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신간]개정판 《제주도 신당 이야기》 출간
[신간]개정판 《제주도 신당 이야기》 출간
  • 서보기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1.24 2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살이, 세상살이를 성찰하는 철학자
제주 신당에 담긴 시간을 말하다
개정판 《제주도 신당 이야기》 표지
▲ 개정판 《제주도 신당 이야기》 표지 ⓒ뉴스라인제주

개정판 <제주도 신당 이야기>가 발간됐다. 이 책은 지난 2008년 초판 발간이후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최근의 변화상을 반영할 필요가 있었으나 신당을 소재로 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기존 내용만으로도 독자에게 의미 있는 책이라는 점, 그리고 내용을 보충하는 것이 자칫 전체 글의 결을 흩트리게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초판의 내용을 유지하면서 만듦새를 새로이 하는 방향으로 재출간했다.

무엇보다 그간 절판된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이 많았기에, 지금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양서를 복간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책은 총 11장으로 구성된 40여 곳의 제주 신당을 34꼭지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민속학자나 구비문학 전공자들과는 달리 철학자의 시선으로 제주의 신당을 바라본다. 신당을 관찰하고 그에 얽힌 특별한 서사들을 살피지만, 그것은 제주인의 삶과 문화, 즉 사람살이와 세상살이에 대한 성찰을 풀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 문화와 역사, 신화와 신앙, 욕망과 상징 등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을 신당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로 풀어놓고 있다.

신당은 신이 좌정해 있다고 관념하는 장소다. 특히 제주 신당은 제주인의 삶과 문화가 녹아 있고, 제주의 역사적 시간이 내려앉은, 질곡 속에서도 삶의 건강성을 담보해온 지혜가 축적된 공간이다. 신당의 신에 의지하며 삶의 애환을 풀어내던 세대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고, 개발 바람 속에서 이미 사라진 신당도 다수이지만, 여전히 신당은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두꺼운 시간을 품고 있는 곳이다.

“제주문화로부터 사람살이를 읽어내는 창(窓)이기를, 당신앙과 신화가 생생히 살아 있는 제주문화에 대한 관심을 희망”하는 저자의 바람대로, 새 옷을 입은 이 책이 삶의 성찰과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이라는 여러 겹의 파장으로 새롭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30여 년간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했으며, 철학적 사유를 대중과 나누기 위한 시민 강좌 및 제주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교양철학』(공저), 『철학으로 세상 읽기』, 『제주도 민간신앙의 구조와 변용』(공저), 『한국인의 생명관과 배아복제윤리』(공저), 『한국인의 죽음과 생명윤리』(공저), 『제주여성의 삶과 공간』(공저), 『제주도 신당 이야기』, 『세상은 왜?-세상을 보는 열 가지 철학 적 주제』 등이 있다.

■ 책 속에서

이런저런 경계는 모두 사람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에 틀림없다. 조녹잇궤 입구를 막고 서 있는 철문을 경계로 일상 공간과 성스러운 공간이 나뉘더니, 다시 굴 안에서는 제단을 경계로 사람이 설 자리와 신의 자리가 나누어진다. 우리에게 장소에 대한 관념이 없다면, 철문이나 시멘트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제단이 무슨 대단하게 두려운 경계가 될까? 언젠가 이곳에 왔던 어느 선생은, 조녹잇궤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멀찌감치 조녹잇당이 보이는 지점에서 이미 써늘한 기운을 느껴 진저리치더니만, 그 후 일주일을 앓아누웠다고 하니, 그 사람에게는 조녹잇당이라는 이름 자체가 경계였던 셈이다. (22-23쪽)

언제 적인지, 넉넉한 품새의 바위를 이 자리에 놓아둔 그때로부터 숱한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을 것이다. 저마다 시름을 이곳에 풀어놓았을 것이고. 그렇게 시름을 풀어놓게 한 힘은 서문하르방이 변하지 않는 시간으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위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시간이고 변하지 않는 시간이다. 아니면 바위는 아예 시간을 뛰어넘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바위에다 ‘의미의 옷’을 입혔을 리가 있으랴. 그러지 않고서야 이 땅 곳곳에 신비롭고 거룩한 존재로 섬겨지는, 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 숱한 바위를 설명할 도리가 있으랴. (58-59쪽)

〈두리빌렛당〉의 당신인 용녀부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뱀신이다. 〈새콧당〉의 당신인 고망할망은 나주 땅에서 바다를 건너온 뱀신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 뱀 혹은 구렁이는 하늘과 인간의 세상, 뭍과 바다, 바다와 배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존재로 상징되고 있다. 넘나든다, 건너간다는 것은 그 어떤 의미로든지 초월이다. 그리고 인간적 삶의 현실에서 가장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 역시 초월이다. 삶의 현실은 서로 다른 세계들이 얽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서로 다른 세계들을 잘 넘나드는 것,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세계를 잘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살고 사랑하는 것 모두가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서로 다른 세계를 미끈하게 넘나들 수 있는 존재는 사람에게 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107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