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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돈의 기묘한 제주의 바위이야기](10) 시름 잊게 하는 바위의 향연
[강상돈의 기묘한 제주의 바위이야기](10) 시름 잊게 하는 바위의 향연
  • 강상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5.2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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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차귀도 ‘독수리바위’, ‘범바위’, ‘쌍둥이바위’, ‘장군석바위’

제주시 서쪽 끝 한경면 고산리에 위치한 차귀도를 간다. 차귀도를 가기 위해서는 자구내 포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자구내 포구에 도착하니 안개로 차귀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안개가 자욱한데도 한치를 말리는 손길이 분주하다. 이러한 모습은 이제 자구내 포구를 대표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됐다. 언제와 봐도 참으로 정겹게 다가온다.

기암괴석 탐방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날씨가 중요하다. 특히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안개가 낀 날의 섬 풍경과 기암괴석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차귀도는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예부터 대나무가 많아 대섬 또는 죽도로 불러왔고, 천연기념물 제422호로 지정된 곳으로 제주도내 섬 중에서 가장 넓은 무인도이다.

일몰이 아름다워 사진 애호가들에게 인기 만점인 섬, 신화와 전설이 깃든 섬이다. 차귀도의 전체 모양은 동서로 길쭉한 모양을 이루고 있고 동쪽과 서쪽에 봉우리가 양립한 것이 특색이다. 자구내 포구에서 약 1km 떨어져 있고, 동서 약 850m, 남북 약 300m이고 면적은 0.16㎢이다. 사면이 석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 주위가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을 이루어 있고 3개의 독립된 분화구가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시대에는 왜구들이 빈번한 침입으로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격전지로도 유명하다.

↑ 자구내 포구에 있는 도대불
▲ ↑ 자구내 포구에 있는 도대불 ⓒ뉴스라인제주

# 자구내 포구 ‘도대불’

차귀도를 가기 위해 포구에 들어서면 과거 어두운 바닷길을 밝혔던 ‘도대불’을 볼 수 있다. 고산향토지를 뒤져보니 도대불이 ‘돌등대’라고 표기돼 있다. 1941년 중일전쟁이 끝나갈 무렵 마을유지의 의뢰로 일본인 석공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명도 보인다. 이 도대불은 고산과 목포를 운항하는 화물선이 자구내 포구에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불을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화물선이 자구내 포구에 들어올 때 등에 기름을 이용하여 불을 켜 도대불에 올려놨으며, 배가 들어온 뒤에는 불을 껐다고 한다. 도대불의 규모는 높이 285㎝, 하단 너비 190㎝, 상단 너비 87㎝로 현무암으로 축조됐다. 이 도대불은 등명구를 넣는 등롱과 등대의 몸체인 등탑이 옛 형태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등대로 가치가 크다. 형태적으로도 가로와 세로의 비례감이 뛰어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 누운섬
▲ ↑ 누운섬 ⓒ뉴스라인제주

# 누운섬

도대불 옆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누운섬을 거쳐 차귀도를 간다. 누운섬은 와도라고도 한다. 자구내 포구에서 약 300m 지점에 있는 이 섬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누운섬을 바라봤을 때 꼭 사람이 바다위에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

전쟁터로 떠난 오백 장군이 돌아올 때도 됐는데 돌아오지를 않으니 만삭인 그의 아내가 자구내 포구 앞에서 몇날며칠을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 누웠다 한다. 그 누운 모습을 닮았다 하여 누운섬이라 하는데 배를 타고 가보면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신기하기도 하다. 누운섬 옆에는 모양이 성곽 같기도 하고 병풍을 둘러친 것 같기도 한 바위가 있어 눈을 멈추게 한다.

