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5:41 (일)
[김영중과 제주4.3](1) 제주4.3 사건이란?
[김영중과 제주4.3](1) 제주4.3 사건이란?
  • 양대영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8.24 23:3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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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뉴스라인제주>와 <데일리제주>는 한국 근현대사의 제주4.3사건을 재조명 하므로써 도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더 나아가 4·3해결에 기여해야 하는 제주지역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이 기획물을 취재, 보도합니다. 취재에 응해주신 김영중 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도민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함께 열독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註)

# 제주4.3 증언에 들어가며

1941년생인 필자가 7세 때 발발한 제주4·3사건은 제가 16세가 되어서야 완전히 종료되었다. 만 9년간 제주도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중산간 마을에 살던 우리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해안 마을인 애월리로 소개(疏)하여 겨울을 나고 봄이 되자 옛 삶의 터전과 가까운 곳, '사장' (射場)이라는 마을 공동소유지로 올라 와 '함바'라는 초막을 짓고 마을 전 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했다.

우리는 낮에는 주택재건 사업에 몰두하고, 밤에는 보초를 섰다. 허물었던 주택이 재건되자 복귀하여, 마을 주위에 성을 쌓고 공비들의 습격을 방어하기 위해 보초를 서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제 제 나이 80을 넘기면서 기억력도 전과 같지 않고, 4·3에 대한 저의 주장을 펴는 일은 후진들에게 맡기고 일단 접으려고 마음을 정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 그간 여러 가지 방법으로 4·3에 대한 저희의 정당하고 진실한 주장을 펴보려고 노력했지만 좌파들이 화해와 상생이라는 구호 아래 파묻으면서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 이다. 법과 제도로 우리의 의견을 개진할 공간을 차단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 하면서 냉소와 갈등을 부추기는 교육과 홍보 활동을 서슴지 않는 등 거대하고 완고한 벽에 부딪혀서 이다.

둘째, 국가가 역사해석을 독점하려는 경향이 노골화되고 있어서 제가 할 영역이 사라져서 이다. 역사 문제는 원칙적으로 학문적 영역입니다. 학자 간에 연구와 토론으로 합의를 하거나 주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관련된 자료 접근권도 공평하게 부여하고, 부담 없이 토론에 참여할 기회와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정치 권력과 특정 집단이 이를 전유물처럼 독 점하려는 것은 역사 바로 세우기에 어깃장을 놓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4·3 논의의 장에 참여할 기회도 없고, 역사적 자료에 대한 접근성도 차단되었으며, 심지어 현실은 역사해석의 자유마저 형벌 만능주의로 옥죄려는 위력 앞에 처해 있습니다.

셋째, 저의 주장이나 자신에 대한 발언 기회가 없어서입니다. 4·3과 관련한 저의 책이나 강의에 대한 좌파의 평가는 극지 기온보다 더 찹니다. 수구, 꼴통, 극우, 보수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것 또한 그들의 자유이니 전혀 개의치 않지만 어쩔 도리도 없습니다. 저는 역대 4·3희생자유족회장과 대화할 때마다 분명히 밝혔듯이, 4·3 당시 제 가족 중 군경이나 아니면 남로당으로 활동한 분이 없습니다.

그들로부터 인명피해를 당하거나 가해한 사실이 없어서 누구에게 원한을 품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무직이기에 유족들과 경쟁업체를 경영하여 손해를 보거나 끼친 일도 없고, 그들에게 욕을 한 사실도 없습니다. 제가 불법 집회를 하거나 어떠한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한 사실도 없습니다.

오히려 토론장에 나가 제 의견을 개진하거나 질문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 경우는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극우라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그들의 주장에 동조 순응치 않고, 감추고 싶은 사실들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데서 오는 반응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그들과 사이가 나빠서 득 될 일도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한민국 건국史나 4.3史 앞에 확고부동한 신념이 있습니다. 그 것은 오직 진실에 기초할 뿐, 그 어떤 억지나 거짓, 위협, 시류를 초월하고, 그 어떤 손익( 益), 친소(疏), 호오(好惡), 애증(愛僧), 타협(協)을 떠나 오로지 객관적으로,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고 판단할 따름입니다.

