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여자, 젖 물리는 여자,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여자’
나부
문상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탯줄과
울음 하나로
쏟아지듯 미끄러져 나온
피범벅인 세상
전쟁터 아닌
삶이 있을까
누가 내 배꼽에
단단한 탯줄 하나
달아주었으면
애초에 알몸으로 태어나
알몸으로 돌아가는 삶
웅크리고
두 눈 가려도
펄럭펄럭 심장 뛰는
저 바다여
아, 어머니...
-제7시집 「時志, 시대의 빛과 바람에 뜻을 새기다」에 수록
나부(裸婦)는 회화의 소재로 즐겨 사용된다. 갓 태어났을 때 옥양목 무명천 위로 거의 발가벗은 어머니의 배 위로 누군가 올려놓아 주었을 때, 비로소 비좁고 어두운 산도를 벗어난 안도감에 자지러지듯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펄럭펄럭 심장은 뛰놀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용암 쏟아지듯 미끄러져 나온 끈적끈적 피범벅인 세상, 전쟁터 아닌 삶이 있을까. 탯줄이 잘라지는 그 순간부터 오롯 하나의 꼬물꼬물 조그맣고 완벽한 존재가 된 것이었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웅크리고 있는 나부,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부들을 그렸다.
묘하게도 발가벗은 모습들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고 바다와 하늘과 소나무와 말과 어선과 초가집과 태양과 더불어 어우러져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녀들은 갓 태어난 솜털 보송보송한 물 애기였으며 해녀였고 또한 어머니였다.
잠 속을 떠돌았다 바다를 떠돌았다 큰 물결 작은 물결 사이로 미역처럼 매끈하게 다가오는 아, 수밀도(水蜜桃)여, 볼록한 배꼽이 잘렸던 그 날처럼 자지러지듯 울음을 쏟아내며 힘껏 젖을 빨았다.
호오이 휘파람새가 날아든 줄 알았는데 비 내리는 바다에 물질하는 점 하나, 등허리에 비스듬히 비창 차고 이승과 저승 들락날락 그 질기고 질긴 목숨 열두 길 물 속에서 시를 쓰는 해녀들
참으로 아늑하여라, 먼 먼 바닷가, 섬 집 아기 노래 소리 들려오는 곳 저 혼자 파도가 놀다가는 곳, 흰 물새 하늘로 날아오르고 밤마다 도란도란 귀 열어놓고 오래도록 별들이 깨어있는 섬 그늘
탁 탁 목숨 같은 점 하나 품은 저 푸른 바다여 아, 어머니... [글 문상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