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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37)돼지야, 날 살려라!
[현태식 칼럼](37)돼지야, 날 살려라!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7.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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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이시돌목장에서 새끼돼지 분양을 하고 사료도 싸게 공급해준다는 설명회가 있었다. 두 마리를 분양 신청했다. 마당에 담을 쌓아 우리를 만들었다. 돼지를 기르는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부모님께서 늘 돼지를 기르고 새끼도 쳐서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였다. 부모님이 돼지 기르는 방식은 우선 식기를 씻은 구정물에다 겨를 섞어서 주고 고구마줄기나 신선한 풀을 먹이로 주었지만 돼지가 병에 걸려 죽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돼지는 의당 이렇게 기르는구나 하고 아주 가볍게 본 것이 탈이었다. 무더운 여름인데 통풍이 잘 안되고 서늘한 그늘이 없으니 돼지가 더위를 먹었다. 그리고 돼지먹이를 잘 만들어주어야하는데 이시돌에서 잘 공급해준다는 사료가 제때 공급되지 않을 뿐만아니라 돈이 없어 사료를 사다 먹일 수도 없었다.

그런데 기발한 착상을 해냈다. 그것은 식당마다 버리는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해다 돼지를 먹이면 정말 잘 클 것 같았다. 사람이 먹다 남은 것이니 영양가가 풍부하여 얼마나 성과가 좋을까 하고 생각만 해도 흐뭇해졌다. 관덕정 근처 유명한 평양면옥(지금은 함흥면옥) 주인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부탁해서 낮과 저녁때 음식찌꺼기를 가져왔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초등학교 1학년 다니면서는 월반했고, 중학교 졸업해서 일년 놀다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는 특대생이었고 또 고등학교 졸업해서 2년후에 제주대학에도 우수한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나의 이런 변화 많은 이력 때문에 제주시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점심때 나는 식당에서 짬뽕통을 들고 나오는데 동창들은 공무원이나 회사 사원의 신분으로 버젓이 식사하러 식당으로 들어온다. 학교 다닐 때는 나도 남에게 비굴하지 않고 머리를 뻣뻣히 세우고 다니고 남들도 나는 장래에 뭐가 되어도 될거라고 기대하였는데 그들은 멋쟁이로 고급식당에 들어와 식사를 하고, 나는 허약한 몰골에 남루한 차림으로 짬뽕통을 들고 나오다 마주치면 나도 창피한 얼굴로 땅만 보고 나온다. 그들은 ‘너도 별볼일 없이 되었구나. 학교 다닐 때는 공부께나 한다고 재고 다니더니 공부 잘한게 그러냐?’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흘기고 가는 것이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게 창피하다고 못하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냐?”고 자문자답하고 태연히 짬뽕통을 싣고 관덕정 넘어 먹돌새기 집으로 와서 돼지에게 먹인다.

나를 아는 학교 친구들은 가까이 하면 내가 어쩔줄 몰라 하게 될거라고 배려해서 짐짓 모른체 하는 친구, 네가 그것 밖에 다른 별 수가 있냐 하는 식으로 멸시하는 친구, 이렇게 두 부류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나는 이 역경을 이겨내야한다는 생각으로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에 이 짬뽕통을 날라다녔다. 음식찌꺼기를 사료로 주면 잘 자라리라던 돼지는 시름시름 앓으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이 돼지가 죽으면 우리는 신세가 동난다. 돼지값도 고리채를 빌린 것인데 돼지를 키워 한 마리를 팔아서 빚을 갚고 한 마리는 자본을 만들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아파도 써본 적이 없는 약인데 돼지병을 고치려고 그 귀한 ‘페니실린’을 썼다. 그것도 부부가 상의해서 어떻게든 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 그러니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보자고 밤새 연구해서 이른 새벽에 약방으로 달려가서 페니실린을 사고 주사기를 사서 무조건 돼지 뒷다리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꽂고 주사를 놓았다. 주사를 몇 번 더 놓았더니 죽지는 않았다. 그런데 병들었던 돼지는 잘 자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내다 팔았지만 본전도 못 찾고 손해를 보았다. 생각해 본즉 음식찌꺼기는 매운 것, 신 것, 짠 것 다 들어있고, 찌꺼기를 가져다 삶아서 살균처리하지 않은 채 먹였으니 병이 안날 턱이 없다. 돼지사육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실패 밖에 성공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매운 것, 짠 것, 신 것이 뒤섞인 것을 적당히 중화시켜서 먹였으면 병이 안났을지도 모른다. 돼지사육에 실패하고 빚만 지었다. 아내는 이발관의 떠난 자리에 시집올 때 가져온 재봉틀을 놓고 처녀때 제복점에 다닌 경험으로 이름도 거창하게 ‘명동양장점’이란 간판을 걸고 운영하였지만 자본이라고는 무일푼이니 헌옷 수선이 주업이고 가끔 새옷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일수돈을 꾸어 동문시장 포목점에서 주문량정도의 옷감만 사다 제품을 만들고 평상시에는 남의 헌 옷 수선을 더 많이 했다. 큰아들이 태어났지만 누구 손보탬 해줄 사람도 없으니 일인 4역 5역 하는 것이다.

양장점 운영하랴, 일감이 없을 때는 밭에 김매는 것, 돼지 키우고 애기 보는 것들을 혼자 다 해야했다. 게다가 병약한 남편 뒷바라지에다 장모님상에 아침 점심 저녁 삼식을 올리는 것들을 혼자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으니 눈코 뜰 새 없다는 표현으로도 너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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