10분정도 흘렸을까. 눈앞에 차귀도 선착장이 나타났다. 선착장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집터를 볼 수 있다. 이로보아 차귀도가 유인도였음을 알 수 있다. 고산향토지에 보면 고산리 설촌 이후 1890년경 水源里(ᄌᆞ물캐)에서 姜致龍이란 사람이 고산리에서 이주하여 살았고, 그 후 1911년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땅을 일구어 조, 보리, 콩, 고구마를 심었고, 의외로 농사도 잘 됐다고 한다. 그러다 1974년 추자도에 무장공비가 침투하면서 10가구 미만의 섬들에 대해 소개령이 내리는 정책이 결정되었고 그 여파로 차귀도 주민들의 이주하여 무인도가 되어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그 후 30여년 동안 일반인이 출입을 허용되지 않다가 지난 2011년 30여년 만에 개방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지실이섬. 독수리바위, 매바위라고도 부른다.
▲ ↑ 지실이섬. 독수리바위, 매바위라고도 부른다. ⓒ뉴스라인제주

# 독수리바위(매바위, 지실이섬)

이 집터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섬은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고, 중심부는 평지와 얕은 언덕으로

이루어졌다. 집터에서 왼쪽으로 탐방로를 따라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해안에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게 만든다.

차귀도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저 멀리 자구내 포구가 보이고, 눈앞에는 독수리바위(매바위, 지실이섬), 범바위(병풍바위), 장군바위, 쌍둥이바위(형제바위), 간출암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독수리바위는 지실이섬이라고도 한다. 차귀도와 거의 맞닿아 있는 섬이다.

자구내 포구에서 약 400m 지점에 누운섬과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 독수리바위에 대한 전설하나를 보자.

고려 16대 예종 때 중국 송나라 사람 호종단이 중국에 맞서는 큰 인물이 제주도에서 태어날 것이란 풍수지리설로 인해 제주도에 들어와 지맥과 수맥을 모조리 끊고 고산앞 바다를 통해 귀국하려 했으나 한라산 수호신이 노하여 폭풍을 일으키며 호종단의 배를 침몰시켜 귀향을 막았다고 한다.

한라산의 수호신은 차귀도 서쪽 끝에 매바위로 변하여 위풍당당하게 앉아있다. 지금도 이 전설과 같이 제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매와 이빨이 독수리와 꼭 닮았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은 장면으로 오래도록 각인된다.

엄청난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맞서는 모습이다.

↑ 범바위
▲ ↑ 범바위 ⓒ뉴스라인제주

이 바위는 매바위라고도 부른다.

유람선을 타고 이 바위를 둘러보면 양쪽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려는 독수리나 매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이 바위를 왼쪽에서 봤을 때 사람 얼굴 같기도 하다. 다른 쪽에서 봤을 때 고래등바위 같기도 하다. 이 바위 주위에는 갯바위낚시꾼들과 배낚시 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지실이섬 바로 옆에는 상여섬(喪輿섬),(화단섬)이 있다. 네모꼴 모양의 섬으로 면적은 지실이섬의 절반 정도 된다.

↗ 범바위를 반대쪽에서 바라봤을 때 병풍을 둘러친 것과 같다하여 병풍바위라고도 부른다.
▲ ↗ 범바위를 반대쪽에서 바라봤을 때 병풍을 둘러친 것과 같다하여 병풍바위라고도 부른다. ⓒ뉴스라인제주

# 범바위(병풍바위)

독수리바위 뒤쪽으로는 범바위가 있다. 차귀도 선착장에서 이 바위를 봤을 때 그 형태가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듯 하늘을 쳐다보는 듯한 형태다. 어찌 보면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이 바위를 바다에서 봤을 때 병풍을 둘러 친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 병풍바위라고도 부른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 같은 바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신기하기만 하다. 범바위 주변에는 간출암들이 많이 있어 언제나 배낚시 하는 사람들과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 쌍둥이바위(형제섬)

차귀도에 있는 범바위(병풍바위)와 장군석바위, 쌍둥이바위 등 세 개의 바위 중에서 가장 큰 바위가 쌍둥이바위이다. 차귀도에 있는 바위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바위이다. 이 바위가 있어 차귀도가 유명한 건지도 모른다. 쌍둥이바위는 차귀도와 생이섬(새섬) 사이 뾰쪽하게 형제와 같이 두 봉우리가 나란히 위치해 있어 형제와 같다고 해서 형제섬이라고도 부른다.

