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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92)목수
[문상금의 시방목지](92)목수
  • 문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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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6.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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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줄 놓기, 시커먼 먹물 튕겨 길을 놓기, 그 길을 잘라서 새것을 탄생시키는 신성한 의식의 길’
 

목수
 

문상금
 

먹줄로
나무에 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먹줄 길 따라
각 맞추어 잘라내고
높낮이를 깎아내면

때로 전신이 긁혀 핏방울이
선명할지라도

불룩 튀어 오른 핏줄과
팔뚝의 근육
거친 손 사이로 탄생하는
세밀한 길

그 길을
흰 솜처럼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신기의 손을 지닌
나무를 다루는
어진 사람들
 

-제6시집 「루즈 바르기」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먹물로 글씨를 쓸 줄 알았다, 차마 그 먹물을 튕겨 나무에 선명한 문신처럼 진한 길을 낼 줄은 몰랐다, 어린 시절 마냥 신기하였던 목공소에는 탁 탁 먹줄이 나무에 닿는 소리들

그 길을 따라 크고 작은 크기로 나누어지는 나무들, 며칠 후에는 책상이 되고 의자가 되고 신발장이 되어서 가지런히 놓여 있곤 하였다.

거친 손과 불뚝 튀어 오른 핏줄이 수차례 왔다 갔다 하면 세밀한 나무의 길이 생겨나고 그 길을 흰 솜처럼 부드럽게 걸어가는 사내들이 있었다. 어찌 보면 나무를 다루는 사람들은 나무를 닮아 순하고 어질었다.

때로 생채기가 온몸을 타고 돌았지만 나무에는 티 한 점 없었다. 얼마 전에 낡은 재봉틀 박스를 교체한 것을 보았다. 신기의 재능을 지닌 목수의 손길이 미치자 그것들은 먼지 쌓이고 낡고 지친 기다림의 세월을 건너뛰어 반짝이는 보석처럼 금방 생기가 돌고 빛나고 있었다.

아마 목수는 전체를 다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전체라는 것은 숲과 같은 것이다, 그 숲이 품고 있는 나무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수많은 시간과 연마와 숙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도 관심 없는 나무 그루터기가 뒹굴고 있었다, 목수는 그것을 한참을 이리저리 바라보더니만 “새를 품고 있군, 날게 해주어야겠어” 밤새도록 깎아내고 다듬고 광을 내서는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솔개를 태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목수는 온 몸으로 거짓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예수도 목수였다고 한다, 왜 하필 목수였을까, 그 이유는 온몸으로 평생 사람들과 함께 하며 세상의 불의와 유혹으로부터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탁,
탁 하고 튕긴
먹줄

곧고
선명한 수평선이
여기에도 있어

아, 건널 수 있을까

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선 또는 길’

목수는 짙은 선을 만들고 선 같은 길을 만나고 그 선명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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