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14:17 (금)
[강상돈의 기묘한 제주의 바위이야기](2) ‘여인의 恨’ 서린 바위
[강상돈의 기묘한 제주의 바위이야기](2) ‘여인의 恨’ 서린 바위
  • 강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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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1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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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호근동 ‘학수바위’
학수바위오름. 정상에 학수바위가 보인다.
▲ 학수바위오름. 정상에 학수바위가 보인다. ⓒ뉴스라인제주

# 각시바위 오름

어느새 우리 곁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제법 가을 분위기가 난다. 기암괴석의 현장을 찾아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지만 낯선 곳을 혼자서 가는 것은 그만큼 위험요소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서귀포시 호근동에 위치한 학수바위(각시바위)를 찾아가는 길이 그렇다. 좀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그럼에도 결국 기암괴석의 현장을 계속해서 찾아가는 것은 기암괴석에 대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강창학 경기장을 경유해 호근동에 도착하니 눈앞에 삼각형 모양의 쌍뿔과 같이 생긴 오름이 보였다. 오름 정상에 있는 각시바위의 이름을 따서 각시바위 오름이라고도 부른다. 각시바위오름은 서귀포시 호근동에 위치하는 해발 395m, 비고는 140m이고 굼부리는 원추형의 기생화산이다.

한자로는 각수악이라 하기도 하고, 중앙에 있는 바위를 중심으로 학이 양쪽에 날개를 펼친 듯이 뻗어 있어 학수암(鶴首岩) 이라고 한다. 또 학이 알을 품은 형국이어서 삼매봉의 뱀의 알을 먹으려고 오면 날개를 펴고 부리로 쪼려는 모양을 하고 있어 ‘학수바위’라고도 부른다. ‘학수바위’라는 이름이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간다.

옛날 양가 규수가 아이를 얻기 위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그 소원이 좌절돼 죽자 그 원통한 넋이 바위로 변했다 해서 각시바위라 불리기도 한다. 또 정상에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마치 뿔 모양으로 생긴 것이 빼어나다 하여 각수암(角秀岩)이라고 불렀다. 이렇듯 각시바위는 구전되어 전해지는 까닭에 그 해석도 다양하다. 근래에는 각시바위보다는 학수바위로 더 많이 알려지는 것 같다.

오름 자체가 조면암의 용암 원정구로 된 바위산이라서 그런지 산세가 험한 편이다. 북사면으로 향하면 완만한 구릉과 숲이 우거져 있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다. 이렇듯 오름 북사면은 완만한 구릉으로 이어진데 반해, 남사면은 세 가닥 등성마루가 뻗어 내리고, 이는 중앙에 바위로 이루어진 주봉을 중심으로 좌우 양쪽에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듯이 뻗어있어 학수바위라고 한다. 학수바위가 위치한 오름은 뾰쪽하게 솟아 있지만, 입구에서 보면 높게 보이지만 그리 높지는 않다.

학수바위를 찾아간다. 호근동 용천사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북쪽방향으로 ‘학수바위 천제사’가 표시된 하얀색 안내판이 보이고 이어 영산사, 카사블랑카 펜션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 한 1km즘 북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카사블랑카 펜션이 보이고 시멘트 길을 조금 더 가면 학수바위 천제사와 화엄사, 영산사가 보인다.

학수바위오름 정상에 있는 학수바위.
▲ 학수바위오름 정상에 있는 학수바위. ⓒ뉴스라인제주

# 각시바위 오름을 오르다

영산사 앞에 도착해 왼쪽 철문과 영산사 입구 사이로 난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계곡을 올라가다 옆 울타리를 넘어 길 같지도 않은 길을 올라간다. 입구에는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수목과 칡넝쿨이 나무에 걸려 있고, 울창한 원시림은 곶자왈을 연상시킨다.

으스스한 느낌이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어딘지 모르게 신령스러움을 느낀다.

사람이 지나 다녔음직한 길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포제단이 나온다. 호근동 마을회와 호근동 각 자생단체 명의로 된 공고에는 ‘이곳 포제단은 호근동마을포제를 행사하는 곳으로서 마을에서는 신성시하는 곳으로 외부인의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없으며 훼손시키거나 더럽히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매우 신성시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포제단 옆에는 빨간색 화살표로 학수바위를 가는 곳을 알려주고 있다. 포제단 옆에는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눈길을 돌려 가던 걸음을 재촉한다. 여기서 목재계단을 따라 10분여 올라가면 각시바위오름 정상이다. 정상은 조금은 협소하다.

