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자청비](137)할머니, 할머니
[자청비](137)할머니, 할머니
  • 박신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3.21 09: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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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애 수필가
박신애 수필가
▲ 박신애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참 신기하더라. 치매에 걸려도 사람 기본 성정이 남아있나 봐. 내가 돌보는 한 삼춘이 95세에 치매거든. 거동이 많이 불편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셔. 침대에 종일 누워있고 화장실도 혼자는 못 가셔. 그런 분인데도 그렇게 나눠주길 좋아해. 말도 얼마나 예쁘게 하시는지 글쎄 인사만 해도 무조건 이쁘다고 하는 거야.

집에 오는 택배기사, 정수기 코디 다 예쁘고 고맙다고 하면서 돈을 줘요. 자녀들이 할머니 용돈으로 만 원권으로 바꿔서 두둑이 챙겨주거든. 그 돈을 몇만 원씩 옷 속에 넣어뒀다가 만 원씩 막 주는 거라. 집에 사람이 여럿 왔다 가는 날이면 할머니 용돈이 다 없어지는 거야. 내가 보니 안 되겠다 싶더라고. 따님한테 어머니 용돈 만 원짜리 말고 천 원짜리로 바꿔서 드리라고 했지. 나한테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돈을 주려고 해. 자기가 준 걸 잊어버리고 또 주고 또 주고.

" 할머니 나 괜찮아, 나 돈 많아요, 이거는 할머니 맛있는 거 사드셔요." 그랬지. 내가 뭘 할 때마다 ‘고맙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러시는데 잊어버리고 그 인사를 몇 번을 하시는 거야. 과일을 하나 깎아드려도 ‘하나님, 잘 먹겠습니다. 예수님, 사랑해요.’ 그래. 얼마나 이쁘신지 아기 같다니까. ‘참 좋다, 사랑합니다’ 늘 이런 말을 해. 이 할머니랑 있으면 재밌고 이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나 완전히 이 삼춘 왕팬 됐잖아.

할아버지도 점잖고 좋으신 분이야. 나이가 많으시니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몸이 많이 불편하셔. 아들딸들이 제주 시내에 사는데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와서 자고 가. 절대로 두 분만 두는 법이 없어. 어쩌다 사정이 생겨서 누구도 못 올 거 같으면 나한테든 누구한테든 꼭 부탁하더라고. 콩 심은 데 콩 난다더니 다들 얼마나 착한지 몰라.

다른 삼춘은 88세에 장애등급이 4등급이야. 꽤 건강하신 편이니까 마실도 잘 다니시지. 땅이 많아, 부자야. 아들들한테 십억을 넘게 해줬대. 딸들한테는 그만큼은 아니고 5, 6천씩 줬다고 하더라고. 여기는 남아선호사상이 심하니까 그 정도라도 어디야. 암튼 논밭전지 빌려주고 임대료 받는 것만 해도 어르신 내외 생활비는 충분해, 게다가 자녀들이 용돈도 많이 주니까 현찰도 넉넉해.

그런데 나 일하러 간 첫날 펑펑 울었잖아. 두 노인네 사는 게 얼마나 서글프고 불쌍한지. 세상에, 세상에. 반찬을 김치 하나에 물 말아 드시는데 밥도 진짜 쪼끔 드셔. 내가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물이 안 나와. 설거지도 덜 끝났는데 할아버지가 수도 밸브를 잠가 놓으신 거야. 파이프 어디서 세는지 안 쓸 땐 잠가 두신대. 사람 불러 고치면 된다고 말씀드려도 돈 든다고 그냥 그렇게 지내시는 거야. 불도 안 켜고 에어컨이 다 뭐야, 선풍기도 전기세 아깝다고 안 틀어.

한 번은 할머니가 코로나에 걸렸어. 잘 못 드시니까 죽을 쑤어 달라는데 쌀만 넣으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한테 절대 안 된다, 이거는 잘 드셔야 회복된다, 두부라도 한 모 사 오라고 그랬어. 근데 두 부 한 모로 일주일 드셔. 내가 너무 속이 상한 거야. 어떨 땐 그냥 내가 장을 봐 가지고 가기도 했어. 돈을 쌓아두고도 본인들 위해서는 한 푼을 안 써.

자녀가 다섯이랬나, 그래도 딸 둘은 자주 왔었거든. 이젠 오지도 않아. 내가 그 집에 3년째 가고 있는데 둘째 딸이 반찬도 해 보내고 자주 오곤 했어. 근데 할머니가 어쩜 그래, 일하느라 바쁜 딸이 정성껏 반찬을 해다 주는데 실컷 잘 자셔놓고는 “ 아이고 그거 너무 맛없어서 못 먹고 다 버렸다.”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 할머니, 다 자셔놓고 끝에 양념 남은 거 그거만 버렸잖아요, 잘 드셔놓고 왜 그러세요?” 그러는데도 할머니는 “ 아유, 맛대가리도 없어, 그런 거 다시는 해오지 마라.” 딸이 너무 상처를 받는 거야. 할머니가 그렇게 말을 해. 자식이라도 자꾸 그러면 멀어지기 마련이지. 용돈 아무리 보내면 뭐해, 안 먹고 안 쓰는데.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이전엔 노후에 대해 하나도 생각 안 하고 있었거든. 이 일하면서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일하러 갈 때도 교회 갈 때도 걸어 다니잖아, 운동 되라고. 먹는 것도 훨씬 신경 쓰게 되고. 뭣보다 생각하고 말하는 거 조심하고 정신 차려야겠다 싶어. 나이 들어서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살게 될지가 참 중요한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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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2024-03-21 16:53:44
어떻게 살아야할까?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좋은 습관을 들여야 겠어요!!!
고운말, 친절한 마음, 긍정적인 시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리오 2024-03-21 10:32:41
많은 생각이 스쳐가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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