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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91) 수선화에게
[자청비](91) 수선화에게
  • 송미경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3.16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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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송미경 수필가
▲ 송미경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추위를 뚫고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 수선화다.

지하상가 모퉁이서 한 할머니가 수선화 꽃을 팔고 있다.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다른 꽃과는 달리 수선화는 들녘이든 담벼락에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꽃이 아닌가, 어른 주먹만 한 한 묶음에 천 원이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가 안스러워 두 묶음을 샀다. 만약 내가 사지 않는다면 할머니는 한송이도 팔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을 것이다. 언제 꺾었는지 모를 정도로 꽃은 이미 반쯤은 시들어 있었다. 두 묶음을 사니 한 묶음 더 얹어 주었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꽃병에 꽂으니 꽃들도 살았다는 듯 기지개를 켠다. 방향제를 뿌린 듯 수선화의 은은한 향이 온 집안 가득하다. 수선화 꽃망울과 마주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매혹적이지도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은 수수한 자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된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 유배 와서 만발한 수선화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또한 귀한 꽃을 잡초로 생각하여 마소의 먹이로 쓰이는 것을 보고 두 번 놀랐다고 한다. 그는 수선화를 금전옥대라고 하여 보통 꽃은 10일을 넘기지 못하는데 수선화는 한 달 이상 피어 있어 그 강한 생존력에 추사가 더욱 사랑하게 된 꽃이다.

꽃말을 찾아보니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도 수선화가 등장한다. 나르시스는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지만 정작 누군가를 사랑하지는 않는 남자다. 어느 날 나르시스는 숲 속에 사냥을 갔다가 심한 갈증을 느껴 샘을 찾았다. 샘물에 비친 잘생긴 자신의 모습에 강렬한 사랑을 느껴 그만 죽고 말았다. 신화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두 가지 사랑이 있다. 자신을 사랑한 나르시스와 아름다운 청년 나르시스를 사랑한 요정이다. 나르시스의 사랑을 얻지 못한 요정은 그의 사랑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고 고통받도록 복수의 여신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나르시스가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수선화다.

안타깝게도 사랑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슬픈 사연이 담겨 있었다. 인간이면 누구든 자기도취에 빠져들기 쉽다. 비뚤어진 사랑은 자칫 자신도 사랑의 대상도 파괴시킨다.

수선화하면 강인함을 뒤로하고 청초한 외로움이 떠오른다. 연약한 꽃대위에 홀로 핀 수선화를 연상케 한다. 모든 사물은 제자리에 있다가 언젠가는 유유히 사라지는 존재다. 문득 정호승 님이 ⟪수선화⟫가 떠오른다. 수선화를 은유해서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한 시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라 하였다.

한때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화무십일홍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봄처녀 마음에도 꽃이 활짝 피었다. 수선화 향이 더욱 짙어져만 가는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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