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5:41 (일)
[자청비](83) 화목한 가족을 꿈꾸며
[자청비](83) 화목한 가족을 꿈꾸며
  • 이을순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1.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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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순 소설가
이을순 소설가
▲ 이을순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2023년 계묘년 새해 첫날 저녁 시댁 가족 전체 식사모임을 가졌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다가 이번 새해 첫날에 모이게 된 것이다. 3년 만에 만난 자리여서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가족들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였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이 예전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내가 노년의 인생을 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주로 통화만 하다가 이처럼 가족 전체가 모이게 되자 마치 새해 해돋이를 맞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 반면 얼마 전, 해가 바뀌어서 어느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올 한 해 계획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장편소설을 마무리 짓는 것이라고 했고, 그녀는 화목한 가족을 꿈꾸는 게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작년 연말부터 그녀는 언니 때문에 친정 가족들과 아주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동안 언니와의 관계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언니가 어느 날 자신의 집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백번 잘하다가도 한번 잘못하면 백번 잘 한 것은 간 곳이 없다며 그 사건의 전말을 내게 털어놓았다.

하루는 언니가 그녀를 찾아와 자기 딸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풀어놓게 되었고,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언니를 위로한답시고 그동안 지켜왔던 거리유지를 무시한 채 언니 일에 참견했다.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데도 그녀는 언니의 처지가 안타깝게 여겨 매사 언니의 사생활에 끼어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관계가 애틋하게 느껴졌다. 언니는 동생의 의견에 잘 따라주었고 언니의 우울한 마음도 많이 위로받았다. 하지만 언니가 별안간 비상금으로 주식투자를 할 생각이라고 밝히자, 깜짝 놀란 그녀가 그걸 극구 말리는 과정에서 그만 언니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데 왜 하필이면 주식투자냐고, 언니의 생각이 신중하지 못하니까 딸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게 아니냐며 언니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물론 설득하다가 안 되니까 짜증을 낸 것이었다. 더욱이 그 전날 언니가 오빠한테 용돈까지 챙겨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발끈 화가 난 그녀는 언니가 여태까지 마음이 약하니까 이리저리 돈을 뜯기며 사는 게 아니냐며, 그동안 참고 있던 말까지 쏟아내고 말았다.

다음날 분위기가 싸해지자 그녀는 언니에게 자신이 너무 심한 말을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언니도 그 사과를 받아들여 그 문제는 유야무야로 끝났다. 그 뒤 그녀는 그동안 밀린 일에 집중하다 보니 전처럼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 아니, 언니와 적당한 거리유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언니는 그녀가 일부러 자기를 피한다고 생각해서 감정이 상해버렸다. 소통 부재로 인해 그렇게 자매는 엇갈린 감정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평소 우울한 마음을 앓고 있던 언니가 오빠네 집으로 가, 그동안 그녀가 말한 것 중에서 올케언니가 들으면 섭섭해할 말만 골라서 고자질해버렸다. 당연히 전달된 말들은 풍선처럼 잔뜩 부풀려진 상태였다. 한순간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녀가 서둘러 오빠네 집으로 달려가 그 일을 수습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진실이 되어버린 거짓을 바르게 돌려놓기란 쉽지가 않게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언니의 배신이었다. 언니가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상처를 받은 그녀는 언니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자신의 마음을 의지할 곳은 오직 오빠네뿐이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그런 언니가 그녀가 등을 돌렸다고 생각하자 언니도 배신감을 느끼고 그런 유치한 짓을 하고 만 것이었다. 그녀는 그 문제로 끙끙 가슴앓이하다가 친구인 내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녀에게 그냥 물 흐르듯이 얽힌 문제들을 내버려 두라고 조언했다. 언니와 동생 둘만 감정이 꼬인 게 아니라, 언니와 올케 사이에도 감정이 꼬여버렸으니 시간에 맡겨둘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모든 게 자기 탓이라며 자책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언니에게 자기 입장을 충분히 얘기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라며 후회를 했다. 그래서 새해 자신의 계획은 화목한 가족을 꿈꾸는 것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친정 가족들에게 전화부터 돌렸다. 서로 배려와 관심이 있어야 그 관계 또한 좋아지는 법. 내가 먼저 새해 인사를 건네자 가족들은 구정 때 만나자며 다들 한마디씩 덕담을 해주었다. 친구 덕분에 나도 시댁, 친정의 화목한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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