날이 갈수록 4.3史가 일방적 편향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 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3의 본질에서 가장 핵심적인 진실규명과 근본적 원인 규명 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인명피해만을 다루는가 하면, 그것도 남로당의 만행은 사라 지고 군경에 의한 인권침해만 거론되면서 전방위적인 '민중항쟁론' 또는 '통일투쟁론'에 기울어짐을 체감합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결코 무고한 인명피해를 가볍게 취급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 대한 보상을 반대하거나 무고한 희생을 기리지 않겠다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4·3의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중략. 김영중의 ‘제주4.3사건 문과 답’에서)

# 제주4.3 사건이란?

(양대영 기자)오늘은 2023년 8월 18일 1부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김영중 서장님을 모시고 4·3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제주 4·3 사건을 정의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선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좀 해 주십시오.

(김영중)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주 4·3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1948년 4월 3일, 그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하기 위해서 헌법을 제정할 제헌의원 총선을 못하도록,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기 위해서 일으킨 폭동이고 반란이다 이렇게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도민이 많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를 기해서 제주도에 있는 오름의 봉화불을 신호로 해서 도내 24개 경찰지서 중에 12개 지서를 남로당 인민 유격대가 일제히 습격을 해가지고,

12개 지서에서 4·3 당일 피해를 본 경찰관 전사자가 10명 우익인사 선거관리위원이라던지 우익단체원이 17명, 당일 인명피해만 17명 합해가지고, 당일 27명이 피살된 그런데 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 4·3 사건이다 이렇게 봅니다.

다음에 왜 그 제가 1941년생으로 금년 만 82세인데 아 뭐 한가이 놀기나 하지 왜 이 4·3에 대해서 말을 하게 되느냐 하면, 지금 거의 그 4·3 체험 세대가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대가 마지막 경험 세대다.

그런데 좌파에서 4·3을 왜곡하고 이렇게 잘못되는 것을 그냥 방관하는 것은 역사의 죄인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 가지고 이런 말을 하게 되고 오늘 인터뷰도 합니다만은,

특히 그 뭐 한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하는 것은 몇번을 강조해도 괜찮은데, 사실이 아닌 사실을 이걸 사실처럼 왜곡하고 날조하고 거짓으로 이렇게 좌파에서 하는 것을 보고,

저 같은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지금 좌파에서 하는 것이 사실대로 받아들여진단 말이죠. 우리 후배들이 그러면 이것은 큰일이다. 그래 가지고 제가 이제 나서는 겁니다.

그런데 뭐가 사실 아닌 것을 사실처럼 왜곡하고 있느냐 간단하게 예를 들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11월 23일 미국 CNN 방송에 그 기자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문답아시아'라는 프로에서 대담을 했습니다.

그때 그 대담한 내용이 뭐냐면 그 원문 그대로 한다면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48년 제주 4·3 사태에 대한 진상은 서로 언제 공개할 방침입니까? 이렇게 질문하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뭐라고 답변했느냐

원문 그대로 한다면 제주4.3 문제가 국회에 청원되어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과거의 억울한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이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 김대중 대통령의 답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주 얘기하면 괜찮은데 2017년 11월 9일 칼호텔에서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한 그 제7회 제주4·3평화포럼에서 저 동티모르 대통령 '호세 라모스 오트타'라고 하는 젊은 친구를 데려다가 영문과 한글로 어떻게 했느냐.

김대중 대통령은 제주 4·3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모반 폭등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무고한 희생자가 많습니다. 이제는 진실을 규명하고 이들이 명예를 회복할 때입니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얘기했다 이렇게 했단 말이죠.

(양기자) 거짓말이네요 이건

(김영중) 이건 완전히 거짓말이죠. 왜곡한겁니다. 오르타 그 대통령이 뭘 알겠어요.

