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무 물러나고 다시 푸르른 저 바다 멀리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났다, 그리움의 집어등 불빛 같은 환한 등불 마을의 울긋불긋 너의 서천꽃밭은 ’
서천꽃밭
문상금
서역 어디쯤에도
집어등 불빛은 피어날까
검은 바다 물결 밑으로
불빛 그림자가 출렁일 때마다
떼 지어 몰려드는 은빛 물고기들
죽음임을
잘 알면서도
어디선가 숨죽여 있다
그리움의 빛을 향하여 곧장
헤엄쳐 올 수 밖에 없는
저 고기떼를 위하여
한가득 꽃을 뿌리고 싶다
살살꽃은 살을
뼈살꽃은 뼈를
도환생꽃은 영혼을 되살려
다시 짙푸른 바다를 맘껏 휘젓고 다니라
등 떠밀고 싶다
불야성을 이룬
집어등 불빛 따라
서천꽃밭에는
울긋불긋 꽃들이 모여
환한 등불 마을을 이루어라
-제6시집 「루즈 바르기」에 수록
밤배를 타보았다 아니 점차 어두워오는 세상을 바라보며 바다를 가로질러 보았다. 바다 한복판에서 바라다 보이는 육지는 울긋불긋 꽃 점 같은 등불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이 세상은 경계와 점 또는 선의 이동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염과 폭염의 경계에서 서천꽃밭에는 붉은 꽃들이 한 무더기 피어났다, 늦은 동백인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능소화 꽃무리가 하늘하늘 피어났다. 한참 전 꽃 진 동백나무를 기대고 능소화 덩굴들이 꽃 가랑이 활짝 벌리고 아등바등 기어올랐다. 무엇이든 타 감고 끈질기게 기어 올라갔다. 저기 저 닭 벼슬을 닮은 빨간 칸나도 피어났다.
‘능소화여, 칸나여
너는 내가 꼭 서늘한 이별할 때만 비명 지르며 바닥칠 때만
붉은 몸통 잘린 채로 땅에 두둑 떨어져 흐느끼더라
밤낮 인연의
붉은 실은
짧아지는데
너는 내가 쿵 넘어질 때에만
하필 떨어져 발아래 밟히더라
슬픈 눈물 붉디붉게 흘리더라
내가 죽고 나서도
한참을 다시 떨어져 한숨 쉬다가
그렇게 또 짓밟혀 비로소 꽃 지드라’
집어등 불빛 그 붉은 꽃들이 피어나는 서천꽃밭에는 죽음임을 알면서도 떼 지어 몰려드는 은빛 물고기들. 그리움이란 바람의 스친 흔적 같은 것이라서 늘 황량하고 끈적끈적한 진물이 흐른다.
네가 사는 서역 어디쯤에 한 가득 꽃을 뿌렸다, 살살꽃을, 뼈살꽃을, 도환생꽃을, 붉은 눈물 흘리며 뿌렸다.[글 문상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