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날.
한라산 봉우리마저 그들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마저 해치는 뿌연 것들이 고요하게 깔리며 모호한 웃음을 짓는다.
길 잃기 십상 일어날 고사리가 자라나올 때 찾아오는 고사리 장마다. 제주의 숲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
3월말에서 4월초 쯤 땅을 촉촉이 적시는 짧은 장마를 언제부터 누가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정겹고 아름다운 이 말은 제주를 느끼기 충분하였다.
“고사리 한웅쿰이믄 식게 명질 다헌다”
고사리는 산 자의 음식이 아니라 했다.
살림이 어려워 계란 한 알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 메밀가루 묽게 개어 고사리 두어 가닥 얹어 부침으로 젯상에 올렸다 한다.
식게 퇴물은 먹을 것 없는 아이들에겐 귀한음식으로 부침 한 장을 여러 조각내 나눠먹던 애틋한 음식이다.
정성을 다해 조상님께 올린 제주사람들의 마음이다.
한철에 아홉 번 열 번 악착같이 싹이 올라오는 고사리처럼 자손이 끊기지 않게 해 달라던 제주사람들의 소원이란다.
제주에 온지 두 번째 되던 해,
방치된 밭 둔덕에 고사리 끊으러 따라갔다.
제주사람 눈에만 익은 고사리가 내게 쉽게 곁을 줄 리 없겠지만,
거친 덤불을 헤치고 울퉁불퉁 둔덕을 따라가다 보면 제주의 숨결과 검은 피부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꼿꼿하게 서서 이파리 끝을 동글게 말고 있는 고사리를 보았다.
너는 누구냐,
어찌 이리 예쁜가,
솜털 보들 한 아기 손으로 독을 쥐고 있다가 비비 비틀어 말라진 뒤 물에 뱉어 놓아야 그 직성이 풀리는 것이냐.
고사리 하나씩 끊을 때마다 몸을 굽혀 절하는 몸짓은 잘생긴 한라의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숙이는 것이라 하는데,
무심하게 부는 바람 한 줄에도,
들에 자라는 푸성귀 한 가닥에도, 어느 것 하나에도 의미를 두는 속 깊은 섬인 것을,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 땅에 자라난 곡식을 거부하여 수양산에 칩거하여 고사리를 캐 먹었다는 일이,
생고사리에 독이 있으므로 생명을 부지 할 수 없었거나,
은둔하러 들어간 수양산조차 주나라 땅임을 깨달아 고사리조차 입에 대지 않아 굶어 죽었거나,
서사가 분분하다만, 그들 형제의 충심은 의심치 말았으면 한다.
수양산을 바라보며 단종의 복위를 꿈꾸던 성삼문의 시조를 한 수 읊어본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 하노라
주려 죽을진대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 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비가 온다.
고사리 장마다.
이 비 그치면 쑤욱 올라오는 고사리 끊으러 제주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꿈에 부풀어 한달 살이를 왔더니
때맞춰 고사리 장마 ㅠㅠ
나가면 비오고,들어오면 해뜨고...
'모호한 웃음을 짓던' 그때 그 날씨가
작가님 글 속에 있네요~
추억에 젖어,잘 읽었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