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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29)청사진 없는 결혼
[현태식 칼럼](29)청사진 없는 결혼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6.0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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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나이는 스물이 훨씬 넘었고 출세해서 집안에 보탬이 되리라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집안에서는 아버지를 비롯해 형제들도 곱게 보아주지 않고, 제주대학도 2학기에는 장학생이 못 되었으니 퇴학당할 형편이고, 어머님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골칫거리가 나였을 것이다. 그러다 그냥 죽으면 몽당 귀신이 되어 집안에 우환이 겹치면 늘 총각귀신이 어떻고 하는 입질에 오를 것이니 이 또한 근심이 아닐 수 없었을 게다.

어머님이 새각시를 구하겠으니 장가를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병든 몸에 생활력도 전혀 없는데 남의 딸을 데려다 어떻게 살아가라고 그런 말씀하십니까?” 하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역정만 내시면서 내 처지를 생각해주시는 것 같지 않았다. 큰형님도 “이제 장가를 보내면 어떻게 살아가라고 그러십니까? 결혼은 말도 안됩니다.” 하고 거들었다가 “넌 아무렇지도 않은 아일 데려다가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무슨 말을 하냐?”며 역정을 내시니 큰형님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정말 해서는 안될 일을 어머님이 시키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의 신부감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모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장모님 되실 분은 성질이 매우 온순하셔서 남에게 싫은 말씀을 못하시는 분이셨다. 29세에 남편을 여의고 딸 밑으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린 때 죽었다고 한다. 4·3사건 때 노형리 월산마을의 집은 불타버렸고, 시내에 들어와 살다 고향 가까운 곳으로 옮겨오느라고 용담동 신설마을인 먹돌새기로 이사왔다고 한다. 난민들이 남의 밭을 삯내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에 당신도 어렵사리 초가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새각시 나이가 스물한 살이어서 궁합이 맞다고 하시며 어머니는 공들여 찾아 다니는 것이었다. 밤마다 어머니가 색시댁 모친께 찾아가서 아들 자랑을 하고 딸을 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린 때부터 부지런했고 학생 때 공부 잘 했다는 것은 동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색시 어머니도 여러 번의 요청에 넌지시 거절을 거둔 듯 했다. 혼사이야이가 돌자 이대순이란 여자분이 혼사를 방해하고 나섰다. “태식이 미쳤수다. 폐병 걸렸수게. 딸 주면 안됩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실은 폐병에 걸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쳤다는 소문은 마을에 사발통문처럼 벌써 돌고 있었다. 이런 소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 때였다. 거울을 보면서 내가 정말 잘못 알고 있나, 길을 걸으면서 내가 바르게 걷고 있는가? 사물을 보면서 비정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정말 미친 것 같았다. 정신이 돈 것을 내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사람만 보면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되고, 겁도 났다. 그런데 한번은 색시어머니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딸에게 “태식이와 이야기해보니 정신 나간 사람 같지는 않더라. 정상인 같아라.”고 하여서 나와 결혼하게 되었노라고 하지 않은가. 이런 말 하기가 쑥스럽고 창피하지만 있었던 일 그대로 쓰는 것이다.

가망 없는 자식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투자 가치가 있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고 옳은 판단일 것이다.

나는 혼인할 떄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도 모두 준비하는 새 양복 한 벌을 입지 못했다. 다른 형제가 결혼할 때는 와이셔츠, 넥타이, 새 구두, 새 양복, 새 한복을 해 주셨고 예물도 준비해서 신부에게도 금반지를 끼워주고 하시던데 어머니는 나에게는 와이셔츠 하나를 해 주고 끝냈다. 이것이 다 돈벌지 못한 데 원인이 있음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양복은 시장에서 싸구려 제품을 사주고 넥타이는 둘째 형이 선물해 주고, 구두는 둘째 동생이 기성화를 사주어서 장가가는 날에 입고 예식은 대충 치렀으나 신발은 작아서 신고 다닐 수 없어 아버지께 드렸다. 또 양복은 싸구려 가짜라서 입고 다니지 못해 벗어 버렸다. 결혼식 뒷날 장모와 함께 처가어른들께 인사를 다니는데 운동화 신고, 군복을 염색한 빛 바랜 바지와 골덴옷감으로 만든 재건복, 그것도 등이 찢어져 누빈 것을 입고 인사를 하러 다니니, 장모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실망이 컸을 것이다. 일생에 딸자식 하나 키워 결혼시켜서 맞은 사위의 몰골이 이 모양이었으니 오죽이나 섭했을까. 인사를 다니는 중에 우연찮게 장모님 얼굴을 봤더니 즐거운 구석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신부에게 변변한 옷 한 벌 해준 것 없고, 실반지 하나 끼워주지 못한 사위를 장모님은 어찌 생각했을꼬.

1962년 3월 16일 결혼하고, 보름 후인 4월 1일 군에 입대하여 1년 8개월 군대생활을 하고 제대했다. 그 사이에 장모님께서는 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세상을 뜨셨다. 이 세상에 와서 이러한 기구한 운명을 짊어지고 살다 가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29세에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만 남았다. 4·3사건에 시골집은 불타버리고 시내에 피난와서 지낼 때에 그 마음 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청상과부인 장모님을 경찰에서는 호출해서 남편 내어 놓으라 닥달하고 남편이 죽었다고 하면 산으로 도망친것 아니냐며 핍박했다. 또 시국이 잠잠해지니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는 구박이 더 심해져갔다. 그래도 참으며 조상님 제사 명절차례 도맡아 모시며 맏며느리 책임을 다했다. 그런 가운데 행색이 거지 같은 별볼일 없는 사위를 보고 말았으니 병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6개월동안 투병하시다가 4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으니 한 많은 인생 긴 한숨 맞을 날 없이 허위 허위 살다가 바람처럼 이승을 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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