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문상금의 시방목지](99) 봉림사 북소리
[문상금의 시방목지](99) 봉림사 북소리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3.04 13: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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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사 북소리
 

문상금
 

특히 석양이 질 때
그 울부짖는 듯
붉은 북소리

깨어나라
깨어나라
붉은 북소리

둥둥
둥둥둥...

힘껏 두드려
온 세상을 불 밝힐 수 있다면
나도 밤을 새워 북을 쳐보리라

* 봉림사 : 하논에 있는 절
 

-제8시집 「하논」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저녁 석양이 지는 끝 모를 들녘에서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쇠스랑과 작은 수레 그리고 캐다가 만 감자가 흩어져 있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교회당에서 울려 퍼지는 슬프도록 평화스러운 종소리와 극도의 아름다움이 만들어낸 비장미 ‘만종’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이발관이거나 어느 허름한 밥집 벽에 종종 걸려 있었다. 그림 복사본이나 혹은 자수 같은 것으로 선명히 뇌리에 찍혀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종소리나 북소리를 유독 듣기 좋아하였다. 멀리 공간속으로 퍼져나가는 그 떨림 같은 것 설렘 같은 것을 느낄 때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었다. 퇴고의 뒤끝, 최고의 피로도와 극치감이 동시에 올 때 저도 모르게 바르르 영혼까지 떨리지 않던가.

서귀포성당의 삼종기도 종소리, 약천사의 북소리, 법화사의 북소리를 전부 시로 표현하였고 몇 번 산사음악회 등에서 시낭송을 한 적이 있다. 그 삼십년의 시간 속에서 약천사나 법화사의 북소리들은 점차 사라졌고 북이나 북을 떠받치던 망루도 없어졌다. 지금은 서귀포성당의 저녁6시 삼종소리만 남아있다.

올해 만 팔십을 갓 넘긴 고영우화백은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도 저녁 6시만 되면 서귀포성당으로 달려가서 종을 친다. 서귀포시내를 은은히 퍼져 나가 한순간 모두를 경건하게 만드는 그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절로 온갖 하던 일 멈추고 밀레의 ‘만종’의 모습처럼 가장 겸손하고 경건한 자세로 두 손을 모우고 고개를 숙이고 잠시 감사의 시간을 갖곤 한다.

가끔 선회하는 솔개와 벗하여 하논을 뱅뱅 산책 돌 때 어느 날 서쪽 봉림사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져 나왔다. 붉은 석양이 울부짖고 있는 하늘 높이 그 북소리들은 솔개처럼 날아갔다. 아니 솔개가 그 종소리들을 입에 물고 날아올랐다. ‘깨어나라, 깨어나라’ ‘둥둥... 둥둥둥’

힘껏 두드려, 온 세상을 더 붉고 환하게 불 밝힐 수 있다면, 북을 치고 싶었다. 울부짖는 듯 울부짖는 듯 북을 치고 싶었다.

우연히 길상사 꽃 무릇을 보러 갔을 때 장인이 특별제작 하였다는 작은 범종을 만났다. 쳐보았더니 소리가 참 좋았다. 한달음에 값을 치렀다. 작은 종이면 어떤가. 가끔씩 쳐보곤 한다. 그 붉은 소리가 퍼질 때마다 온 몸이 떨리고 가장 겸허하고 적막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아아, 나는 어엿한 종지기이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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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 2024-03-05 09:44:18
만종 그림을 그냥 평화로운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슬픈 사연이 숨어 있었네요.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와 북소리는 항상 마음에 안식을 줍니다.
서귀포시 봉음사는 검색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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