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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86)영천(靈泉)오름 백량금
[문상금의 시방목지](86)영천(靈泉)오름 백량금
  • 문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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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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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다는 것은 순수의 정점이며 시발점이다, 뿌리를 자르거나 손이 베이면 솟아나는 붉은피톨은 때로 살아있음을 재확인하는 또 다른 첫 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피톨의 심장에 따뜻하고 푸른 샘 하나가 늘 솟아 내 마음의 오름 전체를 짙푸르게 할 수 있다면 ’
 

영천(靈泉)오름 백량금
 

문상금
 

오늘도 하루 종일
그대를 생각하였다

서늘한 숲 그늘에
초롱초롱 붉은 꿈들

그 뿌리를 자르면
순수(純粹)의 붉은 점으로 남는
영천 오름 백량금

봄여름가을겨울
더 깊어가는
아아, 영천 오름이여,

외로울 때면
샘물 한 모금 마셨다

더 외로울 때면
샘물 두 모금 마셨다

숲을 떠나지 못한다고
큰 나무가 되지 못하였다고
결코 슬퍼하지는 않아,

붉은 꿈들이 날아올라
오름을 휙휙 돌리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모든 것의 중심은
늘 가까이 있어
아침저녁 내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들어
더 깊어가고
붉어지는 것이다
 

-제6시집 「루즈 바르기」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어릴 적 허리에 책 보따리 묶고 학교를 뜀박질하며 다니거나 성당(가나안 공소)을 오고 갈 적에 해 따라오듯이 늘 오름이 따라왔다, 영천(靈泉)오름이.

캄캄한 밤하늘에 푸른 별과 달들이 따라오듯이, 항상 동쪽 어깨 너머로 두둥실 오름이 떠올라 늘 친구 같았다. 한번은 친구들과 무엇에 이끌리듯이 오름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마구 달려드는 소 무리에 놀라 쫓기듯 내려온 적이 있다. 그 놀라서 신발 들고 소리 지르며 내려올 때 얼핏 보았던, 잎 짙푸른 작은 나무에 달려있었던 빨간 열매들,

내가 차츰 나이를 먹어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가 되어 흰 머리와 잔주름이 늘어날수록 영천 오름은 푸른 숲으로 더 울창해져갔다. 깊어져갔다.

어릴 적 마소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서, 영 오름이나 목장 근처는 가 볼 수도 또 마음이 내키지도 않았다. 딱 한 번 가본 영천 오름 초행길이 영 마지막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눈발 날리는 날에 서귀포 앞 겨울바다 가까운 언덕배기 찻집에서 친구와 짙은 커피를 마셨다. 친구는 우연히 그 날 아침에 영천 오름에 올라 아침운동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반갑고도 깜짝 놀랐다.

“정말?” “정말이지, 그럼 ” “몇 년 전에 어릴 적 보았던 그 빨간 열매, 백량금에 대한 시를 써서 발표하였는데... 혹시?” “아, 그 빨간 열매가 백량금이구나, 오름 숲속에 열매 많이 달려있었는데”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네. 또 운동 갈 때 같이 따라 갈까?” “알았어, 곧 연락할게” 금방 운동갈 것 같았던 친구는 여태 또 혼자 갔다 왔는지 아니면 바빠서 정말 연락을 못하는 건지 통 연락이 없다.

폭설이 내렸다. 제주 섬이 온통 흰 섬이 되었다. 꽁꽁 얼어붙었다, 그 눈 속에 가끔 백량금 열매가 눈에 선하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눈을 뚫고 복수초 노란 그리움 같은 꽃이 피어나듯이, 칼바람 속에서 수선화들은 일제히 피어났다. 그 향 짙은 겨울 꽃들의 붉은 심장, 붉은 꿈들이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백량금의 꽃말은 ‘가치와 사랑’이다. 금전 운과 행운이 빨간 열매에 들어있어서 개업선물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연말이면 무더기로 사서 달아주던 사랑의 열매가 생각나기도 한다. 흔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흔하지 않은 자생식물 백량금을 여섯 번째 시집 ‘루즈 바르기’에 넣어 주었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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