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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84) 비교하는 순간
[자청비](84) 비교하는 순간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1.19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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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뉴스라인제주

시골 마을로 들어선 버스는 조금 가파른 동산을 오르더니 공터에 멈추었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니 동굴호텔이라는 대문을 만났다. 동굴 속을 호텔 방으로 꾸몄다니 궁금하기도 하고 꼭 한번 자보고 싶었다. 좁은 마당에는 방으로 연결된 계단이 여럿 있다. 지금까지 봐 왔던 호텔과는 다르다. 넓은 로비도 없고 복도도 없다. 각기 방으로 가는 길이 다르다.

가이드가 방 번호 제비뽑기를 할 거라면서 방 대표를 불러 모은다. 방마다 시설이나 규모가 다르므로 방에 대한 불평불만을 없애기 위한 가이드의 전략이었다. 남편은 나를 방 대표로 보내며 파이팅을 외친다. 꽝이 없는 제비뽑기지만 순간 좋은 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가슴이 술렁거렸다. 이내 하룻밤 자는데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으로 열쇠 하나를 잡았다. 노란색 청동에 126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청동 열쇠의 무게가 호텔의 역사와 품격을 말해주는 듯했다. 왠지 좋은 방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좋은 방이 아니어도 내가 선택한 방이니 어쩔 수 없다.

방문을 여는 순간 포근함과 아늑함이 풍겼다. 방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낮은 천정과 따뜻한 대리석 바닥, 조화롭게 배치된 가구와 장식,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인 게 없었다. 방 입구 오른쪽은 바닥보다 두 계단 정도 높은 공간에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만들었다. 터키 고유의 문양인 양탄자와 좌식 찻상과 두툼한 등받이가 잘 어울렸다. 더 안쪽에는 소파와 테이블, 그 위에 찻잔과 차, 포트까지 정성스러운 손길이 미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벽은 은회색의 암벽이다. 동굴 내부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벽 틈에서 나오는 조명 빛이 아름답다.

벽난로 안에는 장작 몇 개가 불타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 쪽 문을 여니 화장대와 변기, 월풀 욕조가 있다. 고품격 방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품격, 시설 대만족이다.

제비뽑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우쭐해진다. 남편도 ‘당신이 제비뽑기를 잘했다.’라면서 하이파이브를 쳐준다.

어떤 이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죽기 전에 해야 할 100가지 버킷리스트 중에 ‘동굴호텔에서 하룻밤 자기’를 본 적이 있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 이렇게 좋은 방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으니 이런 복이 또 어디 있나 싶었다. 그 순간 감사하고 행복했다.

이 동굴호텔의 유래 또한 특별하다.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기독교인들은 데린쿠유에서 지하도시를 만들어 생활했다. 박해가 끝난 후에는 그 후손들이 괴레메에서 동굴 생활을 했다. 탄압을 피하여 이곳 카파도키아라고 불리는 곳으로 이주해 온 기독교인들은 응회암의 동굴을 파서 그 안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 지금까지도 약 6,000개의 동굴수도원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호텔로 오기 전 괴레메 야외 박물관에서 그 실체를 보았다. 동굴수도원 벽에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흔적과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창조보다 더욱 값진 것이 계승발전이다. 뿌리가 깊어야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동굴호텔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는 어느 정도 인정받아 지하도시에서 나올 수는 있었지만, 황량한 땅에 당장 살 집을 지으려니 아무것도 없었기에 응회암 동굴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동굴 주택들이 지금은 일부 폐허가 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주거지로도 사용하고 일부는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한 호텔로 변신했으니 이것이 계승발전이 아니고 무엇인가.

동굴호텔의 안락함을 누리며 차 한 잔을 하려는데, 옆방에 든 모녀가 방 구경 왔다. 우리 방을 여기저기 둘러본 모녀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이 방도 좋긴 한데 우리 방이 좀 더 좋네요. 우리 방 한 번 구경해 보세요.” 한다.

옆방은 우리 방과는 규모와 구조 자체가 달랐다. 넓이도 훨씬 넓고 편의 시설도 더 많다. 우리 방과는 달리 더블 침대가 두 개다. 한쪽에는 가족끼리 족욕 하면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시설, 터키식 찜질방 하맘도 있다. 우리 방이 여관이라면 이방은 별이 다섯 개인 호텔이라 할 정도다.

다른 방들도 구경했다. 각기 방 모양이나 시설이 다 조금씩 달랐다. 모두가 하룻밤 묵어가기엔 부족함이 없는 방이다. 다른 방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네 방이 제일 좋은 방인 줄 알고 모두가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나도 옆방 구경을 괜히 했다는 생각을 했다. 옆방과 비교하는 순간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옆방 모녀가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고등학생 딸과 같이 온 어머니는 딸이 자기네 방이 제일 나쁜 방이라고 하면서 우는 바람에 가이드 방과 맞바꾸었다는 말도 들었다. 비교가 불러온 결과였다. 아예 다른 방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자기 방이 최고 좋은 방인 줄 알고 만족했을 것인데…….

다음 날 옆방 모녀에게 그 방에 시설들을 다 사용했느냐고 물어보았다. 모녀는 씻고 잠자리에 들어서 안에 시설을 다 사용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행복감, 만족감, 충만감, 감사함이 사라지는 때는 비교에서 우위에 있지 않음을 느낄 때이다. 필자도 하룻밤 자고 가는 호텔이 아무렴 어쩌랴하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았고, 방에 만족하고 행복했었는데 옆방을 보는 순간 행복감은 사라졌다.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좋아했던 감정이 나중에는 부러움으로 변하였다.

비교하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진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산다. 가까이에는 이웃과 친구, 친척이고 멀게는 세계의 모든 것들과 비교한다. 끊임없이 비교 대상과 저울질을 하며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상대적으로 좀 더 낫다고 느끼면 다행이고, 못하다고 느끼면 불만이다. 많은 사람이 그 불만에 가려 가진 것도 못 누리는 어리석음을 불러온다.

동굴호텔의 방 규모와 그 안의 시설이 조금씩 다르듯이 우리네 삶도 그러하다. 인생은 어쩌면 하룻밤 자고 떠나야 하는 동굴호텔의 투숙객과 같은 것이다. 내가 처한 지금의 환경이 하룻밤 자고 가는 호텔 방이라고 여기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그 안에서 충분히 누릴 일이다. 나의 방 안에서 안락함을 충분히 누리면 그게 만족이고 행복이다. 남보다 좀 더 나으면 어떻고 좀 더 못하면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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