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서광로 공부방] 제1강 “4·3은 남로당제주도당의 단독 결행인가!!”
[서광로 공부방] 제1강 “4·3은 남로당제주도당의 단독 결행인가!!”
  • 양대영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9.12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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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제주시민들의 자발적 4.3강의 공부방 탐방
김영중 전 경찰서장, “4.3, 시민들이 양심적으로 이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국 근현대사의 제주4.3사건을 재조명 하므로써 도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더 나아가 4·3해결에 기여해야 하는 제주지역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뉴스라인제주>가 한층 열기를 더해가는 ‘4.3공부방’을 탐방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4.3공부 열기를 응원하는 기획물을 취재, 보도하기 위함입니다. 취재에 응해주신 김영중 서장님과 [서광로공부방] 회원들께 감사드립니다. 도민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함께 열독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註)

[양대영 기자] 오늘 서광로 공부방에 처음 나와 봤습니다. 여기는 이 동네분들이 모여 가지고 4·3을 연구하고 4·3을 공부하는 공부방입니다. 그래서 오늘 첫 시간인데요. 김영중 서장님께서 앞으로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영중 서장] 예 4·3 대해서 우리 서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을 합니다.

75년 전에 제주도에서 참 비참한 참극이 벌어진 것이 4·3인데 이 4·3이 최근에 이르러서 많이 왜곡되고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저는 우리 도민들이 양심적으로 이것을 똑바로 알아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에서 오늘 여기에 나왔습니다.

제가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잘은 모르지만은 내가 아는 범위내서 밀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제주 4·3이 좌파에서는 중앙당 또는 전남도당이 지령을 받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남로당 제주도당 단독으로 결정해서 4·3을 일으켰다 이런 주장입니다.

그래서 중앙당이나 남로당이 지령설을 주장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아주 집중공격을 하고 여러 가지에 그 강의 자료라든지 책이라든가 이런게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거에 대해서 전면 반대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왜 그러냐 제주 4·3은 1948년 5월 10일 날 UN의 결의에 의해서 그 선거 가능한 남한만이라도 선거를 해라 이렇게 결의에 의해서 5월 10일 선거를 하게 됐는데 남로당은 이것을 어떻게든 방해해야 되겠다. 왜그러냐면 여기에서 어 5.10 선거가 치뤄지고 대한민국이 바로서면은 공산당을 지지하는 남로당이 입지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정치적으로 자기네들이 입지도 없을뿐만 아니라 원래 소련이라는 김일성 노선의 저 통일을 바라던 남로당으로서는 죽기 아니면 살기다. 앉아서 죽느니 서서 싸우다 죽자 이렇게 결의를 해 가지고 일어선 것이 4·3입니다

그 4·3을 일으키는 해 2월 7일을 기해서 전국적으로 폭동을 일으켜라 이렇게 이제 지령이 내려왔단 말이죠.

제주도에도 그런 지령이 내려오니까 여기서도 많은 그 움직임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2월 7일 날 내려온 것을 보면은, 2월 7일 남로당 도당이 시위 95회, 불법 집회 72회, 선동 포스타, 삐라, 이거 375건, 협박 공갈 27건, 이렇게 자행 했다 이 말이죠.

그리고 동광리에는 그 이장집 22명이 무장 폭도가 들어가 가지고 완전히 반동 타도 구호를 외치면서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하고 갔죠.

그리고, 2월 7일 날 안덕지서 최창경 경사하고 오두항 순경이 그 대공수사를 하고 들어왔는데 여기를 급습해 가지고 납치해다가 행기물이라고 하는데 끌어다가 구덩이 파 가지고 생매장을 하려고 했는데, 부인이 자기 남편이 이제 생매장 된다는 걸 알고 동향이 어떤가 나와가지고 구경하는데 부인마저 잡아다가 같이 생매장 하려고 이렇게 한 사건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경찰학교 졸업한 학생들이 그 소식을 듣고 그걸 급습해 가지고 구사일생으로 그 경찰관 둘은 살아나긴 했습니다만은, 이런 내용이라던지, 그다음에 2월 8일에는 성산에서 고성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했고 또, 2월 9일 날은 북촌에서 경찰관 순찰하는 권총 피탈 사건이 발생했고 5월 10일에는 저지 지서 습격, 또 고산 지서 습격이, 고산 지서 습격 할때는 거기서 물러가라 해도 물러가지 않으니까, 발포해 가지고 거기 한 분이 다리에 중상을 입는 그런 사건도 있고, 또 미군정 보고에서 보면 그 2·7 폭동때 지령 한대로 시위 군중들이 소련 국가를 불렀다는 그런 내용도 있습니다.

이것이 뭐냐, 5월 10일 선거를 반대하기 위한 그런 그 중앙 지령에 의해서 한 것이다 이거죠.

그거 말고 미군정에서 보면은 경찰이, 조천에 있는 남로당 아지트를 급습하니까, 2월 중순부터 3월 5일 사이에 폭동을 일으켜 가지고 무기도 탈환하고 경찰 고급 간부도 죽이고 이런 그 지령도 압수한게 있고.

2월 12일 날 이것은 경찰하고 방첩대가 조천의 아지트를 또 급습해 가지고 그 압수한 거에 보면은 2월 15일부터 3월 5일 사이에 폭동을 일으켜라 이러한 지령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그 중앙당이나 전남도당에서 제주도의 그 지도책 영어로는 오거나이저(organizer) 조직 지도원들이 항상 파견됐거든요. 그 조직 지도원은 관광온게 아닙니다.

