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5:41 (일)
김영중 “4.3은 남로당의 폭동 반란... 선량한 도민 다수가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
김영중 “4.3은 남로당의 폭동 반란... 선량한 도민 다수가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
  • 양대영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9.05 12: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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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김영중과 제주4.3](3) 4.3의 주체인 남로당! 남로당원은 몇 명인가요?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뉴스라인제주>와 <데일리제주>는 한국 근현대사의 제주4.3사건을 재조명 하므로써 도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더 나아가 4·3해결에 기여해야 하는 제주지역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이 기획물을 취재, 보도합니다. 취재에 응해주신 김영중 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도민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함께 열독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註)

# 제주4.3 증언에 들어가며

1941년생인 필자가 7세 때 발발한 제주4·3사건은 제가 16세가 되어서야 완전히 종료되었다. 만 9년간 제주도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중산간 마을에 살던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해안 마을인 애월리로 소개(疏)하여 겨울을 나고 봄이 되자 옛 삶의 터전과 가까운 곳, '사장' (射場)이라는 마을 공동소유지로 올라 와 '함바'라는 초막을 짓고 마을 전 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했다.

우리는 낮에는 주택재건 사업에 몰두하고, 밤에는 보초를 섰다. 허물었던 주택이 재건되자 복귀하여, 마을 주위에 성을 쌓고 공비들의 습격을 방어하기 위해 보초를 서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제 제 나이 80을 넘기면서 기억력도 전과 같지 않고, 4·3에 대한 저의 주장을 펴는 일은 후진들에게 맡기고 일단 접으려고 마음을 정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 그간 여러 가지 방법으로 4·3에 대한 저희의 정당하고 진실한 주장을 펴보려고 노력했지만 좌파들이 화해와 상생이라는 구호 아래 파묻으면서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 이다. 법과 제도로 우리의 의견을 개진할 공간을 차단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 하면서 냉소와 갈등을 부추기는 교육과 홍보 활동을 서슴지 않는 등 거대하고 완고한 벽에 부딪혀서 이다.

둘째, 국가가 역사해석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노골화되고 있어서 제가 할 영역이 사라져서 이다. 역사 문제는 원칙적으로 학문적 영역입니다. 학자 간에 연구와 토론으로 합의를 하거나 주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관련된 자료 접근권도 공평하게 부여하고, 부담 없이 토론에 참여할 기회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정치 권력과 특정 집단이 이를 전유물처럼 독 점하려는 것은 역사 바로 세우기에 어깃장을 놓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4·3 논의의 장에 참여할 기회도 없고, 역사적 자료에 대한 접근성도 차단되었으며, 심지어 현실은 역사해석의 자유마저 형벌 만능주의로 옥죄려는 위력 앞에 처해 있습니다.


셋째, 저의 주장이나 자신에 대한 발언 기회가 없어서입니다. 4·3과 관련한 저의 책이나 강의에 대한 좌파의 평가는 극지 기온보다 더 찹니다. 수구, 꼴통, 극우, 보수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것 또한 그들의 자유이니 전혀 개의치 않지만 어쩔 도리도 없습니다. 저는 역대 4·3희생자유족회장과 대화할 때마다 분명히 밝혔듯이, 4·3 당시 제 가족 중 군경이나 아니면 남로당으로 활동한 분이 없습니다.

그들로부터 인명피해를 당하거나 가해한 사실이 없어서 누구에게 원한을 품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무직이기에 유족들과 경쟁업체를 경영하여 손해를 보거나 끼친 일도 없고, 그들에게 욕을 한 사실도 없습니다. 제가 불법 집회를 하거나 어떠한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한 사실도 없습니다.

오히려 토론장에 나가 제 의견을 개진하거나 질문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 경우는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극우라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그들의 주장에 동조 순응치 않고, 감추고 싶은 사실들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데서 오는 반응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그들과 사이가 나빠서 득 될 일도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한민국 건국史나 4.3史 앞에 확고부동한 신념이 있습니다. 그 것은 오직 진실에 기초할 뿐, 그 어떤 억지나 거짓, 위협, 시류를 초월하고, 그 어떤 손익( 益), 친소(疏), 호오(好惡), 애증(愛僧), 타협(協)을 떠나 오로지 객관적으로,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고 판단할 따름입니다.

