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8 15:41 (일)
[문상금의 시방목지](64) 눈 먼 사랑 하나
[문상금의 시방목지](64) 눈 먼 사랑 하나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3.21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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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꽁지머리는 사랑이다, 꿈이다, 도전이다, 여태 자르지 못한다, 사랑의, 꿈의, 도전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끝이라는 것은 있는 것일까, 시작도 있는 것일까, 어쩌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눈 먼 사랑 하나


문 상 금
 

가끔 부르르 온 몸을 털며
세상(世上)의 때를
날려버린다

멀어져 가면서
스스로 먼지가 되는 것들

털어내어도
먼지가 되어
날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투명한
실오라기 같은 것

홀씨의
솜털 같은 것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종일 울었다

눈 먼
사랑 하나

너를
꼭 닮아서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오십 줄을 살아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리고 있다, 여기서 혼자 있는 시간이란 홀로 사색하고 산책하고 시(詩)작업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비대면의 시간 속에서 고요해지고 적막해지고 평화로워지며 영혼적인 작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메마른 갈색의 들풀 사이로 파릇파릇 움들이 터오고 있다, 이름 모를 들풀들이 희고 파란 꽃들을 피워내기 시작하고 냉이 꽃은 어느새 지고 있었다. 꽃이 진다는 것은 꽃 진 자리마다 열매들이 알알이 영글어간다는 것이다, 꼬물꼬물, 태동의 움직임, 그 여정의 시작은 참으로 경이로워서 오래도록 바라다보다 또 길모퉁이 돌아 구부러지게 걸어가 보았다.

일상의 근심 속에서도 쑥과 들꽃들은 돋아나듯이, 매일을 신선한 설렘으로 노래하노라면 안으로 조용히 빛이 터지는 소리, 봄을 살리기 위하여 내가 열리는 소리.

톡 톡 톡

시인인 내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시창작의 소재로 선택하는 대상들은, 크고 넓고 강렬한 것 보다는 왜소하고 소외받는 아주 작은 것, 미미한 것, 보잘 것 없는 것, 때로 먼지 같은 것들에 눈이 가기도 한다.

오히려 아주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것들에게서 진가를 찾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스승 아닌 것이 어디 있으며 가치 없는 것이 어느 것 하나 있겠는가.

마당에 진돗개를 한 마리 키운 적이 있었다, 검은 갈색의 눈망울을 가진 흰 진돗개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몸집을 늘려 제법 빈 집을 잘 지키는 것이었다, 초여름 땡볕에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일어나 앞다리 뒷다리를 늘리며 쩍 하품을 하더니, 온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었다, 몇 번 수차례 반복할 때마다 떨어져 나오던 그 덕지덕지, 뭉텅뭉텅, 털들이여!

개털을 그리 많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온 몸을 감싸주고 어루만져주다 하루아침에 버림받은 사랑이여. 툭 떨어진 개털 뭉치를 만져보니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처럼 채 식지도 않은 사랑은 단칼에 버려지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의 때처럼, 먼지처럼, 실오라기 같은 사랑처럼, 민들레 홀씨의 솜털처럼, 그것들은 바람이 살짝 불어오자 하늘로 날아오르며, 와르르 눈물을 쏟아내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가끔 털갈이하는 그 진돗개처럼 들판에 서서 몸을 떨어보았다, 부르르, 양팔과 다리를 벌리고 휘청거리도록 온몸을 떨어보았다.

털어내고 털어내어도 먼지가 되어 날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희고 맑은 눈망울을 동그랗게 뜨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그것들을 악착같이 하나하나 떼어내며 종일 울었다.

눈 먼 사랑 하나, 너를 꼭 닮아서 ...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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