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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35)재산 만들기
[현태식 칼럼](35)재산 만들기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7.01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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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우리가 사는 집은 남향집이고 대로변이므로 남쪽 편에는 이발관이 세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이발관 주인이 바람나서 아이들과 부인은 고향으로 가 버리고 이발관은 영업이 부실하여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다는 소문이 났다.

그런데 나도 무엇이든 해야 살 수 있지 않은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다. ‘죽을 것이다’라는 판정이 내린 몸으로는 일정한 시간을 근무하는 직장을 구할 수 없고, 군대생활을 해 본 결과 나의 성격이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으니 직장 구하는 부탁도 해 보지 않았다. 굴러굴러 인생 밑바닥으로 한 없이 떨어져 가는 과정인 것이다.

아내와 상의해서 이 이발관을 사서 운영해 보자고 합의했다. 집세는 내지 않아도 되고, 의자도 나무의자니 값나갈만한 것 없고 시설이라야 면도와 머리깎는 기구(속칭 바리깡), 고데하는 집게가 전부이니 일부는 외상하고 일부는 일수돈 꾸어서 해보자고 하였다.

사채를 꾸어다 이발관을 샀다. 내가 기술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태어나 이발관에는 머리만 깎으러 갔지 남의 머리를 깎거나 면도를 해 보거나 이발기구를 잡아본 적이 없는 생판 초면생으로 이런 일에 들어선 것이다.

기술자를 데려서 영업을 하는데 이제부터가 지옥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기술자를 상전으로 모셨지만 그의 마음에 안 찬 모양이었다. 걸핏하면 결근이고 일하다 볼일 있다고 나가면 함흥차사다. 나는 손님의 머리를 감기고 수건을 빨고 청소를 하는 잡일을 다 하였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해보는 독립 사업이다.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다. 사채 빚을 내어 시작한 이발관이므로 경영에 실패하면 큰일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했지만 기술자를 데려서는 못할 일이었다.

하루는 일찍 손님이 오셨다. 시골 사람인데 무슨 급한 볼일이 있어 오셨을 것이다. 시골 사람이 이발하고 갈 때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거나 중대한 일이 있음에 틀림없다. 손님을 의자에 모셔놓고 잠깐 앉아 계시면 곧 기술자가 옵니다 하고 밖을 아무리 내다보아도 기술자는 오지 않는다. 정말 답답해서 할 수 없이 1㎞쯤 떨어진 기술자네 집으로 잰걸음을 하였다. 나는 심장이 나빠서 냅다 뛰면 숨이 막히고 탁 주저앉아 멎는 숨을 가누어야 하므로 잰걸음으로 간 것이다. 가본즉 기술자는 출근할 생각은커녕 이불 속에서 누운 채로 엊저녁 술을 마시고 아파서 못 가겠다는 것이다. 억지로 이불을 걷어젖히고 제발 오신 손님 한 분만 처리하여 달라고 애걸하였더니 집 밖으로 나왔는데 가다가 돌어서서 못 가겠다고 하는 둥 노상에서 얼마나 실랑이를 하였는지 이발소에 와 보니 손님은 화를 내고 욕을 하면서 가 버렸다.

추석 때는 대목이라 2~3일 전부터 손님이 많이 온다. 시골에서는 누구나 명절에 이발을 하며 이발소에도 대목을 맞는다. 하루종일 죽어라 일을 했다. 우리 부부는 물을 길어 오고, 머리를 감기고, 수건을 빨고, 바닥을 청소하고 온갖 허드렛 일을 다 하여야 한다. 기술자와 면도사는 머리를 깎고, 면도만 하면 된다. 기술자 비위 맞추느라 식사도 특별 대접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발비 받아 넣는 서랍을 열어보지 못한다. 서랍을 한번 열어 본적이 있는데 못 믿어서 그런다고 역정을 낸 적이 있어 서랍을 열어 돈 계산을 못하고 대략 이발한 머리 수를 헤아리고 얼마 정도 수입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일을 끝낸 다음 계산해 보니 예상보다 너무나 차이가 났다. 예상금액의 반밖에 안 되었다. 귀신 곡할 노릇이고 대목에 벌어 사채 이자라도 좀 갚으려고 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이 때 자기가 직접 못하는 것을 하면 큰일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발기술을 하루, 이틀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다 하다 안되어서 하루에 얼마씩 받기로 하고 영업권을 그 기술자에게 넘겨버렸다. 이번에는 매일 불입하기로 했지만 돈을 주지 않는다. 이발관 해서 돈 벌려다 망하게 되었다.

어떻든 쓰고, 맵고, 짠 경험을 하였다. ‘자기가 직접 못하는 것은 하면 안된다’고 머리 속에 새겼지만 그 후에도 기술이 없으면서 기술자가 필요한 사업을 하였다.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날마나 경험하는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부 둘이만 결정하고 실행했다. 우리 부부는 어떤 흥정을 하고 집이나 땅 등을 사고 팔아도 누구와 의논한 적이 없다. 그랬더니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머니께서 섭섭하시다는 뜻으로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태식인 집을 사도, 밭을 사도 산다는 말을 안 헌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께 말씀 드리면 걱정하실까봐 말씀드리지 못한 겁니다”라고 대답해 드렸다. 그래도 이발소를 그럭저럭 운영하고 있는데 시청에서 시설을 현대화하지 않으면 영업허가를 취소하겠다는 통지를 보내왔다.

우리 이발소는 나무의자 두 개를 갖고 영업을 하였다. 그런대로 아무 탈 없이 영업해 오던 것을 비위생적이니 현대적인 의자로 바꾸라는 것이다. 시설을 새로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내게는 불가능한 일로 날벼락이었다. 이제는 망하는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우리 이발관 맞은 편에 기와집을 새로 지었는데 집주인이 새 집에 무얼 하느냐 생각 중이라는 것이었다. 아내가 그 집 주인을 찾아가 이발관을 하면 괜찮으니 제발 우리 이발관을 사 달라고 애원했다. 시설을 새로 해야 하는데 우리는 능력이 없어 못하고 당신네가 싼 값으로 허가권을 인수하여 새 집에 새 시설을 하면 손님이 많이 오고 돈도 벌게 된다고 설득했다.

사실 우리 동네가 큰 동네지만 이발관은 ‘명동이발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내가 운영한 것이 유일하기에 그 사람도 구미가 당긴 것이다. 그래서 본전도 못 건진채 넘겼지만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그 사람(정판동)이 사주지 않았으면 허가 취소와 함께 시설물은 쓰레기가 되고 사채만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빚더미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뻔 했다. 그 일부만이라도 건진 것이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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