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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33)무일푼의 신접살림
[현태식 칼럼](33)무일푼의 신접살림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6.24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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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제대하고 사회인으로 복귀해도 완전한 제대군인이 아니다. 학보로 제대하면 1학기분 등록금을 내고 복학사실이 확인되어야 제대증이 나오고 복학하지 않으면 다시 입대해서 잔여 기간을 복무해야 한다.

1964년 1월 겨울 날씨는 포근하였으나 병자인 나는 몸이 나른하여 땅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제대복 차림과 제대화를 신고 집에 도착하였다. 결혼하고 15일만에 입대하였으니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오죽했으랴만 막상 제대하고 온 날부터 등록금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큰 산처럼 넘지 못할 절벽처럼 가로막고 선 것이다. 장모님이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으니 스물두살인 딸이 혼자 장사를 치러야 했었다. 그 고초는 또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의지하고 보호해주던 어머니가 돌아가니 주위에서는 따뜻한 동정보다 냉대가 심하였다. 살고 있던 초가도 병수발비로 다 날아가고, 길가의 구멍가게 전세들어 살고 있었다. 전통적 관습에 의하면 처 숙부네가 처부모 제사도 지내고 묘도 관리해야 되게 되었다. 아내의 친정어머님은 처가의 맏며느리지만 물려받아 경작하던 밭들은 이미 처 숙부가 차지해버리고, 조상제사와 명절만 맡고 있었다. 청상과부가 딸 하나 의지하여 고생하여 살면서도 어렵게 사들인 구백평짜리 밭이 있었는데 내 처는 이 밭을 몇 년만 더 경작하겠다고 사정을 하고, 숙부는 밭을 안주면 돌아가신 장모님 귀신을 맡지 못하겠다고 을러대고 있단다. 그러나 아내는 다른 것은 전부 내어드렸으니 집 전세금과 밭 경작하는 것은 좀 연기해 달라고 해도 숙부님네는 못한다고 하면서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힘이 없고 희망이 없으면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 냉엄히 적용되고 있었다. 남편인 내가 장래성이 보이거나 내 아내가 시댁에서 보호를 받는 처지거나 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그런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대학교 한 학기분 학비를 내야하는 절박한 문제가 겹치고 보니 옴찍달싹할 무슨 수가 없었다. 의지할 곳도 없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어찌하랴.

할 수 없이 아내가 울며 숙부님댁에 모셨던 친정어머님 신주를 거두어다 모시게 된 사연이다. 장모님 신주를 모시고 아침, 점심, 저녁에 새로 지은 따뜻한 음식을 세 번 올리고 매달 초하루 보름에는 삭망제를 올리는 것이다.

살 길이 막막하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운명, 바로 그것이 장난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는 장모님 상에 음식을 올리고 밭에 가서 김매고 일하다 낮에 와서 식사를 올리고 또 밭에 나가 일하는 것은 농사철에 하는 것이고 길가 집이니 사과 몇 개 알사탕 몇 개, 콩나물 한 광주리, 두무 몇 모를 외상으로 받아 파는 구멍가게를 하였다. 나는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갔다. 이제는 걸을 수가 없다. 현기증이 난다. 돈이 없으니 병원에 가거나 약방에서 약을 사먹는다는 건 사치다. 확실히 제대하려면 한학기 등록금을 내야 한다. 이것도 등록 기간에 내야지 때를 놓쳐 학교에서 복학하지 않았다는 통보를 병무청에 해버리면 다시 입대해야 한다.

형극의 길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신혼부부간에 깨가 쏟아져야 할 때인데 서로 보기만 해도 좋아 죽고 못살 23세 새색시, 26세 새신랑이 오히려 만나기만 하면 자주 트작거린다. 아버지께는 무서워 말씀 드리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하소연해도 대학은 호강에 겨운 소리여서 오히려 아니함만 못하고, 이젠 누구에게 더 말을 해볼 용기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여유가 있을 때 흘리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사형집행장에서 망나니가 칼춤을 출 때 목이 잘리게 되는 죄수가 목놓아 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 막다르면 그렇게 느긋해져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다. 딱 체념하면 오히려 모든 감각은 마비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 놓인다. 아니 이것은 의식이 없는 상태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이다. 기르던 돼지며 처 숙부네 집에서 신주와 함께 되돌려온 곡식이며 팔 수 있는 건 모두 팔았다. 그러나 학비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이 다 죽을 것이라고 믿었던 현태식이가 오늘까지 살았으니 저승사자도 아무나 데려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저승에서도 쓸모가 있어야 데려가지, 군에서도 쓸모 없고 학교에서도 쓸모 없다. 이러니 이웃도 동창도, 다정한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러니 저승사자도 오직 나와 갈 데 없는 처뿐인 줄만 알고 저승에 가는 날짜를 연기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용담1동 속칭 부러리에 내가 군대에 가기 바로 전에 양아들 하기로 말해둔 홀어머니(딸 하나 있었음)가 계셨다.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장모님이 운명해 버리고, 형편이 점점 어려워지니 나는 면목이 없어 찾아뵙지도 않고 있었는데, 학비 마련 못하여 애쓰는 걸 그 어머니가 아시고 학비의 삼분지일 정도(정확한 금액을 모름)를 보내주셨다. 그리곤 양아들 관계를 없던 일로 하겠다 했다. 내가 그래도 장모가 계셨으면 외딸에 외사위인 나를 도와주었을 것이고, 제주대학에 입학했으니 제대로 다니어서 졸업하고 하다못해 동서기는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형제가 일곱이니 친부모 때문에 양모 모시는 것에 지장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가망성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다고 판단하시고, 양아들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한 것은 백번 타당하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한번 꺼내주신 것을 나는 평생 고맙게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학비를 마련하여 납부하고 복학해서 며칠은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는 말 없이 학교를 그만두었다. 공부할 체력도, 환경도 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내 학벌이 제주대학 국문학과 2년 중퇴지만 중퇴라는 글이 맘에 안들어 학력란을 쓸 때면 ‘2년 수료’라고 쓰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제대증은 나왔다. 이런 일을 치르고 난 후부터는 꿈을 꾸는데 자꾸 군에 입대하라고 나를 잡아가는 것이다. 가위눌림을 당한다.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꾼다. 내가 ‘그 때 학비 내어 정정당당히 제대증을 받았는데 왜 이러냐고 잠꼬대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고 어떤 때는 군대생활을 하는 꿈 속에서 내가 왜 여기 왔지 학비 내고 제대증 받았는데! 나는 다시 군대생활하면 안 돼, 제대했으니까’ 꿈 속에서의 생각이다. 이런 꿈을 지금도 자주 꾼다. 가위눌림이 나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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