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의 삶으로 직조하는 새로운 서사
문혜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리셋>이 발간했다. 이 소설집은 표제작 ‘리셋’을 비롯해 5편의 단편을 모았다.
첫 수록작 ‘유리그물’은 각자의 자리에서 ‘껌’이라는 상징적 매개체로 엮여 있는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다.
그 셋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물처럼 날카로울 수도 있는 그물 같은 삶이다. 하지만 유리그물은 얽혀 있는 구속의 의미보다는 피는 좀 날지라도 누구나 깰 수 있는 것, 절망이 아닌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두 번째 수록작 ‘새가 날지 않는 시간’은 남의 말을 듣는 것으로 삶을 꾸려가는 심리상담가인 주인공이 겪는 특이한 이명으로 시작된다. 그 근원은 이별로 인한 상처인데, 작가는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소설 속에서나마 극복하고 치유하고자 한다. ‘
조금 이른 하오’는 11시 50분이라는 가짜 하오의 상징적 시간을 통해 ‘아픈 기억 지우기’를 시도한다. ‘카노푸스’는 기억의 오류, 기억의 유체이탈이라는 특이한 상황을 설정하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다소 복잡한 구조는 주인공의 해리성 기억장애를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수록작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리셋’에서는 단 하루라도 실수 없이 실패 없이 완벽을 꿈꾸는 인물들에게 너 자신을 놓아주라고, 리셋 버튼만으로 지울 수 있는 삶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는 소설집 전반에 걸쳐 시간과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붙잡고 있다. 그리고 쌓이는 기억,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파편으로 존재하는 삶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고 또 내일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문혜영 소설가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2007년 신춘한라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소설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 2016년 경북일보 문학대전 입상, 2017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품집으로는 2019년에 출간한 첫 단편소설집 『전갈자리 아내』가 있다. 초승문학동인, 소설동인 애인,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그루 刊 140*195 / 220쪽 /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