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5:29 (일)
[현태식 칼럼](31)군대생활
[현태식 칼럼](31)군대생활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6.15 1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죽음에 이르러 보지 않고는 내 말을 실감하지 못하고, 설사 내 말을 실감한 사람은 죽어버리니 이런 심정을 글로 남길 수 없다. 병이 깊으면 밥을 입에 넣어도 꼭 모래를 씹는 것처럼 목구멍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밥알이 모래같다니 거짓말이라고 할 게다. 왜냐? 이런 경험이 없으니 그럴 수 밖에. 그러나 언젠가 죽음이 임박했을 때 밥을 입에 넣으면 모래알을 입 속에 넣은 것 같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후 얼마 안 있으면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니 죽음에 임박한 자가 어찌 글로 남길 것인가. 그러니 기록으로 남기지는 못하는게 당연하다.

내 옆의 전우는 1~2분 내에 식사를 마치는데 나는 몇 숟갈 뜨지 못한다. 밥알이 입속에서만 맴돌며 영 넘어가지 않는다. 잘 씹어서 죽처럼 되어야 목구멍 아래로 내려간다. 식사를 다른 사람보다 언제나 느리게 하니 늘 기합을 받았다. 또 군대생활은 훔치는 것을 잘 해야 편한데 나는 훔친 적이 없으니 잃어버리기는 하고 훔치지를 못해서 항상 관물 숫자가 모자라서 심한 기합을 받았다. 내가 기합을 심하게 받는 것을 보고 동향 출신 동료가 어디서 모자란 것을 구해다 보충해줘서 더 심한 구타를 면하기도 했다.

완전군장하고 행군을 하거나 구보를 할 때는 숨이 헐떡이고 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서 뒤처지기 때문에 이 또한 고역이지만 기합감이었다. 그래서 매를 맞았다. 행군 도중 숨이 턱에 차서 무의식 중에 총을 떨어뜨렸다. 그랬더니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목숨을 지킬 총을 떨어뜨리면 죽겠다는 것이냐고 하면서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았다.

그래도 훈련소에서 배울 게 있었다. 일본에서 출판한 영어사전에만 ‘코리안타임’(Korean time)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하는데 그 뜻은 예정된 시각보다 반시간 쯤 늦게라고 씌어 있다고 들었다. 한국 사람이 하도 시간 관념이 없어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으므로 일본 사람이 한국인을 업수이 여겨 그렇게 사전에 인쇄해 놓았다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 들은 기억이 있어 늘 불쾌하게 생각했었다. 왜 남의 멸시의 대상이 될만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가 생각해왔었는데 군대에 와보니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있었다. 취침, 식사, 훈련, 휴식 시간의 구별이 명확했다.

대한민국 속에 이런 곳이 있다니.... 암, 그렇지 군대야말로 전쟁을 수행해야하는 집단이고 전쟁은 신속 명확을 생명으로 해야 승리하여 국토를 보전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야말로 시간관념이 철저해야 한다. 그래서 군인은 모두 교육을 철저히 받아 오차 없이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려니 생각하니 매우 반가웠다. 일본놈들아, 논산훈련소에 와보라. 이걸 보고도 ‘코리안타임’ 어쩌고 하는 말이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 알게 될 것이고, 한국인을 멸시하는 당신들의 마음이 비열하고 치사한 인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고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훈련을 마치고 보충대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시간관념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일반 사회의 시간 관념과 다를 게 전혀 없었다. 실망이 너무나 컸다.

그런데 군인 갔다 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는 ‘자기는 좋은 곳에서 군대생활을 했다’고 자랑한다. 휴가 온 군인, 학벌이 좋으면 좋은 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똑똑하면 똑똑한 대로, 어수룩하면 어수룩한 대로 군에서는 좋은 보직 좋은 병과에 배속되어 편안하게 지내다 왔노라고 자랑하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군대생활 어렵게 고생하며 마쳤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별로 만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도 군대생활은 편안하고 보직도 좋은 데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논산 훈련소의 정문에서부터 기합이 심했다. 그런데 몸이 아프고 기억력이 없고 두통이 심하고 의욕이라고는 없는데 훈련이 고되어서 군대생활이 더욱 어려웠다. 배낭을 직사각형 되게 꾸려야 하는데 고기상자 훔쳐다 대검으로 널빤지를 깎아서 직사각형틀을 배낭 속에 잘 맞아 들어가게 만들지를 못해서 기합을 받았다. 결국 훈련의 기초는 고기상자 훔치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데 나는 이 분야에는 소질이 제로였다.

군인은 전쟁터에서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응하고 적군을 물리쳐야 하므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훈련일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도둑질이 몸에 배지 않은 나는 걸핏하면 관물을 잃어 버려 기합, 그것도 ‘원산폭격’이라는 기합을 받을 때는 몸이 부르르 떨며 고통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잘한 것은 M1 소총 사격에서는 우리 중대에서 일등을 해서 중대원들 앞에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 요즘은 그런 엉터리 지시나 훈련은 없어졌겠지 중점심 먹고 휴식 시간에 쥐를 잡아오라 하면 쥐는 잡을 수 없고 오징어 다리를 불에 그을려 바치고, 파리를 잡아 오라면 개미를 잡아 비벼서 들고 가서 기합을 면하곤 했었다.

훈련이 끝나고 101보충대를 거쳐 5사단에 배속되고 거기서 5사단 205포병대대로 떨어졌다. 사단 본부는 경기도 이동면에 있었으나 포병대대는 강원도 금화에 있었다. 전투사단이므로 들판에 매복해서 경계근무를 하는 일이 많았다.

