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자청비](81) 여행, 일상에서 구한 일탈의 즐거움
[자청비](81) 여행, 일상에서 구한 일탈의 즐거움
  • 송미경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12.29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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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송미경 수필가
▲ 송미경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할로윈데이 새벽이다. 30일 오전 7시 30분경 TV에선 속보로 이태원 참사 현재 50여 명이 압사한 상황을 집중 보도 하고 있다. 전날 저녁 딸내미는 영상 통화를 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며 안부를 주고 받은 터였다. 남편은 새벽부터 전화를 붙들고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며 넋나간 사람처럼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속으로는 내심 불안했지만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있겠지 나름 안심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애들 할머니도 우왕좌왕 난리가 났다. 할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셨다. 10시가 지났을 즈음, 딸내미는 주말이라 휴대폰을 무음으로 놓고 잤다는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불안에 떨었던 마음을 쓸어내렸다.

이 기회에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큰 일을 겪고 나서야 가족의 소중함은 더욱 절실했다. 이번 주말을 이용해 가족여행을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서울로 가는 길에 순천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들 먼저 만나려고 순천으로 향했다. 여수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니 딸도 서울에서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아이들이 여행 코스를 정해 놓은 터라 이곳 맛집에서 식사를 한 후 금오산 향일함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향일함은 해를 품은 암자라는 뜻으로 기도 성지다. 아들이 몇 번 다녀본 곳이라 추천했다는 거다. 절 입구 계단길에서 만난 귀여운 동자승들이 눈에 선하다. 입을 막은 동자승, 귀를 막은 동자승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며 늘 경계하는 삶을 살라는 법구경의 구절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동자승 앞에서 가족사진을 남기고 수많은 층층 계단을 헐떡이며 올라가니 숨이 차오른다. 집채 만한 큰 바위 사이를 지나니 해탈문이 이어지고 커다란 대웅전이 보인다. 군중 사이를 지나 부처님 전에 합장하니 마음이 한결 숙연하다.

관음전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남해바다, 바라만 보아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곳은 돌산 갓김치로 유명하다. 가는 곳마다 김치공장이다. 맛보고 가라는 상인들의 유혹에 3Kg을 샀는데 주인의 후한 인심으로 곱절을 얻었다. 여수를 지나 순천으로 향했다. 아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이라 순천만 국가정원은 반드시 보아야 한다며 추천했다.

꽃과 나무들이 환상인 곳, 누구나 이곳에 오면 감성에 젖게 된다. 드넓은 대지에 눈부실 만큼의 아름다움은 넋이 나갈 정도이다. 각 나라 마다의 정원이 꾸며져 있고 동물원에는 청와대에서 온 풍산개도 볼 수 있었다. 레일을 타고 습지로 가는 길이다. 중간중간 역이 있는데 순천문학관을 둘러보고 동화 작가인 정채봉관에 들어섰다. 평소 정채봉 작가와는 안면이 있어서 정 작가의 기념관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갈대숲이 광활하게 펼쳐진 갈대숲지에 들어섰다. 크기도 어마어마해서 감탄사가 절로 난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숲은 물결 무늬를 연상케 한다. 한줄기 바람이 스칠때마다 때 마다 습지엔 생명의 소리가 넘실거린다. 가뭄에 목이 마른 홍게의 울음소리도 귓가에 메아리친다.

이틀이 지나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가을 들녘은 황혼빛으로 물들고 석양은 하루 일과를 마감하려고 땅거미를 기다린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든 똑같다지만 서울의 밤은 화려하다. 발길 닿는 곳마다엔 삶의 모습이 치열하게 느껴진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저마다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어서 안심이다. 아이들 덕분에 예정에 없던 깜짝 가족여행이었다.

남편도 모처럼의 여행에 미소가 넘친다. 즐거움과 보람이 넘친 일탈,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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