또 형제섬은 섬이 서쪽으로 풍화작용으로 침식되어 있기 때문에 썩은 섬이라고도 부르고, 쌍봉여라고도 부른다. 쌍둥이 바위를 돌아가면서 보면 여러 가지 형태의 기암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눈을 지긋하게 감은 큰바위얼굴이 있는가 하면 코가 오뚝한 다른 모습의 큰바위얼굴 등 기암이 눈에 띈다.

↑ 쌍둥이 바위(형제섬).
▲ ↑ 쌍둥이 바위(형제섬). ⓒ뉴스라인제주

# 영실 오백장군의 막내 ‘장군석바위’

장군석은 차귀십경중 제7경 장군대암(將軍大岩)을 말한다. 범바위 앞쪽에는 장군석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장군석바위의 웅장한 모습에 탐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장군석바위는 송이를 분출한 화산 활동 때 땅속에서 분화구로 향하는 화산 분출물의 통로에 있던 마그마가 분출되지 않고 그대로 굳어져 암석이 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장군석바위는 한라산 영실의 오백장군의 막내라 한다. 오백장군이 어머니와 함께 살 때, 어머니가 큰솥에서 죽을 쑤다 그만 가마솥에 빠져 죽었다 한다. 형들은 그것을 모르고 죽을 맛있게 먹고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다.

그러나 막내는 그걸 먹지 않고 차귀도 앞 바다에 와서 장군석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한라산의 오백장군석을 헤아려 보면 499개가 남아 있고, 나머지 하나는 차귀도 앞 바다에 떨어져 있다는 장군석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비록 전설이지만 어머니의 넓은 마음을 생각하는 막내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장군석 꼭대기에 보이는 풀은 항상 푸르게 자라고 그 밑에 빨갛게 된 것은 옛날에 어떤 사람이 육소장에 선산을 정하려고 정시(풍수사)를 불렀다. 정시는 자리가 좋기는 하나 차귀섬 앞에 오백장군의 규봉(窺峰) 즉 새각(눈으로 멀리 볼 때 물체가 보일 듯 말 듯 비추는 것)의 비치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하였다. 화가 난 상주는 즉시 차귀섬으로 건너가 도끼로 오백장군 위를 찍어 내렸다. 찍힌 상처에서 피가 흘렀으며 지금도 오백장군 위에 오목해서 빨갛게 된 것은 그 때 찍힌 상처와 핏자국이라고 전한다.

장군석바위는 어쩌면 공룡 한 마리가 우뚝 서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또 어찌 보면 외돌개처럼 보인다. 촛대 바위처럼도 보인다. 이처럼 이 바위는 바다에서 볼 때와 차귀도에서 볼 때에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바위이다. 장군석 바위 왼쪽 언덕에는 붉은 색의 송이가 폐부를 드러내고 있다. 송이는 화산이 폭발할 때 높은 열에 의해 탄 화산석이다. ‘부끌레기’라고 부르는 제주의 독특한 광물질로 외부로 반출할 수는 없다. 이 물질은 화장품 등의 원료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 장군석 바위
▲ ↑ 장군석 바위 ⓒ뉴스라인제주

# 인자한 큰바위얼굴

멋진 풍경에 넋을 잃고 한동안 입을 닿지 못하다가 볼레기 언덕 중간쯤에 거북 같은 바위가 몸을 움츠리고 있는 듯한 바위를 볼 수 있고, 여기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인자한 큰바위얼굴이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바위가 있다.

남사변 쪽으로는 곰바위가 바다를 향해 들어가는 듯한 바위도 보인다. 선착장 왼쪽으로는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저팔개 같은 바위가 바다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한 바위가 있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장군석바위, 범바위, 독수리바위 쌍둥이바위를 보노라면 모든 시름을 한꺼번에 날려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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