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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94) 낙이불류 애이불비
[문상금의 시방목지](94) 낙이불류 애이불비
  • 문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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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7.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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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도 지나치게 흥청거리지 않고, 슬퍼도 비통할 정도는 아니게,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

 

낙이불류 애이불비

 

문상금

 

한여름 날
연꽃을 보러 가고 싶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진흙탕 물속에서
마음 깊은 곳으로
향기 뿜어 올리는 연꽃들의
고고한 자태를
엿보러 가고 싶다

연꽃 같은
연잎 같은
은은한 마음을 갖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상처 입지 않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눈 감으면
내 마음의 밭에
숱하게 피고 지는 연꽃들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하게
살아가고 싶다
 

-제6시집 「루즈 바르기」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언제부턴가 꽃이 위안이 된다. 잔잔한 수련 흘러가고 수국 꽃 지고 흰 치자 꽃 피기 시작하고 또 연꽃이 두둥실 떠오르는 한여름이면 그나마 견딜 수 있겠다.

여기서 견딘다는 것은 삭막하고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다리처럼 진하고 연한 꽃들의 향기가 마음을 촉촉이 적시고 또 꽃잎들의 부드러운 감촉들이 영혼을 어루만져 준다는 의미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연꽃이다. 그 자태와 기품이 그렇게 그윽할 수가 없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에서 예쁘게 피므로 흔히 속세에서 열심히 불공을 닦아 극락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상징한다. 특히 부처님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 피었다고도 하고 극락세계에서는 모든 중생이 연꽃 위에 신으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불상이나 스님이 앉는 자리의 장식을 연꽃으로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탁하고 맑음은 결국 한 끗 차이, 미지근한 진흙물 속에서 보름달 같이 환한 연꽃이 두둥실 피어날 때, 내겐 잠도 오지 않았다.

철저한 무소유, 연꽃도 연잎도 이슬 한 방울 머금지 않고 밤낮 도르르 톡 도르르 톡, 이슬에게도 번뇌가 있나보다, 영롱하게 빚어놓은 백팔염주를 닮았다.

속세와 선계도 결국 한 끗 차이, 가장 더럽고 끈적거리는 연못물 속에서 조금도 물들지 않고 그대 화사한 등불로 불 밝혔다.

씨앗에 생채기가 있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꽃, 천 년이 지나도 다시 피어나는 꽃, 작렬하는 태양 아래 가장 빛나는 겸손을 직시 한다.

꽃도 꽃이지만 그 연근이나 연잎이나 연밥 같은 것들 중 그 어느 한 가지라도 버릴 게 없는 것이다. 연잎 위에서 반짝 흘러내리는 아침이슬들을 보라. 어느 것 하나 영롱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 세상은 얼마나 눈부신가.

연잎에 고이는 그리움의 빗방울 하나 둘, 가득 고이면 연잎은 몸을 뒤집어 흔들어 기꺼이 연못에 물을 버린다.

그리움에도 무게가 있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지니는 저 연잎처럼, 미련 없이 버릴 줄 아는 저 연잎처럼, 아아, 지금 내가 한 마리 짐승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버려야 할 것을 꽉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상처받지 않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모든 마음들은 늘 쉴 새 없이 크고 작게 흔들리고 지독하게 상처입고 뒤죽박죽이 되기 마련이다.

연꽃 같은 연잎 같은 마음을 갖고 싶다. 몸을 비틀고 비명을 지르고 갈가리 찢긴 끝에야 비로소 다가오는 미친 고요처럼 뒤죽박죽으로 흔들리는 마음들을 다잡아 우아한 자태와 기품으로 이 여름을 뜨겁게 꽃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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