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5:41 (일)
“4.3 일으킨 주체는 ‘남로당제주도당’,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부인할 사람 아무도 없어”
“4.3 일으킨 주체는 ‘남로당제주도당’,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부인할 사람 아무도 없어”
  • 양대영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2.20 00: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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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김영중과 제주4.3](8)
“처음부터 끝까지 남로당이 한 행위는 공산주의 적화통일, 이것이 강령”
“남로당은 대한민국 건국을 적극 반대했지만 김일성 정권 수립에는 적극적으로 앞장서”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뉴스라인제주>와 <데일리제주>는 한국 근현대사의 제주4.3사건을 재조명 하므로써 도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더 나아가 4·3해결에 기여해야 하는 제주지역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이 기획물을 취재, 보도합니다. 취재에 응해주신 김영중 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도민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함께 열독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註]

(기자)오늘도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님을 모시고 지금까지 방송된 중요한 부분들을 종합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영중 서장)4.3 방송을 시작한 이후에 이미 방송이 돼 있지만은 중요한 세가지를 간추려서 제차 설명 드리겠습니다.

첫째, 4.3을 일으킨 주체는 누구냐 그것은 좌파 우파를 가릴 것 없이 남로당 제주도당이라고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올라가면 중앙당과 전남도당이 포함되는 거죠. 그럼 이 남로당이란 어떤 당이냐. 46년 8월 28일 북한에서는 북조선 공산당 하고 조선 신민당하고 합당이 돼서 북조선 노동당 즉 북로당이 됩니다.

이거를 보면서 그 소련이 지령도 있었지만은 박헌영이는 남한에서도 빨리 당을 하나로 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 남조선 신민당 3당이 합당해서 46년 11월 23일 남조선 노동당이 됩니다 이게 남로당입니다.

그러니까 북에는 북로당, 남에는 남로당이 있게 된 거죠. 그런데 제주도에는 조선공산당 제주도당만 있었지 여운형이가 만든 조선 인민당이나 백남훈이가 만든 남조선 신민당은 그저 하부 조직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47년 3월 1일 투쟁을 위해 부랴부랴 제주 도당도 남로당으로 이름과 간판을 바꿔 달았는데, 거기에는 조선공산당 제주도당 당원만 있었지 다른 당은 없었다. 그래서 3.1 투쟁도 하고 4.3 투쟁도 한 것인데,

그렇다고 본다면 4.3은 공산당 제주도당이 일으켰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저는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 후에 49년 6월 30일에 조개 껍데기만도 못한 남로당 하고 북로당이 합치는 형식을 취해서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이 됐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북한의 조선노동당인 것입니다.

그 남로당에 그때 당시 강령이 있었는데, 12개 강령 항목 중에 제2호를 보면은 조선에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기록이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남로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로당이 한 행위는 공산주의 적화통일, 이것이 그 강령이고, 그것을 실천한 것이 바로 남로당이다. 이렇게 보면 되는 겁니다.

다음에, 그렇다고 본다면 남로당 제주도당에 있는 당원수는 몇 명이었냐, 이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재민일보사 4.3 취재반이 장기간에 걸쳐 조사를 해서 ‘4.3은 말한다’라는 아주 걸작을 내놨는데 총 다섯 권입니다.

여기에 보면은 3.1 투쟁, 47년 3.1 투쟁 때는 1천명 내지 3천명, 4.3 발발할 때는 5천내지 6천명 초여름 경 그러니까, 48년 초여름 경에는 3만명이 됐다 이렇게 썼습니다.

이 ‘4.3은 말한다’는 정부 보고서 집필이나, ‘4.3 말한다’ 집필진이 거의 동일 인물들이 많아서 우파에서 이를 비판할 때는 ‘4.3은 말한다’ 그 복재판이 정부 보고서다. 아니면 ‘4.3은 말한다’ 표절한 것이 정부 보고서다. 막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어 ‘4.3을 말한다’에는 3만 명으로 나왔다. 두 번째 남로당 스스로는 5만당원을 확보했다고 선전을 했습니다. 이후에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것은 48년 7월 1일자로, 보고한 ‘브라운 대령 보고서’라는 미군정 문서가 있습니다.

이것은 48년 5월 20일, 그러니까 5.10총선이 끝난 직후인 5월 20일까지, 40일 동안 도민 5천명, 그러니까 귀순자, 포로, 일반 도민, 이렇게 해서 5천명을 신문하고 조사하고 얻은 결론을 보고서로 낸 것이 이 브라운 대령 보고서입니다.

여기에 보면은 첫째, 본토에서 6명의 조직 전문가, 선동 전문가 6명이 본토에서 내려왔다. 공산주의를 이해하는 젊은이 500~700명이 6명에 동조했다.

다음 6월 현재, 그러니까 이사람이 6월 30일 날까지 그 조사한 거니까, 6월 현재 인민 유격대는 4천명이 장교와 사병으로 구성됐다. 이 중에 10%는 무장을 했고 나머지는 칼, 죽창, 철창, 도끼, 이런 것으로 무장했다.

