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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80) 김장의 추억
[자청비](80) 김장의 추억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12.22 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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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뉴스라인제주

한 폭의 수채화처럼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가는 산들을 스쳐 지나간다. 낙엽으로 뒹굴기 전 마지막 삶을 불사르는 단풍이 아름답다. 이미 벼 이삭을 떠나보낸 논밭은 그루터기만이 논을 지킨다. 차창 밖 단풍 풍경에 눈을 빼앗기는데 언뜻 비탈진 곳에서 초록 밭을 보았다. 강원도 고랭지 배추밭이었다. 농부들이 배추포기를 캐서 망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 배추들이 김장용으로 각지로 보내질 것이다.

작년에는 서울 동생들까지 내려와서 함께 김장해서 나누었다.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잘 익은 김장김치가 아직도 아삭한 식감을 간직하고 있다. 집에 온 손님이 “김장김치가 정말 맛있네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우쭐한 기분이 드는 것은 김치를 손수 만들었다는 자부심의 발동이다. 공장에서 만든 김치를 사 먹기는 쉬워도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손수 만들어 김장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상고시대에는 순무·가지·죽순 등을 소금, 소금과 술, 소금과 누룩, 장류 등에 절여 염지(鹽漬:지금의 장아찌)와 같이 만들어서 먹었고, 신라·고려 시대로 오면서 동치미·나박김치와 같은 국물로 먹을 수 있는 침채(沈菜)를 개발하여 짠지와 함께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과 같이 고춧가루 양념을 바르는 것은 근대에 와서부터이다. 배추가 개량되고 재배 기술이 발달 되면서부터 통배추 김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저명한 건강과학 학술지「Health」가 뽑은 ‘세계 5대 건강식품’에 한국의 김치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최근 「김치, 과학에 건강을 더하다. 김치 100g의 행복」이라는 책을 통해 김치의 매력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김치의 맛은 여러 재료에서 오는 맛과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맛이 어우러져 다양한 맛이 난다. 매운맛, 짠맛, 신맛, 단맛, 감칠맛은 김치의 기본적인 맛이고 이에 더해 쓴맛, 탄산 맛, 떫은맛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김치에 들어 있는 영양성분은 재료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수분과 칼슘, 당질, 단백질, 비타민, 철 등이다. 식이섬유소 함량도 비교적 많아 포만감과 배변에 도움을 준다.

김치는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고, 젖산균에 의해 발효된 식품으로 여러 건강 기능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건강 기능성이란 인체의 면역계, 내분비계, 신경계, 순환계, 소화기계 등의 비정상적인 변화를 예방 또는 조절하는 특성을 말한다. 김치의 주요 건강 기능성은 항산화 및 항노화, 동맥경화 예방 및 혈전 용해 작용, 항비만 효과, 항돌연변이 및 항암, 정장 작용, 변비 예방, 항균, 면역 및 식욕 증진 등이라고 하니 어찌 김치를 매일 식탁에 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생들과 함께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절인 배추를 씻고 버무리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양념한 김치를 무게를 달며 각 각의 몫으로 나누었다. 친정어머니를 비롯한 일곱 형제와 며느리 몫까지 충분히 나눌 수 있었다. 함께 했기에 가능했지, 혼자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양이다.

대강 뒷정리까지 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어깨야’ 소리가 난다.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한 해 반찬인데 그만한 수고쯤은 기꺼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돈 주고 사 먹으면 몸은 편하다. 그러나 손수 만든 김치에는 가족의 사랑과 정성이 들어갔으니 그 값을 돈으로 대신할 수는 없다. 이론적으로 아는 일도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낯설게 마련이다. 서울 동생들은 김장하는 과정을 배우고 몸으로 느끼며 터득하는 일련의 연수 과정이 되었을 것이다.

김장하는 날 돼지고기 수육을 김치에 싸 먹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둘러앉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겹살과 갓 버무린 김장김치의 만남은 환상이다.

“아, 이 맛이야. 김치가 간이 삼삼하니 정말 맛있게 되었네요.” 막걸리와 맥주잔도 오르내린다. 하하 웃는 소리에 김장김치의 수고로움은 순간 달콤한 추억으로 탄생한다. 배추를 잘라 절이며 꽁꽁 눌러 놓는 손놀림, 깨끗이 씻어 산처럼 쟁여 놓은 절인 배추, 양념 육수의 고소한 맛과 온갖 양념의 만남, 긴 테이블 위에서 수다와 함께 벌겋게 변하는 김치의 탄생, 각각의 몫으로 나누어 담긴 김치통, 이 모든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한편의 가족 영화가 되었다. 수육 보쌈으로 김장을 마무리하고 다음 날은 새별오름을 함께 오르며 자매들끼리의 정을 쌓았다. 김치의 발효처럼 우리 자매들의 끈끈함도 시간과 함께 점점 발효되어 깊은 맛을 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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