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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21) 내 마음의 비타민
[자청비](21) 내 마음의 비타민
  • 이을순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7.2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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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순 소설가
이을순 소설가
▲ 이을순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방금 잘려나간 잔디의 풀풀한 풀냄새와 향긋한 치자꽃 향기가 뒤섞여 물씬 코끝으로 와 닿는다. 산뜻하고도 싱그러운 향기가 그윽하다. 이렇듯 자연의 향기와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 된 삶이리라. 그래서 언제까지나 이런 삶을 누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게도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죽게 된다.

조금 전, 지인께서 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병원으로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분은 참으로 부지런하시고 자기 관리가 아주 철저하셨다. 매사 긍정적이고, 색소폰 연주 또한 프로급이어서 음악회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꾸준한 요가로 건강관리를 해왔고, 손수 텃밭까지 가꾸시는 모습이 과히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살아가는 인생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하자 내 마음도 안절부절못했다. 물론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될 것이고, 회복도 빠를 것이라고, 그분과 통과를 하면서 나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전하면서 빠른 쾌유를 빌었다. 그 통화를 끝내자 문득 위암 말기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좀 더 일찍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더라면 더 오래 사셨을 터인데, 막내딸 병간호하느라 그만 그 시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과 미안함이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나는 서둘러 차를 몰고 부모님 산소가 있는 봉개동 회천으로 내달린다.

아버지, 제가 너무 늦게 찾아왔지요. 알아요, 당신이 너무 서운해하실 거라는 걸요. 죄송해요. 앞으로는 자주 찾아올게요. 지금도 당신만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져요. 그래요, 제가 난소종양 수술을 받고 6개월 후 그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될 때였지요. 오로지 죽음, 죽음만이 온통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때였어요. 당신은 내게 꼭 살아야 한다며 두 손을 꼭 잡아주셨지요. 물론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고 방사선 치료도 아주 잘 받았어요. 하지만 혈관으로 타고 온 암의 전이는 어마어마한 끔찍스러운 통증을 동반했어요. 그야말로 시커먼 죽음의 강을 허우적거리며 겨우겨우 숨만 내쉬고 있었으니까요. 병원에 찾아갔으나 병명은 나오지 않았어요.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통증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요. 그때 알았어요.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병의 환자들이 왜 그토록 안락사를 원하는지를요. 그래요, 그게 암의 전이였던 게지요. 확실한 병명이 드러나자 그제야 병원에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어요. 치료 덕분에 그 엄청난 통증을 싹 가셨지만 긴 머리카락은 낙엽처럼 우수수 빠지면서 내 몸은 형편없는 몰골로 변해갔어요. 음식조차 돌멩이처럼 느껴져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지요. 당신은 암에 좋다며 매일같이 마늘을 구워 애써 내게 먹이려고 했고, 싱싱한 당근을 강판에 갈아 그 즙을 짜서 내가 목구멍으로 넘길 때까지 곁에서 지켜봤어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당신의 간절한 바람의 그 눈빛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해요. 당신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마침내 내 병은 깨끗하게 치유가 되었지요. 아마도 그 세월이 일 년이 좀 넘었을 거예요. 어머니와 함께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을 돌보며 나를 병간호하시던 세월이 말이에요. 그리고 제주로 내려간 당신은 어느 날,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지요. 운명의 신은 내가 아닌 당신을 선택했던 게지요. 당신은 결국 물 한 모금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한 채 숨을 거두셨지요. 당신의 싸늘한 육신이 담긴 관이 땅속에 묻힐 때 나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어요. 그동안 당신께 해드린 게 하나도 없다는 게 그토록 후회스럽고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 저기 파란 하늘을 보세요. 당신이 누워 계신 무덤 위로 하얀 양떼구름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네요. 당신의 영혼 또한 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당신이 막내딸을 그토록 사랑하셨듯이 저 또한 가족들을 사랑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다가 때가 되면 떠날게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당신은 항상 내 마음의 비타민이였습니다.

나는 평소 아버지가 즐겨 마시던 소주를 무덤가에 뿌려주곤 돌아선다. 내 눈물이 반짝 햇빛에 반사되는 동시에 흰나비 한 마리가 팔랑 날갯짓하며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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