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柳), 유별히 잎이 버들잎 같고 꽃은 복숭아꽃 같이 붉다. 도(桃), 도화는 도화살 같다. 화(花), 화사한 분홍의 꽃신 같은 꽃’
유도화(柳桃花)
문상금
새섬 가는 길
유도화(柳桃花) 한 그루
짙푸른 잎에 바다가 철썩이고
붉은 꽃에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온 몸을
독(毒)으로 휘감은 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당당한 꽃이여
너에게
오래도록
긴 편지를 쓴다
그대 독기가
내게 번질 때까지
그리움이 다 져서
마를 때까지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석양이나 일몰은, 언제나 고즈넉하다. 바다를 향하여 한참을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아아, 붉은 핏빛 같은 하늘의 꽃구름자리는 늘 물기를 머금고 있다.
가끔은 흰 소금기 휘몰아치는 서귀포 바다 새섬을 한 바퀴 빙 걸어보곤 한다.
그 비릿한 바다의 향기에 취하여 휘적휘적 걸어가다 무심코 뒤돌아보면, 아아, 붉은 석양의 독기를 외투처럼 온 몸에 휘두른 채로 유도화 짙푸른 잎에 바다가 철썩이고 붉은 꽃에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꽃이 하도 고와 따서 꽃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파도처럼 출렁출렁 달았다. 누군가 보고 난리가 나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로 꽃목걸이는 산산조각으로 찢어지고 흩어지고 동네 어귀 수돗가로 데려가 손이며 발이며 얼굴이며 씻겨주는 것이었다.
처음 알았다, 그 분홍 꽃신 같은 꽃을 감싼 짙푸른 잎에 눈멀고 귀 어두울 수도 있는 독(毒)이 한가득 이라는 것을.
아아, 온 몸을 독(毒)으로 휘감은 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대 당당한 꽃이여.
가깝고도 먼 슬픔의 꽃이여, 화사한 여름의 절정에서 피어나는 유도화를 볼 때마다, 늘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진다.
유도화(柳桃花)와 나는 한 몸이다, 너는 아니? 내게도 온통 독기가 서려있다는 것을, 그립고도 그리운 그리움이 독기가 되어, 바닷가 북어처럼 밤낮 젖었다가 말랐다가 하는 것을.
휙휙 도화살(桃花煞) 날리는 꽃잎이 바람에 건 듯 날려 산산이 부서지고 다 져서, 새까맣게 마를 때까지, 또다시 조그만 꽃봉오리 꼬물꼬물 올라오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올 때까지.
유도화(柳桃花), 너에게 오래도록 긴 편지를 쓴다.[글 문상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