) 앞 H의원을 찾아갔다. H의원이 맥을 짚어보더니 ‘당신은 자식도 생기면 안돼’ 이것이 진단의 전부였다. 그러면서 가보라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도 사형선고였다. 죽어가는 사람 보고 막말 하는 이런 의원은 의술을 베푸는 게 아니라 돌팔이라는 것이 알았다. 나는 그 후 환자나 곤경에 처한 딱한 처지의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하며 같이 괴로워해줄망정 막말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사로병원 북측에 신들린 여자가 환자를 고치는데 매우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다며 외할머니도 거기 갔다와서 아픈 것이 호전되었다니 가보자는 것이다.

아내를 뒤따라 갔다. 가본즉 사람이 열 명도 더 와있고 나보고 앉으라는 것이다. 있는 힘 다하여 앉으니 여자가 나의 주위를 몇 번 돌더니 이제 신이 내린다는 것이었다. 한참 있어도 신이 내리는 것 같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은 신이 내렸다 하면서 손으로 자기 몸을 때리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들썩거리기도 하였다. 여러 사람이 두 손으로 자기 몸을 때리니 방안이 정말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나를 때리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니 이상하다는 것이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아 있으니 손가락이 약간 움직인다. 그랬더니 이 여자가 이것봐라 움직이지 않느냐. 신이 내렸다고 소리지른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동맥이 뛰어서 손끝이나 몸이 약간씩 움직이는 것이지 무슨 신이 내리냐, 이렇게 생각하니 움직이던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눕혀서 두 손을 펴서 가슴 위로 얼굴 위로 빙빙 돌린다. 최면을 거는 행위다. 나는 생각이 영 딴판이다. ‘이 여자가 세수도 제대로 않고 손도 정결하지 못하다. 어젯밤 무슨 짓을 하다 늦잠 자고 머리도 단정히 빗지 못했구만, 그러고도 무슨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해보려고 하는데 아무리 그 손이 왔다갔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걸’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별다른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많은 병자들이 보는 앞에서 아무 변화가 없으니 그 여자가 당황한 어조로 보호자인 내 아내에게 집으로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달구지에 실려 집으로 왔다. 또 한번 저승행을 허락받은 것이구나 생각하며 실려온 것이다. 내 아내는 부엌으로 가서 눈물을 닦는 것 같았다. 양약도 먹어보고 주사도 많이 맞았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으니 간호사를 청해서 집에서 주사를 맞는 것이다. 아로나민이 좋다고 해서 수십병 사다가 몇 달 동안 매일 맞았다. 맞다보니 팔뚝에 핏줄이 죄다 오무라들어버렸다. 지금도 주사를 맞으려면 손등의 핏줄에 넣는다. 어떻게 하든 일어날 수만 있으면 일하러 나서는 것이다. 죽음의 신도 나를 데려가는 것이 진저리가 난 모양이다. 죽음의 문턱에 걸려 되돌아온 꼴이다.

어느날 오후 저녁 무렵이었다. 회사에 일이 있다 해서 가는 참이었다. 한천교를 지나가는데 고의원(고성종)이라는 사람이 앞을 막으며 느닷없이 묻는다. “너 왜 이렇게 되었냐” 하는 이 말을 듣고 울컥 설움이 복받쳤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핑 돌았다. 고의원이 “너 죽게 되었다”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도 예견하고 있었다. 며칠내로 자리져 눕게 되고 그러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이다. 어린 자식과 아내에게 큰 죄를 짓게 된다. 그러나 무슨 수가 없다. 모두 하늘에 맡기자. 이지음은 삶의 의욕을 잃은 것 같아 아내에게 가책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날은 내가 생각해보아도 이상하리만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고의원의 말에 온순하게 응하고 대답하였다.

“나도 며칠 못살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을 통 잘 수 없고 아무리 수면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으며 미칠 것 같습니다. 몸이 축 늘어지고 식욕이 없으며 현기증으로 걷는 것도 힘듭니다” 하였더니 고의원이 “너는 병을 모두 고의원에게 주어버렸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나는 이제 병 없다. 이렇게 마음을 가지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해서 그 분네 집에 갔다. 침을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청심환을 매일 한 알씩 먹고 쇠고기를 매일 한 근씩 먹으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 때까지 들어본 말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감사하고 진심에서 나를 생각하는 구세주의 말이로구나 하고 기억 속에 각인된 말은 “너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고의원의 말이다. 이제도 그 장면이 선연하다. 진정한 심의(心醫)의 말일 것이다. 아내를 제외한 세상사람 모두가 나를 기피하고 있는데 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구원의 소리를 들려주다니 어찌 감격하지 않을까? 모두가 죽음 앞에서는 진실하다고 한다.

청심환은 무슨 수로 사먹고 거기다 쇠고기는 어디 있어 먹을 수 있나. 불가능한 말을 듣고도 다른 때 같으면 울컥할 것을 이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이 앞에 왔는데 누구를 원망할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부질없는 행동을 해서 되나. 이렇게 생각하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직장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넋두리 삼아 고의원이 한 말을 했다. 아내는 놀라는 기색도 없다. 다음날 사채를 내어 고의원께 부탁해서 청심환을 30알이나 사왔다. 매일 한 근 먹으라는 쇠고기는 삼일에 한번 꼴로 식탁에 올려주었다. 짐을 잘 때는 고의원 말대로 하는 것이다. “병은 다 고의원에게 비싸게 받고 팔아버렸다. 나는 아픈 곳이 아무데도 없다” 이 말을 반복해서 되뇌이었다. 그러다가 구들 천장에 부처님 이마의 점을 그리고 그 점을 눈을 감고 확인하다. 몇 번은 뚜렷히 확인되는데 얼마 안있어 사라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하면 그 부처님 이마의 점이 보이다 이내 사라진다. 이러길 무수히 반복하노라면 눈이 감기고 잠이 든다. 어떤 날 밤에는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읊조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아무리 두통이 심하고 꿈 속에서 시달리지만 뜬 눈으로 하얗게 밤을 새우는 불면 보다는 나았다. 정말 고의원이 구세주 같았다. 생명을 지금까지 연장하는 단초를 마련하여 준 것이나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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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근성 2015-07-20 08:21:00
잘 읽고 있습니다. 60년대 초 서문시장안에서 장사 하던 분이 몇째 형님 이우꽝? 어질게 생기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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