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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안나 시인 다섯번째 시집 《애월》 발간
[신간]서안나 시인 다섯번째 시집 《애월》 발간
  • 양대영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12.14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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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진혼의 노래
서안나 시인 다섯번째 시집 《애월》 표지
▲ 서안나 시인 다섯번째 시집 《애월》 표지 ⓒ뉴스라인제주

서안나 시인의 최근 5번째 시집 <애월>를 펴냈다.

이번 시집 <애월> 은 그가 추구해 온 기존의 작품 성향에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과, 특히 <애월>이라는 지명의 특수성을 확장하고 증폭하고 있다. 시의 서정의 결과 준엄한 역사 인식을 동시에 결합하여 개성적인 시적 세계관을 담아낸 의미 있는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죽음”에 관한 진중한 사유를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다. 이는 개인사적인 가족의 죽음의 체험과 근현대사의 가장 처절한 학살이 자행된 제주 <4.3 항쟁> 그리고 지구 곳곳에 발발하고 있는 전쟁의 비극성을 정교하게 직조하고 있다.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공들여 그려내고 있는 제주의 비극적 서사는, 제주 4·3 항쟁의 비극에 대한 고발과, 제주어의 발견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1950년 현 제주국제공항 자리에서 자행된 집단 학살과 암매장을 고발하고 있는 시에서 시인은 “죽음을 밟지 않고 제주에 착륙할 수 없다”와 “죽음을 껴안지 않고는 제주를 떠날 수 없다”라고 통렬하게 진술하고 있다. 시인은 또 다른 집단 학살을 고발하고 있는 시 「밤의 애플민트」에서 무심히 애플민트를 꺾은 자신을 돌아보며 “그 여리고 푸른 것들 앞에/내 무심한 폭력을 내려놓는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제주의 참혹한 역사를 확장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애월, 우크라이나」)과, 신장 위구르에서 자행되고 있는 참혹한 폭력(「애월, 신장 위구르」)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고백은 고백할수록 더 참혹해”지지만, 이런 추악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추악함을 견뎌야 한다”(「애월, 신장 위구르」)라고 말한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제주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고발함과 더불어, 제주어의 발견을 통해 신과 인간이 함께 조우하고 혼융된 제주도의 원형과 서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에 시인은 제주어가 지닌 시어의 어감을 살려 제주와 제주 사람들이 오랜 시간 가슴속에 묻고 살아온 통한의 역사를 작품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번 시집은 근현대사의 비극을 재조명하는 귀중한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아울러 올해 시인의 아버지 3주기 기일에 맞추어 시집을 출간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혼자 남으신 늙으신 노모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시편들이 독자들의 가슴에 고요한 슬픔의 진동을 전해주고 있다. 시인 개인에게도 애정이 깃든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서안나 시인은 1990년 《문학과 비평》 등단했고, 시집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새를 심었습니다』,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연구서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편저 『정의홍 선집 1·2』 『전숙희 수필선집』,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이 있다

<불교문예 작품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작가회의 회원, 제주작가회의 회원. <서쪽>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우난골 刊, 정가 12,000원
 

⬛ 시집해설 요약

애월, 진혼의 노래

나는 일찍이 서안나 시인이 언젠가 ‘애월’을 표제로 삼은 시집 한 권을 엮을 때가 올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 있다.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 「애월 혹은」이 맨 앞에 실린 세 번째 시집 『립스틱 발달사』(2013)를 읽고 난 후 든 예감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애월 1」을 포함해 총 7편의 연작시를 담은 네 번째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2022)를 펴냈을 때도 표제로 삼지 않았다가, 이번 다섯 번째 시집에 이르러 마침내 이 ‘애월’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애월을 표제로 삼기를 주저하던 시인이 왜 이번 시집에 이르러 애월을 전면으로 내세웠을까. 이 질문을 안고 시를 읽어 나가는 것도 이번 시집의 진면목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인 애월은 그 풍광뿐만이 아니라, 애월이라는 지명 자체가 지닌 음성적, 의미적 측면에서 매력적인 소재이다. 위의 시는 이러한 세 가지 면이 잘 조화를 이루어 매혹적인 작품으로 승화되었다.‘애월(涯月)’은 한자로 풀면 물가(涯)와 달(月)이 합쳐진 말이다. 애월은 특유의 풍광과 더불어 언어가 지닌 기표, 기의적 측면에서의 매력이 풍성하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궁굴려 만든 원초적 상징의 공간이자 태어나고 자란 구체적 실존의 공간인 애월을 확장하여 제주도와 인류의 서사로 나아간다. 이는 개인적 서사에서 역사적 서사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번 시집을 통해 공들여 그려내고 있는 제주도의 서사는, 제주 4·3 항쟁의 비극에 대한 고발과, 제주어의 발견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1950년 현 제주국제공항 자리에서 자행된 집단 학살과 암매장을 고발하고 있는 앞의 시에서 시인은 “죽음을 밟지 않고 제주에 착륙할 수 없다”와 “죽음을 껴안지 않고는 제주를 떠날 수 없다”라고 통렬하게 말한다. 시인은 또 다른 집단 학살을 고발하고 있는 시 「밤의 애플민트」에서 무심히 애플민트를 꺾은 자신을 돌아보며 “그 여리고 푸른 것들 앞에/내 무심한 폭력을 내려놓는다”라고 쓴다. 시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제주의 참혹한 역사를 확장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애월, 우크라이나」)과, 신장 위구르에서 자행되고 있는 참혹한 폭력(「애월, 신장 위구르」)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고백은 고백할수록 더 131참혹해”지지만, 이런 추악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추악함을 견뎌야 한다”(「애월, 신장 위구르」)라고 힘주어 말한다.