그 위험한 상태에서 제주도까지 내려온 것은 중앙의 지령을 전달하고 그것이 잘 이행되는지 감시하고 독려하고, 또 뭐가 잘못되면 조정하고, 여기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고, 이런 임무를 띄고 온 것이 그 조직 지도책 오거나이저 이거든요.

보통 그때 당시는 올구 올구 또 어떤 사람은 오르구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이 내려온 것만 봐도 이것은 제주도당 단독 결행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또 공산당이 그 ‘철의 규율’이라고 하는게 있습니다. 철 쇠 쇠 같이를 지키라 한건데 이것은 상명하복이죠. 여기에 의의를 제기하면 이유없이 당장 숙청하는 겁니다.

그 한라산에서 6·25가 터진 이후에 백창원이, 고승옥이 사람이 우리가 지금 인민군이 목포까지 왔으니까 제주도 상륙할 때쯤 우리가 나섭시다. 이렇게 하니까,

아 거기 강경파들이 저놈 정신 나간 놈이라고 해서, 그 공비가 공비를 인민 재판해 가지고 죽여 버렸단 말이야, 근데 그분들이 다 지금 정부 보고서에도 나와 있고 한데 피해자로 됐다 9000만원 다 받게 됐단 말이에요.

아 이것도 아주 웃기는 얘기다. 그래서 단독 결의라고 한 것은 있을 수도 없을뿐만 아니라 있지도 않고, 아까 제가 설명 드린바와 같이 증거도 있고 근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4·3 사건에 있어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단독 결행이라고 한 것은 허구고 조작이다. 저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질문1]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지령을 받았다고 하면 지령을 받았다고 단독 결의가 아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 지령은 어디서 내려 옵겁니까?

[김영중 서장] 그러니까 중앙당과 전남 도당에서 내려온 거죠. 그리고 지난번에 태영호 의원이 뭐 김일성이가 지령 가지고 한 것이다. 이렇게 자기는 북한에서 배웠다. 이렇게 되있잖아요?

그 북한에서 지령한 것이 있느냐. 그것은 그 지휘 계선상에 김일성이 박헌영이 남로당 중앙당 전남도당 제주도당에 이렇게 돼있지는 않거든요.

김일성이가 그 4·3 일으켜 이렇게 제주도당 지령할 수는 없는 거란 말이죠.

그러나 김일성이, 북로당이, 남한에서 단선 단정 말하자면 5.10선거를 해가지고 남한에서 대한민국 건국 수립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된다는 것은 북로당의 방침이었고, 그런 것은 성명서라든지 여러가지를 통해서 또 방송 이라든지 이런 걸 통해 가지고 계속 그걸 방해하는 지령은 있었단 말이죠.

특히나 미군정 보고서를 보면은 북한 인민들이 성금을 모아가지고 그걸 김일성이가 장악하는 인민위원회로 보내서, 평양 방송에 공헌했다 말이죠.

그것은 뭐냐, 지령뿐만이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지원을 했다는게 미군정 보고서에 있다 이거죠.

그런걸 보면은, 제주도 그 중앙당에서 그 돈이 왔으면 자기네만 그걸 소비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죠. 특히나 제주도는 그 남로당 세력이 온전해 있고 또 강하고 해서 여기에 그 4·3을 일으키도록 지령을 한 마당에 김일성이가 보낸 그 돈이 제주도에 안 내려왔겠느냐 이것은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돈이 내려왔을 것이다 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저는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고 특히 그 북한에서는 46년 12월 1일부로 화폐 개혁을 했단 말이죠.

조선 은행권이 그때부터 아무 쓸모가 없게 북한에 돼 있단 말이야, 근데 우리는 그 뒤해, 그 4월 달인가 화폐 계획을 했는데, 그러면 북한에서 그 회수한 조선 은행권이 가만히 거기서 소각 처분을하고 썼겠느냐 아니다 이거여,

그 돈을 우리 남한에서 화폐 계혁을 하기 직전까지 여기서 그 은행권이 통용이 됐으니까, 성시백이를 통해 가지고 어마어마한 자금이 남한에 내려와 가지고 그 성시백이가 언론사도 13개나 만들고, 또 정당도 여러 개 만들고, 또 많은 포섭을 했다 말이죠. 그러니까,

그 남로당에도 성시백이 그 자금이 엄청나게 그 됐지 않느냐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 돈도 모자라 가지고 정판사 위패 사건을 만들어서 남한의 경제 교란을 시기고, 그다음에 공작금으로도 쓰고, 이러려고 하다 걸려가지고, 그때 정판사를 압수하고 박헌영이 체포령을 발령하니까,

박헌영이는 몰래 그 사람이 죽어 가지고 관속에 들어가가지고, 장사지내는 걸로 해서 3·8선을 넘어서, 북한에 46년 10월 6일 날 평양에 도착했다. 이것이 미군정 보고서에 나와 있단 말이죠.

그런 걸 볼 때, 전연 그 남로당 중앙당이 전남도당에서 지령이 없었다. 또는 북한에서 지원이나 뭐가 없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이제 저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특히 해방 직후에 소련이 38선 이북을 관장하지 않고 영국이나 프랑스나 이런 전승국이 거기에 진주 했있더라면 4·3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런 걸 본다면 여기에 남로당 제주도당 세력은 그 스탈린 대원수 만세도 불렀지만, 김일성 장군 만세도 불렀지만, 북한과 소련을 배경으로 해서 4·3을 일으켰다. 저는 그렇게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는 겁니다.<이하 양대영tv(뉴스라인제주tv)영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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