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자청비](90) 챗GPT와 질문의 값
[자청비](90) 챗GPT와 질문의 값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3.02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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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가끔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글을 대신 써 달라고 부탁받을 때가 있다. 어떤 봉사단체의 회장으로 취임하는 취임사라든가, 학교 교지에 들어갈 축사라든가, 단체의 발행지에 들어갈 에세이, 공적인 자료로 들어갈 사유서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건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쓰기 어렵다며 사양해보기도 하지만 대략 이렇게 쓰면 될 거 같다고 개요를 써주기도 하고 어떤 건 사정이 딱하여 전문을 써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글을 완성하고 보면 내 목소리도 아니고 친구나 지인의 목소리도 아닌 어디에서 들었음 직한 구태의연한 문장들이 들어가 있기 일쑤였다. 어차피 그런 글들은 정성을 기울여 읽지도 않고 형식적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대신 써주는 나도, 그 글을 대하는 지인들도 별다른 감흥이 없기 마련이다. 그러면 이런 글을 인공지능이 썼을 때는 어떨까?

미국 남부 테네시주 벤더빌트대가 총격 애도문을 챗GPT로 써서 학생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가 뭇매를 맞았다고 한다. 총격 사건으로 이 학교 학생 3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는데 이런 사태의 애도문을 컴퓨터에 맡긴다는 것 자체가 진정성 없게 비춰진 결과였다고 한다.

요즘 챗GPT(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가 연일 화제이다. 몇 시간이 걸리는 자료 정리를 단 몇 초 만에 해치우기 때문에 회사원들이 열광하고 챗GPT 활용 방법을 가르쳐주는 학원도 열풍이다.

나도 호기심에 챗GPT 앱을 깔아 돈을 결재하기 전에 무료로 할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을 해보았다. 먼저 한국어로 대화 할 수 있냐고 하자 다른 앱을 깔아야하고 그 앱을 깔면 전세계 누구와도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원한 건 한국어로 채팅이 되는가였는데 딴말을 한 듯 했다. 나중에 컴퓨터에서 검색해 봤더니 한국어로 써달라고 하면 되는 걸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두 번째 질문으로 AI에 대한 에세이를 써줄수 있냐고 하자 ‘NO’라는 답변 뒤로 대충 해석해보면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AI의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 주제를 좁혀야 하고 읽을 독자가 누구인지 명시해야 한다는 긴 영어가 떴다. 실소가 나왔다. 결재하기 전 맛보기 채팅이라 그런 걸까 하면서도 AI의 답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는 무언가를 잘못 눌러서 질문을 날려버렸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의 인공지능과의 세 가지 대화는 멋쩍게 끝나버렸다.

무게 있는 답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 해야한다. 지인들과 식당에 갔는데 거기서는 타로점을 쳐주고 있었다. 타로점을 보려면 얼마를 내야하냐고 물어보자 질문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는 말에 웃은 적이 있다. 이때 질문에도 값어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

챗GPT와의 대화를 엮어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예리한 질문을 던져 챗GPT의 특성과 한계, 가능성을 보여주려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교수와 AI의 공동저작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어쨌든 질문의 값어치를 최대치 끌어낸 결과라는 생각이다.

이렇다면 소설도 챗GPT로 대화하면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가의 자리도 위태로워지는 것일까?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까? 인간보다 더 똑똑해져서 인간 위에 군림하게 될까?

학교에 내야 할 과제를 인공지능에 의지하고 한 편의 에세이를 인공지능에게 빚질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그 작업을 수행하면서 개요를 짜고 살을 붙이는 등의 두뇌활동이다. 그 두뇌활동으로 인해 얻어진 것들은 다른 작업을 할 때 통찰 효과를 낼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 된다.

아직 챗GPT 결재를 미루고 있다. 나는 느리고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인공지능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방식으로 자료를 모으고 머리를 싸매는 걸 선택해야겠다. 나 자신과 대화하고, 수많은 책의 저자와 대화하며 질문의 값을 높여나갈 것이다. 인공지능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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