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8:02 (금)
[문상금의 시방목지](81) 돌하르방
[문상금의 시방목지](81) 돌하르방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7.22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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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거지 눌러쓰고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뭉툭한 긴 코를 가진 돌하르방은 수호신이다, 제주 사람들의 강녕과 융성을 지켜주고 전염병을 막아주고 경계의 역할을 한다, 나도 매일 밤마다 제주 전역을 돌며, 돌하르방을 백기 천기 세운다. ’
 

돌하르방
 

문상금
 

듬직한 왕초
수하 거느리고 호령하는
왕방울 눈

인자한
아버지의 미소

긴 하루의 끝에서
빈손으로 돌아올 때마다
길모퉁이에서 늘 지켜봐 주셨던

천 마다 만 마디 말보다 더 따스하게
내 맘을 어루만져 주셨던 침묵
그 위로 환한 보름달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이야기가 있단다
진한 향기로
살아있단다

이 다음에 내 딸들에게
해 주고픈 말

아버지의
슬픈 제사상을 차리며
 

-제2시집 「다들 집으로 간다」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돌하르방은 제주어의 명칭이고 표준어로 해석하면 '돌 할아버지'가 된다. 이 명칭은 근대에 나왔고, 그 전에는 우석목(偶石木)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옹중석(翁仲石)이라는 단어로도 지칭하였다 한다. 이후 어린이들이 돌하르방이라고 부르는 게 널리 퍼지다, 결국 문화재로 지정할 때 ‘돌하르방’이 정식 명칭이 되었고 제주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아버지는 집안의 가장이며 리더이다. 가장은 가정의 질서 유지와 외부와의 대인관계 또한 가족 구성원들이 부족함 없이 생활해 나가는 데 필요한 경제력 확보, 자녀의 교육,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통솔 관리, 부부 관계 유지 등 모든 것을 총망라한 가정의 구심점을 가장인 아버지가 운영하고 이끌어가게 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가족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물론 여기서 이것은 예외이다.

즉 가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할 때에는 순식간에 가정은 엉망이 되고 문제가 발생하게 됨에 따라 아버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문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진취적이며 발전하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인 아버지가 약하지 않고 힘이 있어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함은 물론이고 특히 유능하여야 한다.

제주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아방 약ᄒᆞ민 집안이 흔들린다.’라고.

유능이라 하면 남다른 능력을 말한다. 자식을 낳은 아버지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통틀어 말하는 것일 게다. 여기서 ‘자식을 낳은 아버지’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책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학창시절 매일 책을 읽곤 하였다. 그 중 나관중본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를 흥미진진하게 읽었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기가 참 많은 책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는 14세기 명나라 때 나관중이 중국의 정사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이 삼국지 또는 삼국지연의가 한국으로 전래되어 애독서가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한국 전통공연예술 판소리의 하나인 ‘적벽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판소리 적벽가 중 ‘군사설움’ 한 대목을 듣노라면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도다. 우리 부모처자 천리 전쟁터에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 올까? 내일이나 기별 올까? 애고애고 서러운 지고...’ 애간장이 끊어지는 그 비애미(悲哀美)에 온 몸에 소름이 돋곤 하였다.

그런데 이 판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이 대목이 늘 궁금하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 중국 소설의 영향인지, ‘아버지 날 낳으시니’란 인용구들이 일상으로 많이 애용되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과학서적을 읽다보니, 이 의문이 해소되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는 수정할 때 삽입하는 정자의 모습이요, ‘어머니 날 기르시고’는 수정 후 잉태 및 출산까지를 담당하는 이브 미토콘드리아 역할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고 비로소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크게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아마 대여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동네 결혼식에서 돼지고기 반을 몇 점 먹었다. 그 때만 해도 흰 쌀밥에 돼지고기가 참 귀할 때라 맛있게 먹었는데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놀란 울음소리에 친구들과 술 한 잔 하시다 얼른 달려와 공동 수돗가로 데려가 씻기고 바지를 깨끗이 빠시던 아버지, 그 크고 넓적하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괜히 신이 났다. 술 냄새 그리고 등에 배인 땀 냄새 그것은 함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셨던 아버지의 속울음 같은 것으로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도 체취로 선명히 남아있다.

새벽부터 돌담을 쌓던 아버지, 집을 짓던 아버지, 삘기가 무성하던 풀밭을 개간하여 돌무더기들을 골라내고 감귤농장을 만드시던 아버지 주변을 늘 맴돌곤 했다. 돌담 사이에 끼우는 작은 돌멩이를 찾아내 갖다 드리거나 혹은 땀 훔치라고 수건을 갖다 드릴라치면 흙 묻은 두터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다. ‘오, 우리 말잿년(세째딸)’하셨다. 밤낮 호기심 많은 말잿년이 되어 사방팔방 자연 속에서 뛰놀았고 나무와 꽃과 새들과 하늘과 바다와 별들은 쏟아져 내려 단짝친구가 되었고 같이 성장한 그것들을 훗날 시적(詩的)소재로 많이 노래해 주었다.

평생 애주가였던 친정아버지는 1989년도에 술 드시고 귀가하시다 길에서 미끄러지셨고 끝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별 하나 떴다 스스로 지는 한라산 중산간(中山間) 자락에 가난했던 한 생애가 저물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웃사이더이며 중심(中心)이었다. 메케한 술 냄새와 따뜻한 등을 가진, 죽음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던 시점에 그리운 기억들만 남기고 경계의 문(門)을 열고 훌쩍 가버린 아픈 유리 조각이었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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