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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82) 행복은 성공순이 아니잖아요
[자청비](82) 행복은 성공순이 아니잖아요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1.05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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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1월 1일엔 아침 일찍 일어났다. 동네 언니네 귤 작업을 도와주기로 한 날인데 언니네가 도두봉에서 첫해를 맞이한 후 일을 하자고 해서 눈을 비비며 같이 나섰다. 도두봉에 가까워질수록 차가 밀렸고 주차할 곳이 없어서 도두봉을 한참 벗어난 곳에 차를 세운 후 해안도로에서 새해의 첫 일출을 기다렸다.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린 해는 뿌연 미세먼지와 잔뜩 흐린 날씨에 일출 시간이 돼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구름 사이로 삐죽 내민 해를 볼 수가 있었다. 매일 뜨는 해이지만 새해의 첫 일출이라는 의미부여를 한 탓인지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해는 뜬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작년에 목표를 적어둔 것을 살펴보니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스탠드 달력에 목표 여섯 개를 적은 포스트잇을 달력을 넘길 때마다 다시 붙였다. 그랬는데 하나도 이루어진 거 없이 그대로 새 달력에 붙이게 되었다.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은 것도 있고 내가 조금 열심히 했으면 이루어질 뻔했던 것도 있다. 낙심하기보다는 올해도 이런 꿈을 안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다독인다.

작년에 우리 가족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일들도 있었고 그것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속을 끓이기보다는 시간에 맡겨두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서울에 떨어져 사는 아들, 딸을 만나러 우리 부부가 상경해서 며칠을 같이 보냈다. 자꾸 부딪치는 남편과 아들이 많은 대화 속에 서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았고 아들이 설치했다는 인공지능공항검색대를 통과하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또 떠오르는 행복한 순간은 친구들과 양평으로 여행을 갔던 때이다. 양평에 새집을 마련한 친구의 집에 머물면서 세종대왕릉과 용문사의 천년 은행나무를 보았다. 세종대왕릉에서는 한글을 창제한 왕의 무덤 앞에서 한글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나를 돌아보았다. 마의태자가 용문사 마당에 지팡이를 꽂으며 ‘단단히 뿌리를 내려 천년사직을 대신해다오’라고 했다는 천년 은행나무는 핸드폰 카메라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높고 굵었다. 우리의 우정도 이와 같기를 바라며 사진을 남겼다.

세 번째로 떠오르는 행복한 순간은 부모님을 모시고 ‘올빼미’영화를 같이 본 것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영화관을 찾지 못했는데 더 연로해지시기 전에 부모님과 같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작년에 세운 목표들은 더 높은 성공을 위해 나를 담금질하는 것이었는데 이걸 다 성취했다고해서 내가 행복했을까. 목표들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가 행복했던 순간은 가족과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다.

월딩어 하버드 의대 교수는 행복은 부, 명예, 학벌이 아닌 ‘관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아동기 가족과의 관계는 80대까지 생애 전반의 행복에 영향을 주며’, ‘50대일 때 인간관계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사람들이 80대에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또한 외로움과 고립이 술과 담배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했다.

올해는 내 앞만 바라보고 무리하게 달리는 목표들을 줄이고 가족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 행복은 성공순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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