시인은 제주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고발함과 더불어 제주어의 발견을 통해 제주도의 원형과 서사를 조명한다.

― 이홍섭(시인)
 

◨ 시인의 말

시집을 엮으며 비루한 문장들을 쓰고 지우며 나는 많이

아팠다. 시집 제목을 애월이라 붙이고, 고향을 시집에 들인

죄로 나는 제주의 바다와 바람과 돌 속을, 그 전생 같은 시

간을 한없이 떠돌았다.
 

◨ 책 속으로

1

호스피스 병동에서 바라보는 밤은 왜 사무적인 걸까
의사는 호스피스 병동 앞에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2

고레다 히로즈의 영화를 보았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피를 나눈다는 건 무엇일까

3

침대에 기대어 잠든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할 때
왜 먼지 냄새가 나는 걸까
병실 창밖에는 메마른 구름비나무 한 그루

4

아픈 사람은 5층 같아서
걸어 올라가다 보면 내가 먼저 지치지
간병은 지루하고
지친다는 것과 슬프다는 것은 구별하기가 어려워
나는 새벽에 병원 지하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인간의 존엄함에 대하여 생각했다

느리게 흘러가는 병실의 시간과 창밖의 구름들
나는 구름을 쳐다보며
어떤 기적 같은 형상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라

이 저녁
병자들은 무용하여 아름답고
저녁의 문장은 링거처럼 맑고 차갑지
물 끝에 아스라이 서 계신
당신,

공무도하
공경도하

「애월, 공무도하」 전문

 

밤에 애플민트를 꺾었다
꺾은 자리가 떨렸다
실직한 이와 오랜만에 만난 술자리였다

김 모 시인이 말했다
여리고 푸른 것들은
쓰다듬어 손으로 향기를 맡는 거라고

술집 유리창에 발이 사라진
나와 일행이 허공에 떠 있었다
실직한 이의 얼굴이 창백했다
집단 학살터였던 박성내 다리 앞이었다

얼굴이 붉어진 나를
실직한 자의 밤을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제9 연대 군인 트럭에 실려와
집단 학살된 백 오십 명의 맨발을

이지러진 밤의 애플민트가
사과 향기로 어루만져 주는 밤

그 여리고 푸른 것들 앞에
내 무심한 폭력을 내려놓는다
다시는 풀과 꽃을 꺾지 않으리

*박성내 다리:4,3 사건 때 함덕국민학교에 모인 와흘, 함덕 등의 주민들 3백여 명 중, 자수하면 살려준다며 1백5십 명을 철사로 묶어 트럭에 태웠다. 제9 연대 3대대는 제주시 아라동 박성내 다리에서 이들 모두 집단 학살하고 시체는 불태웠다.

「밤의 애플민트」 전문
 

말은 사람에게 상처 입혀 무릎 끓게도 하지만
봇디창옷은 아픈 곳을 감추는 소매가 긴 저녁이 되기도 합니다

점점 사라지는 제주어를 적어보는 봄밤
제주의 아이들은 정작 제주어를 모릅니다

나이 든 어머니와 옷장을 정리하다 낡은 봇디창옷에 손이 갑니다
봇디창옷에 뭉클거리는 오 형제가 검은 배꼽을 오똑 내놓고 누워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할 말이 많아집니다
어머니의 제주어에는 뼈를 버린 사람이 삽니다
눈과 입에서 웃음이 먼저 번지는 어머니
세상의 모든 국경이 삶은 국수처럼 무너집니다

바람 든 콥데사니 껍질 같은 어머니의 귀에서
아이들이 옷을 벗고 물뱀 되어 흩어지고

맞춤법에 걸린 바당과 할망당 심방들이 제물 차롱을 지고
징게징게 꽹과리를 치며 걸어 나옵니다

어미가 물애기에게 소매가 긴 봇디창옷를 입힌 마음
80년 된 콥데사니 같은 알싸한 제주어가
내 눈에도 뾰족하니 돋습니다

*봇디창옷: 귀한 아기에게 소매가 밤처럼 긴 옷을 삼베로 만들어 입힌 어미의 마음
어미는 아기가 전생의 기억을 지우는 동안 깃과 섶을 달지 않고 기다리지.

*콥데사니: 제주에선 콥데사니를 제사 음식에 쓰지 않지. 콥데사니라고 부르면 제주의 제삿날이 마늘처럼 매워지네.

*심방: 신을 모시는 심방들이 징게징게 굿하는 날 신도들이 준비한 제물 든 차롱을 굿당에 나란히 올린다. 억울하게 죽은 저싱 사름을 위해.

*물애기: 물애기라고 부르면 나도 물렁거리는 진흙덩어리가 되네.

「봇디창옷」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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