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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72) 늦봄
[문상금의 시방목지](72) 늦봄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5.19 0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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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은 봄이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빨간 산딸기처럼 익을 대로 익어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톡 하고 따면 손바닥 가득 산딸기물이 내 피보다 더 선홍빛이다’
 

늦봄
 

문상금
 


무심한 날

꽃이
그냥 질리는
없을텐데

얼마나 더 봄을 타야
네가 잊혀 질까

차라리
그냥 품고 있는 것이
더 나을지 몰라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종종 봄 들판에 서서, 작고 연약한 씨앗들이 단단한 땅을 뚫고 뿌리를 내리고 또 지상으로 싹을 틔우며 나오는 것을 바라본다. 실제로 확대해 본다면 씨앗들로서는 엄청난 고난이고 시련의 여정을 지켜볼 수 있으리라.

삶의 빛깔을 고르라고 하면 무채색이다. 울긋불긋 더 고운 색채들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땅을 고르라고 하면 황무지이다. 가시덤불을 치고 돌을 골라내고 흙을 다독여 기름진 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꼬물꼬물 붉은 꽃봉오리들, 눈부시게 살아있다.

공한지(空閑地)에 탱자나무 한 무리 모여서 살아간다, 별빛 아래 외로워 무덤들이 총총히 모여 있듯이, 적막한 탱자나무에도 봄볕이 환해, 흰 꽃들이 다닥다닥 피었다.

사방팔방 날렵한 가시들이 하늘을 찌른다. 아야, 아야, 비명 지르며 하늘은 더 푸르러 간다.

내가 너에게 뱉은 독설들이, 네가 나에게 쏟아낸 독설들이 가시 끝 매운 맛으로 발광하는 이 봄날.

스스로 유배를 택한 탱자나무들은 가시 울타리를 갑옷처럼 두르고 세상 향해 견고한 창을 날렸다.

아마도 늦봄은 피어난 꽃들이 수도 없이 너무 많아서, 아마도 그 피어난 꽃들이 하나둘 떨어져 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꽃처럼 바라볼 수 있는 네가 옆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심한 날, 참 무심한 날 ...

나는 시를 쓰다 꽃을 바라보다 또 하루가 저물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늦봄엔, 꽃 같은 네가 곁에 있어 주었음 참 좋겠다. 꽃처럼 활짝 핀 얼굴로 저만치 거리를 두고라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잊는다는 것은 더 안으로 품는다는 것이다. 새까맣도록 봄을 타다보면 꽃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질 수도 있는 것처럼.

그래, 정말, 너를, 잊을 지도, 몰라.

때로는 그 사실이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소름 돋듯, 징그러운 건지도 모른다.

‘늦봄’이란 시를 발표하였다. 선배시인 두 분이 시화를 정성스레 그려서 선물로 보내주셨다,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눈물 나도록 위안이 되었다고, 너무 고마워 제대로 표현도 못했다고, 늦게나마 감사함을 전한다.[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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