사병계를 담당했으나 정말 두통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선임하사에게 고통을 호소하면 너의 얼굴색이 노란게 환자가 분명하다며 야전병원으로 자주 보내 줘서 견디어 나갔다. 우연한 인연으로 방첩대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학보대상자라 해서 36연대로 전출했다. 다시 일군사령부 군수참모부로 전출해서 원주 일군사령부에서 제대했다. 일군사령부에 근무하지 않았더라면 학보제대 대상자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어 3년간 군대생활 하였을 것이다. 나는 상병제대자다.

군대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처럼 슬렉기(도둑질)하는 요령이 없는 사람은 군대생활이 지옥이 될 수 밖에. 그리고 군대생활에는 특별히 좋은 곳도 특별히 나쁜 곳도 없다. 모두 국토방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에 나라 땅을 적의 침략으로부터 지키는 일이 신성한 의무가 아닌가. 그러니 그렇게 편안할 수만은 없다. 그렇지만 군인은 좀 착실해서 동료 군인의 관물을 훔치거나 보급품을 담당한 자는 팔아서 유흥비로 써버리고 사병들을 굶기거나 헐벗게 하지 말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쟁 때는 생사를 같이 할 전우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방첩대나 일군사령부에서는 그런 일은 별로 없었다. 일군사령부에서는 하기식(下旗式) 행사가 볼 만 했다.

나는 국민의 3대 의무인 국방의 의무를 훌륭히 마쳤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국토방위 의무를 다하여 떳떳이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누리려 하였다. 내 군번은 10994957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고 이 땅에서 추방해 버리고 싶은 사람이 병역기피자다. 그 중에서도 병역을 기피하고 공직에 있는 자를 더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들처럼 소가죽을 쓴 양심없는 자는 행세할 수 없도록 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6·25의 비극을 생각해 보라. 북괴군과 중공군이 개미떼처럼 금수강산을 덮쳐오며 고귀한 우리의 생명을 살육하여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그네들의 불의의 침략을 막아 국토와 내 동포를 지키고 살리기 위해 꽃다운 젊은이들의 목숨을 초개같이 던져 조국을 구하였다. 이들이 피흘려 싸울 때 병역기피자들은 자기만 살겠다고 미국으로, 일본으로 도망가고, 요령 있는 자는 신체검사에서 징집면제 판정을 받아 안전지대에서 보신하면서 일선에 나가 죽는 놈만 어리석고 병신이라고 쾌재를 부르지 않았던가.

그 뿐이랴. 전쟁은 끝나고 제대하여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사회로 나오면 우리 공직자들은 그들을 따뜻이 감싸주었던가. 더욱이나 병역을 기피한 그들은 고위공직자가 되어 뇌물로 치부하고 연약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이 병역사범을 어찌 가만두고 볼 것인가. 이들을 우리가 응징하는 노력과 분노를 보이지 않는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때 누가 국토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랴.

내가 학창시절 정계의 유명한 모 인사가 말할 때마다 애국애족을 외치고 글 쓸 때마다 조국건설을 주장하기에 마음 속으로 존경했었다. 허나 나중에 알고 보니 6·25 전쟁이 일어나자 자기 아들은 미국으로 보내어 병역을 기피시키며 당신은 장관자리에 올라 굶어 죽는 국민으로부터 거둔 혈세로 유학비를 보냈었음을 알 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누가 그 사람이 훌륭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국민은 모든 사물에 대하여 합리적, 이성적, 합법적, 도덕적 기준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훈련을 이제부터라도 해야 한다. 내 기분에 맞거나 내 편이거나 하는 이해관계를 전제로 호불호를 말하는 습성 때문에 사회의 불안과 정치적 후진성, 기업의 부실, 불신과 부조리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 아닌가.

그늘지고 습한 곳에는 어김 없이 박테리아 곰팡이가 번식하고 병원균이 발생한다. 햇볕에 쪼이고 밝고 건조한 곳에 내어 놓으면 썩은 것, 곰팡이의 구린 냄새는 사라진다. 모든 음습한 곳은 파헤쳐 햇볕을 쬐야 한다. 건조시켜야 한다. 통풍이 잘 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국민이 서로를 보듬는 단결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얀 눈이 내렸는데 때 마침 훈련을 끝낸 이등병이 부대에 배치되어 들어왔다. 아직 소대로 배치되지 않은 대기 상태였다.

선임하사가 이등병을 인솔해서 땔감으로 싸리남를 해오라고 산으로 보내었다. 나뭇꾼이 되어 반함에 점심용 쌀과 부식을 타고 산에 가서 싸리나무를 하다가 점심을 지어서 들판에서 먹으니 맛이 꿀맛이었다. 옆에서 신참병이 거들어 주었다. 나는 고참 일등병이니 밥도 마음놓고 먹을 수 있었다. 신병 때는 음식을 시간에 쫓기며 먹어야 했으므로 몇 술 뜨기가 무섭게 숟가락을 놓아야 했으니 항상 배가 고팠는데 이 날은 여유 있는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천천히 잘 씹으면서 양껏 먹었다.

그런데 너무 먹은 것이 위에 탈이 나버렸다. 몸이 쇠약하여 소량만 먹다가 너무 많이 먹으니 위가 온전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위가 아파 며칠 계속되는 것이었지만 어쩔 방도가 없었다. 훈련소를 떠나 최전방에 배치되고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고 더구나 일등병에겐 남는 것은 배고픔뿐인 것은 일선에서 1960년대에 군대에서 졸병 생활한 사람은 다 안다.

이때 심하게 앓았던 윗병은 군대생활 내내 정신적 타격을 주었고 그로 인해 신경성 위궤양으로 발전해서 평생을 윗병환자로 남게 된 단초를 얻은 것이다. 별의별 약을 써보고 돈을 들여도 치료치 못하여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