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문상금의 시방목지](89)냉이
[문상금의 시방목지](89)냉이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2.27 09: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의 마중맛과도 같다, 쌉쌀한 향과 자생력이 어머니를 닮았다’

 

냉이
 

문상금
 

끈질겨야
살아남는다

길섶에
다닥다닥 피어난
흰 냉이 꽃

어머니
옥양목(玉洋木) 앞치마를
닮았다

질기고
투박한
목숨
 

-제6시집 「루즈 바르기」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말, ‘어머니’

모처럼 하논 지나 서귀포 외곽지 엉커리 들판을 거닐었다, 마음 닿는 대로 발 닿는 대로, 마치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가듯이.

성급할 필요가 없다. 유유자적 하늘도 바라보고 빨간 열매 먼나무에 앉은 새들도 바라보고 길모퉁이 양지바른 곳에 납작 엎드린 냉이 무리도 쳐다보고.

냉이를 보면 괜히 마음이 저려오고 흰 꽃을 만나면 눈물이 글썽여지곤 한다. 길섶에 다닥다닥 피어난 흰 냉이 꽃들은 어머니의 흰 얼굴과 흰 옥양목 앞치마와 겹쳐진다. 손에 물기 마를 날이 없었던 그 질기고 투박하고 고단한 한 생애가 떠오른다.

추위를 뚫고 끈질기게 뿌리내려 자라나는 냉이는 어머니의 깊은 마음과도 같다. 냉이 된장국이나 냉이 나물은 물씬 생명의 깊은 맛을 내포하고 있다. 유독 냉이 뿌리를 좋아하여 조심스레 붉은 흙을 파내려가 보았다. 아아, 그 조그만 잎에 오른팔만큼이나 쭉 뻗어 내려간, 제법 두껍다가 가늘고 긴 뿌리는 그처럼 존경의 경례를 올리고 싶을 만큼 참 대단하였다.

이 세상에 작은 풀꽃 하나라도 훌륭하고 대단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때로 꽃들 사이를 거니노라면 그 꽃의 한가운데 흐르는 지난한 꽃의 삶이 느껴진다.

냉이 뿌리가 땅 속으로 더 뿌리내리고 매화꽃이 흐드러질 무렵, ‘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 행사가 열렸다. ‘어머니’라는 시에 이승후 작곡가가 곡을 붙이고 한동균 테너가 노래를 불렀다. 강하고 애절한 음조가 또 한 구비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었다.[글 문상금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