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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신의 벌랑포구](46) 바다의 물집
[김항신의 벌랑포구](46) 바다의 물집
  • 김항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1.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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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칠 시인

바다의 물집



정 군 칠



환한 빛을 따라 나섰네
지금은 달이 문질러 놓은 바다가 부풀어 오르는 시간
여에 부딪치는 포말들을
바다의 물집이라 생각했네
부푸는 바다처럼 내 안의 물집도 부풀고
누군가 오래 서성이는 해변의 밤
온통 흰 꽃 핀 화엄의 바다 한켠
애기 업은 돌을 보았네
그 형상 더욱 또렷하였네

제 몸을 밀어내고 다른 몸을 품고서야 바다는
해변에 닿는다지
버릴 것 다 버린 바다의 화엄이
저 돌로 굳은 것일까
걸러내야 할 것들이 내게도 참 많았네
목이 쉬도록 섬을 돌았네
단지 섬을 돌았을 뿐인데 목이 쉬었네
파도의 청징淸澄한 칭얼거림이 자꾸만 들려왔네
깍지 낀 손 풀어 그 울음 잠재우고 싶었으나
달빛은 바다 위에서만 출렁거리고
나는 서늘한 어둠의 한켠에 오래
오래 머물지 못했네
 

《물집 》애지시선 2009
 

정군칠 시인
▲ 정군칠 시인 ⓒ뉴스라인제주

<정군칠 시인>

1952년 서귀포시 중문출생
1998년《현대시》등단
2003년 시집 《수목한계선》출간
2009년 시집 《물집》출간
2007~12 제주작회의 이사
2011년 제1회 서귀포문학상 수상
2012년 7월8일 영면에 들다.
2013년 정군칠 유고시선집 《빈 방》 출간

김항신 시인
▲ 김항신 시인 ⓒ뉴스라인제주

물결 잔잔한 바다 수평선 위로
한라산 턱ㅡ하게 올려진 '물집' 한 권
까만 내지 위에 하얀색 필로 그려진 강의 교재가 가슴 시리게 아프다.

어느 날부터인가
부푸는 바다처럼 내 안의 물집도 부풀고 있다는 것
목이 쉬도록 섬을 돌며
마음 정리를 한다는 것
청징 淸憕한 칭얼거림을 잠재우고 싶었으나 못내 머물지 못했던 서늘한 그 자리,
시인은 벌써 아는 것처럼 환한 달빛 따라 출렁이며 부풀어 오르는 화엄의 길을 걸었을까.
그 길을 걸으며 애기 업은 어머니 뒷모습을 봤을까.
그 칭얼거림이 안쓰러워 어르고 달래고자 했으나 달빛은 바다 위에서만 출렁거려 어쩌질 못했을까.

시인의 시, 들은 시리고 아프다.
'내 안의 물집, 여에 부딪치는 포말, 애기 업은 돌, 바다의 화엄,
청징淸澄한 칭얼거림, 이 섬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목이 쉬어지는 아픔이
유고 시집 《 빈 방 》 에서도 시인의 숙명인 것처럼 다가온 시리고 아픈 모습들이 엿볼 수 있었다
. '소리의 집', ' 빈 의자 흔들리고', '광명사의 새벽', 산방山房철물', '꽃의 장례', '빈 방' , 에서와 같이
'소리의 집'에 들어 귀뚜라미 귀 울음소리에
베개닛 흠뻑 적시도록 속 울음도 삼켜보며,
새 한 마리 날개 젖은 채 날아 가는데 검은 바위 자갈 자갈 울음 울어 어쩔 줄 몰라 흔들리는 빈 의자, '빈 방'에 홀로 앉아 상념에 들어 가족 안위를 염려하며 시인은 앞서 나풀나풀 나비가 되어 꽃상여 따라 광명사의 길에 날아든다.

아! 서글픈 일이다.

시린 마음 한켠 머물 수 없어
어머니가 더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새내기 습작생이던 때
만감이 교차하던 시간들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최선을 다해 서투른 습작시 살펴주던 시인 정군칠 선생, 어느 날이면 숲 해설사로
어느 날이면 '시요일'에서, 방송대 강의실 오가며 밤낮으로
후배 양성을 위해 애쓰시던 시인,
선배, 후배, 습작생 문인들의 동경 憧憬 의 대상이었던 시인은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아직도 기둥처럼 버팀목 되어주는 눈이 커서 슬픈 사람. 영면하시길…….

[글 김항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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