다음에 마을에 있는 자위대, 각 마을마다 자위대가 있습니다. 저도 그 자위대 명단을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이 자위대를 제외하고 인민유격대가 2개 연대와 보충 전투 대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돼 있다 말입니다. 다음 제주도민 6만 내지 7만명이 남로당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공산주의가 뭔지 모르고 공산당들이 선전 선동에 현혹된 무식한 농어민이 대부분이다.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다음에, 그 인원에 남로당 인원수는 대게 그렇고, 4.3의 성격은 뭐냐, 민중항쟁이냐, 폭동 반란이냐, 저는 폭동 반란이라는 주장입니다.

첫째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여 김일성 정권과 같은 공산 통일을 위한 폭동 반란이다.

둘째로, 진압과 교전 과정에서 선량한 도민 다수가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다. 민중항쟁은 아니다. 결론은 그겁니다. 그러면 그 이유를 제가 앞서 16가지로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만은,

오늘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를 한번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50년 6월 25일, 6.25가 났는데 한 닷세 후에 7월이 되니까, 제주도내 각 읍면별로 인민군 지원 환영회라는걸 조직해서 한라산에 있는 빨치산과 합세해 엄청나게 공격을 했습니다.

관공서, 마을, 경찰관서, 이런데 습격을 했는데, 그것이 14일 동안에 경찰 기록을 통해 보니까 56회 습격을 했습니다. 군, 경찰, 민간인 사망자가 77명, 부상자가 35명, 납치가 44명, 이렇게 인명 피해를 봤습니다.

50년 7월 25일, 그러니까 6.25가 나서 딱 1개월 되는 날 공비들이 중문면 하원리를 습격했고 가옥 99동을 전소시켜 어마어마한 피해를 봤죠.

다음 48년 11월 7일 제주도 적화음모사건입니다.

이덕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하고 인민군 지원 환영회를 하고, 세 번째가 제주도 적화 음모 사건을 기도했는데 이게 거사 30분 전에 경찰 프락치가 전향해 가지고 자수함으로써 이 사건이 수습이 되기는 했지,

만약 이것이 그대로 됐더라면 제주도는 완전히 공산화 해방구가 될 뻔했습니다. 판이 완전히 뒤엎어 질뻔했죠.

러시아 10월 혁명 기념일인 11월 7일을 기해 도내에 있는 통신 장악, 유치장 개방, 무기고 탈취, 경찰 및 정부 고위 관료와 우익인사 암살, 도내의 전 관공서 방화 등을 음모했다 이거죠. 그런데 이게 다행히 진압이 됐는데,

이것은 11월 7일 날, 그 러시아력으로는 10월 25일이 양력으로 11월 7일라서 그날로 작정을 했는데, 이덕구가 선전포고를 해서 상황이 급박해지니까, 일주일 앞당겨서 11월 1일 날 거사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적발해 보니까, 경찰, 도청, 법원, 검찰청, 읍사무소, 해운국 등에 침투한 프락치가 83명이다. 이를 검거해서 제압했다. 큰일 날뻔 한 사건이죠.

다음에 남로당 제주도당은 대한민국 건국을 적극 반대해서 5.10 선거도 못하게 하면서 적극 반대했지만 반대로 김일성 정권 수립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김달삼은 지하 선거 투표지 5만2350명을 가지고 월북해서 조선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즉, 우리나라 같으면 국회의원이 됐고 헌법 위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강동정치학원에, 게릴라 양성 학원인데 거기 졸업생 300명을 이끌고 동해안으로해서 태백산으로 침투해서 대한민국을 전복하려고 획책했습니다.

그것은 뭐냐, 이 항쟁이 될 수 없다 이거죠, 그 다음 제주 도내 전 마을 주위에 돌로 성을 앃았습니다.

한 3m 높이로 성을 쌓아서 거기에 출입하는 도로 중간중간에 초소, 이런 걸 지어 가지고, 공비들이 습격해서 마을에 방화, 살인, 약탈, 테러, 이런 것을 막기 위해 남녀노소할 것 없이 보초 경비를 썼다 이거죠,

저도, 44세 난 어머니 혼자만 있는데, 어머니가, 보초 명령이 나왔는데 내가 아홉살 때부터 이 성담 보초 해제할 때까지 내가 어머니 대신 보초를 나갔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민중항쟁이라는 왜 성을 쌓고, 이렇게 보초를 서고 사람이 고생하겠습니까? 지금까지 말씀드린것 중에서 4.3의 주체, 4.3을 주최한 남로당 제주도당 당원수, 그 다음에 4.3의 성격, 이 세 가지 중, 한 부분, 요것을 종합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기자)감사합니다.

□ 김영중(金英仲)

· 1941년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생
· 애월상업고등학교(현, 애월고등학교) 졸업
· 해병대 자원입대 병장 만기 제대(제126기)
· 서귀포경찰서장
· 제주경찰서장
· 도로교통공단제주도지부장
· 광주고등법원 제주부 민사조정위원
· 제주특별자치도 치안행정위원회 위원장· 제주도재향경우회장 등 역임

저서

· 『그때 거기서 나는』 상·하
· 『창꼼으로 본 세계』 상·하('창꼼'은 창구멍이라는 제주어)
· 『제주4.3사건 문과 답』
· 『내가 보는 제주 4·3사건』
『남로당제주도당 지령서 분석』
· 『레베데프 비망록』(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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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24-02-20 14:38:06
남로당 폭동이 맞다면 공식문서 보고서와 법에 그 사실을 기술해 합니다. 남로당 대변인 정치인들은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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