날이 갈수록 4.3史가 일방적 편향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 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3의 본질에서 가장 핵심적인 진실규명과 근본적 원인 규명 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인명피해만을 다루는가 하면, 그것도 남로당의 만행은 사라 지고 군경에 의한 인권침해만 거론되면서 전방위적인 '민중항쟁론' 또는 '통일투쟁론'에 기울어짐을 체감합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결코 무고한 인명피해를 가볍게 취급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 대한 보상을 반대하거나 무고한 희생을 기리지 않겠다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4·3의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중략. 김영중의 ‘제주4.3사건 문과 답’에서)

# 4.3의 주체인 남로당! 남로당원은 몇 명인가요?

(양대영 기자) 이번시간에도 김영중 서장님을 모시고 4.3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서장님, 4.3의 주체는 남로당이라고 하는데요 남로당의 당원수는 얼마나 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김영중 서장)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은 4.3은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해서 공산통일를 위한 폭동 반란이고 진압과 교전 과정에서 선량한 도민 다수가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이다.

이렇게 정의를 했는데 그러면 그렇게 그 참여했던 그 남로당 수는 몇 명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에서 대강 이것을 뽑아본다면 제일 먼저 제주 4.3의 여러가지 전문 지식을 가지고 취재한 제민일보 특별 취재반이 ‘4.3은 말한다’라고 하는 다섯 권이 거작을 출판 했습니다.

이 ‘4.3은 말한다’에 보면은 47년 그 3.1일 사건 당시에는 남로당원이 1천 내지 3천명, 그리고 4.3 발발 당시 그러니까, 1년 1개월 후 48년 사삼 당시에는 5천 내지 6천명 그런데 사삼이 나가지고 곧 초여름 경에는 족히 3만 명이나 된다 이리 됐습니다.

그 다음에 그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은 김달삼이가 8월 2일 제주를 탈출을 하면서 가지고 간 그 지하 선거 투표지 이것에 보면 5만2350명, 이 사람들이 전부 남로당원이라고 할 수는 없고,

거기에는 뭐 살인, 협박 테러 이런거 못 이겨 가지고 찍은 사람도 있고, 아니면 자기들끼리 아무렇게 이름 올려 가지고, 그냥 한 그런 그 허수들도 있고,

그러나 5만2350명이라는 숫자는 상당한 숫자다. 이제 이렇게 보는 것이고, 그 다음에 그 46년 9월 29일 제주도에서는 과도입법위원을 선출했습니다.

요것이 간접선거인데 그때 전국적으로 45명 민선 선거를 했고 45명은 하지가 이제 임명해서 합계 90명으로 과도입법위원을 구성을 했는데 이때 제주도에 두석이 배정이 되는데 전국에서는 거의 다 우파가 당선이 됐는데,

제주도에는 유일하게 좌파 민전 출신이죠. 이 사람이 김시탁하고 문도배, 이 두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면 여기 나와서 당선이 됐으면, 문도배나 김시탁이 그 개원식에 참석을 해서 반대한다. 뭐 찬성한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개원식에는 참석도 않고, 그 서울 민전회관에 나타나서 우리 제주도는 민전 밑에 팔할을, 제주도 인구 팔할을 통괄를 하고 있다.

그런 얘기를 했다고 말이죠. 제주도 30만 동포는 끝까지 민전 밑에서 더욱 단결할 것을 맹세한다. 이러니까 아니 제주인구 8할이 민전 밑에서 통일하고 뭘 했다가 이렇게 된다면 상당한 숫자가 남로당원이 아니었겠느냐, 이렇게 이제 짐작이 되는 것이고,

다음에 당시 그 남로당이 뭐 마을을 습격하고 이렇게 하면서 선전한 것이 남로당 당원은 5만을 확보했다 이렇게 선전하는 것입니다.

(양기자)선전전에서...