그런데 이 원고를 사실인지 아닌지를 제가 단언할 수 없지만 제주4·3평화재단에서 많은 자료를 제공해서 오르타 대통령이 이 글을 썼지 않느냐, 저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이 만약에 뭐 요즘 유네스코에 뭐 4·3 기록물 보낸다는데 이런 걸 보내면 전 세계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공산당이 폭동으로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알려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 이건 아니다 해서 제가 이제 나서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때 그 48년 4월 30일 김익열이가 김달삼이하고 회담을 했습니다. 이것을 좌파는 4·28평화회담이라고 날짜를 앞당겨 가지고 이걸 평화회담이라고 하고, 이때 김익열이가 협상한 대로 잘 돼 있으면 많은 도민이 죽지 않고 살아날 건데,

아, 이것을 경찰과 미군정이 저 위반해 가지고 그래가지고 간경진압을 함으로 인해서 그 4·28평화협상에서 합의된 것을 위반해서 이렇게 했기 때문에 4·3이 확대되고 했다. 이렇게 엉터리로 좌파들이 얘기하고 정부 보고서에도 그리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김익열이가 48년 5월 6일 날 그러니까 5.10선거 직전에 교체가 됐거든요.

박진경으로 그래서 교체되니까, 이 김익렬이가 6월 달에 5월 6일 날 교체되고 6월 달에 뭘 썼느냐 하면 '동족이 피로물들인 제주참전기'라고 한 글을 썼습니다. 이것을 48년 8월 6일 7일 8일 3일 동안 당시 국제신문이라는 신문의 연재를 했거든요.

이것을 그 저는 기고문이라고 정의를 하고 그 다음에 이 김익열이가 이제 북진통에 6.25 때 북진통에도 참가하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해 가지고 나와서 1977년 4·3 진실이라고 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것을 내가 죽은 다음에 공표라 해서 한 것을 저는 유고문이라고 저희 일을 하는데 이 유고문을 4·3을 말한다 팀에서 그걸 해서 실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평화협상이라고 하는 그 동일 사건에 대해서 쓴 글이 지금 말하자면 기고문과 유고문이 완전히 다릅니다.

기고문에 쓴 일시, 장소, 참가 인원, 협상 내용, 협상한 후의 상황 또 휴전기간 이런 것들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러면 정보보고서에서 이걸 할 때는 기고문하고 유고문을 교차 검증해서 어느 것이 진실인가를 따져서 이 정보 보고서를 작성해야 되는데 기고문은 싹 뭉개고 완전히 무시하고 유고문 위주로 정부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거죠.

그러니까 이거야 말이 되느냐. 그래서 이런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4·3에 대해서 이것은 바로 잡아야지 이대로 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가 4·3에 대해서 말씀 드리는겁니다.

(양기자)네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고요. 다음 시간에도 계속 이어서 말씀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김영중) 감사합니다.

(양기자) 이상으로 1부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 김영중(金英仲)

· 1941년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생
· 애월상업고등학교(현, 애월고등학교) 졸업
· 해병대 병장 만기 제대(제126기)
· 서귀포경찰서장
· 제주경찰서장
· 도로교통공단제주도지부장
· 광주고등법원 제주부 민사조정위원
· 제10기 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제주특별자치도 치안행정위원회 위원장
· 제주도재향경우회장 등 역임

저서
· 그때 거기서 나는 상·하
· 『창꼼으로 본 세계 상·하 창은 창구멍이라는 제주어)
· 『내가 보는 제주 4·3사건』
『남로당제주도당 지령서 분석』
· 『레베데프 비망록』(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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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일꾼 2023-08-28 10:14:57
역사는 진실을 바탕으로 해야만 생명력이 있고 오래 갑니다.
ㅡ김영중님 같은 용기있는 시민이 있어 제주는 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ㅡ이런 것들을 잘 기사화 기록해주는 언론사도 애국자 입니다.

진실의 소리 2023-08-26 07:12:43
4.3진실을 용기있게. 증언해주시는 김명중서장님. 고맙습니다. 이런. 귀한방송을 보도해준. 양대영기자님 역시. 애국자입니다. 고맙습니다.

애국맘 2023-08-25 22:29:39
4.3의 바른 역사를 기사화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김영중 전 경찰서장님의 왜곡돤 제주 4.3의 바른 진실을 알려 주시니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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