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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82) 풍매화
[문상금의 시방목지](82) 풍매화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7.30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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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들의 여행, 한 때는 꽃가루였고 한 때는 씨앗이었으며 또 한 때는 뿌리였음을, 꽃가루들의 진하고 비릿한 붉은 꿈’
 

풍매화
 

문상금
 

이제는 가라
바람 속의 너에게
미처 손이 닿기 전
솜털 날개 매달고
긴 다리 절룩이며
이제는 가라
이슬 뽀얀 그물 얽힌 길
눈물 먹은 바람 편에
구름 같은 것
꿈결 같은 것
툭 툭 붉은
저 벌판 끝까지
아주 가라
끝내는 아주 가서
꼭 꼭 숨어들어
환한 꽃 피우라
 

-제1시집 「겨울나무」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몸집을 줄여 아주 가벼워지고 싶다.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에 가루가 되어 둥둥 떠올라 날아가고 싶다. 푸른 하늘 쳐다보며 초록색 나뭇잎 흔들다, 빨강 노랑 무리지은 꽃들을 만나거들랑 살짝 꽃가루를 뿌리고 싶다.

오로지 바람을 의지하여 꽃가루로 이동하여 꽃가루받이를 하는 꽃, 풍매화!

소나무 등 대부분의 겉씨식물 및 벼과, 사초과, 골풀과 식물들이 풍매화를 갖는다 한다. 참나무, 밤나무, 오리나무, 호두나무 등도 바람을 이용하여 수분한다. 버드나무, 은행나무처럼 일부 풍매화는 암꽃과 수꽃이 다른 개체에서 피는 암수딴그루(자웅이주)에 달리며, 참나무, 소나무, 사초과 식물처럼 암꽃과 수꽃이 한 식물의 다른 위치에 달리는 암수한그루(자웅동주)도 풍매화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무가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꽃이 되고 싶은 적이 많았다. 그러나 한순간 접었다. 자유자재로 걷거나 뛰거나 할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없기 때문에, 붙박이 삶으로는, 떠도는 역마살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간다’고 했던가? 바람을 의지하고서라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붉은 생존 본능인가?

붉음은 시작이며 끝이다, 삶과 죽음이다, 출발이며 종착이다.

매일 아침 일출이 붉은 빛으로 열리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며 환한 기쁨으로 물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또 매일 석양 하늘이 붉은 빛으로 저무는 이유는 그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손 모우고 하루를 감사해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바람에 의지하여 긴 길 떠나는 꽃가루들은, 펄럭펄럭, 온통 붉음이다.

긴 다리 절룩이며, 이제는 가라.

이슬 뽀얀 그물 얽힌 길, 눈물 먹은 바람 편에, 구름 같은 것, 꿈결 같은 것, 툭 툭 붉은 저 벌판 끝까지, 아주 가라

끝내는 아주 가서, 당당히, 환한 꽃 피우라.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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