(김영중)47년 그 3.1 사건때부터도 당원 배가운동 뭐 3배가 5배가 하다 나중에 10배가해서 전국적으로 100만 당원 확보 뭐 이런 걸 추진했는데 제주도에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 5만 당원을 확보했다 자랑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자랑해서 남로당원을 확보하는데는 도움이 됐겠지만 나중에 이 명단이 들통이 나가지고 많은 그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는 자료를 제공했다고도 보이거든요.

그 다음에 미군정에서는 제주도의 70% 주민이 남도당에 호의적이다. 이렇게 정세분석을 했어요. 그런게 있고.

그것보다도 지금까지 한 것보다도 가장 제가 근거가 있다고 보는 것은, 그 48년도 5월 22일 그러니까 5.10선거 직후에 5월 22일부터 40일 동안 그 브라운 대령이 광주에서 제주도에 와서 진압지휘를 했거든요.

그래서 그 브라운 대령이 제주도 활동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것에 보면은 각 정보기관, 또 이제 산에 간 사람, 붙잡은 사람들, 포로들, 이런 사람 5000명을 신문하는 결과를 종합해 가지고 이 보고서를 냈는데 거기에 보면 놀랄 만한 그것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촌락에 조직된 공산주의자 세포 조직 이외에 그러니까 자위대 같은 거 빼고 순전히 제주도를 위한 인민민주주의 군대가 구성되었다.

이 구성된 것은 2개 연대와 보충 전투 대대로 구성이 되어 있다. 완전히 이게 연대가 보충 전투대대로 구성되었다.

인민민주주의 군대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약 4000명이 장교와 사병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4000명 거기에는 10%가 무장을 했고 나머지는 뭐 죽창이나 철창이나 뭐 일본도나 이런걸로 했다.

그리고 6명이나 되는, 조직 선동가, 조직전문가, 선동전문가가 제주에 파견되어 남로당을 조직하고 훈련을 시키고 했다.

그 6명이 선동과 조직과 전문가가 여기 내려왔는데, 거기에 그 공산주의가 뭐라는 것을 이해할 이해한 500 내지 700명, 이들이동조했다 이렇게 나와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주도에 있는 남로당은 그 브라운대령 보고서에 보면은 최고로 6만 내지 7만이 남로당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6만 내지 7만명 중에 대부분은 공산주의가 뭔지 모르고 그저 부자, 가난 없이 잘 살 수 있다. 이런 거에 현혹된 무식한 농어민이나 어업인들이 많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보느냐, 나는 그 4.3은 말한다에서도 3만 명이라고 했고 또 여러 가지 자료로 봤을 때 브라운 대령 자료를 보거나 이런 거 봤을 때 남로당은 3만명은 틀림없이 있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남로당 활동을 한 사람은 몇명이냐 지금 말하자면 남로당의 핵심 세력은 몇명이냐 봤을 때,

그것은 여기서 3.1 사건을 주도했고 또 4.3 사건을 주도했던 김봉현이가 일본으로 도피해서 김민주하고 쓴 책에 아주 3000명이 무장 열성자가 있었다 하니까, 저는 적극 그 핵심 세력은 3천명이다.

그 남로당 3만 명의 10분에 일, 여기는 아주 핵심세력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자)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
▲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 ⓒ뉴스라인제주

□ 김영중(金英仲)

· 1941년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생
· 애월상업고등학교(현, 애월고등학교) 졸업
· 해병대 병장 만기 제대(제126기)
· 서귀포경찰서장
· 제주경찰서장
· 도로교통공단제주도지부장
· 광주고등법원 제주부 민사조정위원
· 제10기 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제주특별자치도 치안행정위원회 위원장
· 제주도재향경우회장 등 역임

저서
· 그때 거기서 나는 상·하
· 『창꼼으로 본 세계 상·하 창은 창구멍이라는 제주어)
· 『내가 보는 제주 4·3사건』
『남로당제주도당 지령서 분석』
· 『레베데프 비망록』(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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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대왕 2024-03-26 09:43:09
역사의 증언감사합니다. 저의 생각과 거의 99%일치합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반역세력을 추모해야할 이유는 전혀없습니다. 재조사를 해야하고 바로 잡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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