학수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 학수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뉴스라인제주

# 학수바위

각시바위 정상에 오르니 눈앞에는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졌다. 사방이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있듯 커다란 암벽 아래로 서귀포를 비롯한 경관이 멋들이게 펼쳐진 모습에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고근산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보이고, 저 멀리 제주월드컵 경기장이 보인다. 눈길을 돌리니 지귀섬, 섶섬, 새섬, 범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듯 몸을 돌리면 완만하고 부드러운 한라산 자락과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시에서 보는 한라산이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예부터 선비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정상에 있는 바위가 각시바위이다. 정상에 오르면 동·서로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두 개의 봉우리 모두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의 봉우리가 정상이다. 돌이 많은 제주도지만, 오름에서 만큼은 바위를 보기 힘들다. 신기할 정도다.

학수바위 바로 밑에서 바라 본 돌구멍.
▲ 학수바위 바로 밑에서 바라 본 돌구멍. ⓒ뉴스라인제주

각시바위는 정상이 이루어진 몇 안되는 오름이다. 바위에는 흔적 남기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다녀간 것을 기념이라도 하듯 누군가 새겨놓은 글귀가 보인다. 이러한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밑을 바라보니 낭떠러지이다. 그 옛날 전설 속의 여인이 떨어졌던 전

설을 실감한다. 정상부근에는 구좌읍 고망난 돌처럼 바위가 어우러져 구멍이 난 돌을 볼 수 있다.

동쪽 봉우리 바위 아래는 쪽으로 누군가 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밧줄을 매달았다. 내려가 보니 자연적으로 생긴 굴인지 인공적으로 파놓은 굴인지 모르지만 조그마한

굴에 산신단이 있다. 치성을 드리던 흔적이다. 지금도 이곳 동굴 아래에서 아이 낳기를 소망하거나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기도하려 드나든다고 한다.

산신단.
▲ 산신단. ⓒ뉴스라인제주

# 학수바위 전설

학수바위에 대한 전설을 보자. 옛날 이 부근 마을에 3대 독자 양가집의 젊은 귀한 며느리였으나 한 두 해가 지나도록 몸에 태기가 없어 집안에 수심이 가득했다. 여러 해가 되어도 아기를 얻지 못하자 한라산 깊숙한 암자에 영험한 중이 있다는 어른들이 권유에 따라 그를 찾아가 백일기도를 드렸다.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하여 밤낮으로 불공 기도를 드리던 어느 날 밤 절의 중에게 몸을 빼앗기게 되었다. 백일이 다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그날 밤에 여자는 시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절 뒤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으며 자기의 잘못과 운명을 슬퍼하며 밤새 울다가 자진하여 죽어버렸다. 여자가 죽자 얼마 없어서 그 자리에 이상한 바위가 섰는데 그때부터 이를 ‘열녀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학수바위는 자식을 낳지 못했던 어느 여인네의 슬픈 설화가 들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또 다른 전설은 사냥길에 나선 원님들은 이곳 각시바위 정상에 있는 넓은 반석 위에서 휴식과 음식을 취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원님의 사냥길에는 관속과 함께 관기(官妓)들도 따라가곤 했다. 고을의 원님이 사냥을 나갔다가 이 오름의 정상에서 관속, 관기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었다.

어느 원님의 사냥 행차에서 그런 주연이 무르익어 갈 무렵 총애를 받던 기녀가 신들린 듯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고 늘 품어오던 질투심에 불타는 한 기생이 질투심에 원님의 총애를 받는 관기를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져 죽게 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실족인 줄 알았고, 가엾이 여긴 원님은 바위 아래에 장사를 지내 명복을 빌어주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각시암’이라 했다고 한다.

필자가 이름붙인 '쌍둥이 바위'
▲ 필자가 이름붙인 '쌍둥이 바위' ⓒ뉴스라인제주

# 쌍둥이 바위

이름 없는 그 기생의 무덤이 지금도 있다고 전해진다. 각시바위 주변에는 커다란 암석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정상 주변의 바위들은 제주에 흔히 분포하는 현무암이 아니다. 녹회색을 띄고 있는 단단한 성질의 조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지역의 지질학적인 특성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정상에서 한 30m쯤 아래에는 남평문씨 집안의 쌍묘가 있는데, 그 옆에 거북이 등 모양의 바위 두 개가 서로 포옹하듯 서있다. 커다란 바위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는 형국이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지 입맞춤을 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바위 형태가 학이 알처럼 생기고, 둥글둥글한 것이 필자는 이것이 학수바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각시바위를 다른 말로 학수바위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이 바위는 학수바위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 바위에 대한 이름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바위를 ‘쌍둥이 바위’라 명명하기로 했다. 학수바위를 보노라면 한 집안이 며느리로서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 정신을 각박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가족애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다. [글 강상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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