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문상금의 시방목지](97) 대나무 숲
[문상금의 시방목지](97) 대나무 숲
  • 문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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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1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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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
 

문상금
 

“오늘도 대나무 숲을 거닐었어요” “시인을 만난 대나무들이 아주 좋아했겠네요?” “네, 대나무들이 아주 좋아했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대나무들은 바람 불 때 마다, 서로 흔들리며, 서로 기대며, 사랑한다고 하였어요”

“하기야, 생각 차이! 나는 생각하길, 대나무의 꼿꼿한 기상이 절대 불의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또 한 편으론 그 댓잎 소리들이 음산해서 싫고 그리고 어릴 때 들었던 4.3의 이야기들, 잘린 상투머리가 매달렸던 큰 대나무며 죽창을 만들어 북문에 보초 섰던 제주아낙들의 슬픈 이야기 등등을”

아, 짜르르 아픔이구나 누군가 숨 죽여 지켜보았고 또 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였고 또 누군가에게 전달하였던 바로 그 아픔이었구나 죽창 대검 대못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대나무의 시뻘건 주홍글씨였음을

또 귀 베이며 듣고 있는 것이다

-제8시집 「하논」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언제부턴가 자유시에다 간혹 대화체를 그대로 살려 쓰곤 하였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창작을 하는 편이라 실감이 들도록 하거나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인용하는 것이다.

만춘을 지나 늦봄이 찾아올 무렵이면 온갖 흐드러진 꽃이며 지는 꽃이며 이 세상이 한바탕 꽃 세상일 때면 축축한 공기가 대지를 가득 채웠다. 그럴 때면 자주 집 근처나 하논이나 자구리 바닷가나 산책을 나가곤 하였다. 산책길을 따라 가까운 인근 네 곳에 대나무 숲이 아주 울창하여 참 보기 좋았다. 담양에 가지 않더라도 제주에도 크고 굵은 장죽들이 이처럼 많이 숲을 이루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였다. 사시사철 그 숲은 푸르렀고 시원하였고 공기가 참 맑았으며 곶자왈처럼 때로 거칠었고 다양한 식물들과 벌레들이 공생하고 있었다.

작은 바람이 불어도 큰 바람이 불어와도 대나무들은 서로 기대고 흔들리고 손을 흔들었다. ‘사랑해’라고 속삭였다. 축축한 늦봄엔 사랑의 결실인 죽순들이 어른 키 만큼씩이나 쑥쑥 자라나곤 하였다.

그 생명의 신비함이란! 나는 대나무 숲을 ‘사랑의 숲’이라 여겼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흔들리는 것이 있다

평화랄까

적막이랄까

스스로 소리가 되어

사랑으로 흘러가는 것이 있다‘

그런데 저마다의 경험과 시각에 따라 관찰하는 양상이나 느낌은 달랐다. 댓잎들이 부르르 떠는 소리가 음산하다 하였다. 4.3의 처절한 아픔들과 크고 작은 트라우마들이 현재도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시를 창작하는 과정은 다양한 시각을 통하여 적절하고 심도 있는 언어들을 발견하여 빛을 내는 일이다. 살아온 경험이나 환경이 직간접으로 차별이 되고 삶속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 그 누군가는 공감을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위안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귀 베이며, 귀 베이며 그렇게 대나무 숲은 나날이 푸르러갔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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